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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29 19:51 수정 : 2019.08.07 20:27

김보통의 해 봤습니다

일주일간 완도에 다녀왔습니다.

학교 순회강연에 초대된 것입니다. 일산에서 출발해 한반도를 종단하는 여정은 꼬박 반나절이 걸렸습니다. 해남까지 마중 나온 담당자분의 차를 타고 완도로 향했습니다. 이윽고 바다 위로 섬들이 동동 떠 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완도대교를 가로지르니 여행을 온 것만 같았습니다.

오전 오후, 여러 학교를 돌며 강의했습니다. 대개는 섬에 있는 학교라 다리가 이어진 곳은 차로, 아닌 곳은 배로 이동했습니다. 풍경은 비슷했습니다. 섬을 둘러싼 연안은 해산물 양식장이 밭처럼 빼곡히 펼쳐져 있고, 항구엔 부지런히 미역과 다시마, 전복 등을 실어 나르는 배와 트럭이 있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중앙아시아 출신으로 보이는 노동자들로, 섬 주민인 듯한 노인들이 듬성듬성 보일 뿐 젊은이들은 좀체 보질 못했습니다. 다들 도시로 떠나간 것이겠지요.

학생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전교생의 숫자는 적게는 열두명, 많게는 팔십명. 평균적으로 이십여명이라 한 학년이 보통 한 학급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의 관심을 많이 받을 수 있겠다’싶어 좋아 보였지만, 어디까지나 잠시 머무는 외지인의 속 편한 생각일 겁니다. 그래서일까 선생님들은 오붓이 자라는 아이들을 사랑스러워하면서도 또래들보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안타까워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많은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 섬을 떠납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관계자님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나요?”라고 물으니 “이곳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예상한 답이었습니다. 지난 며칠간 저녁 산책하러 나가면 많은 가게가 이미 문을 닫은 채였습니다. 머물던 숙소 직원은 “저녁 8시가 완도의 하루가 끝나는 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에 오가는 사람은 일을 마치고 쇼핑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았으니까요.

“직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사비로 기자재를 사들여 관심과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교육해 완도 특산품의 캐릭터를 만들거나 지역 상품의 포장지를 디자인할 수 있다면, 그래서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자신들이 만든다면 그중 한 명이라도 이 섬을 떠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섬 여기저기에 붙은 귀농 귀촌을 환영한다는 문구보다는, 섬의 아이들이 직장을 만들었으니 많은 이용을 바란다는 광고가 붙는 미래를 상상했습니다. 물론 허황한 얘기입니다. 그렇기에 상대에겐 식사하는 사이 할 말이 없어 내뱉은 잡담으로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다음 날 강연 역시 전교생이 이십여명 뿐인 한 중학교였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살다 보면 내가 처한 상황이 열악해서, 자질이 부족해서, 주어진 선택지가 많지 않아서 종종 패배합니다. 하지만 다행히 사람들에게 내 패배는 보이지 않습니다. 백번 싸워 아흔 일곱번을 지고 세 번을 이기면, 어쨌든 나는 세 번 이긴 사람입니다. 그러니 패배를 신경 쓰지 마세요. 져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싸우면 가끔 이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겁니다.”

강연이 끝난 후, 누군가 다가와 제게 명함을 건넸습니다. 교육청에서 나온 분이었습니다. “어제 얘기 잘 전해 들었습니다. 얼굴을 보고 말하고 싶어 직접 왔습니다. 멋진 제안서 만들어 정식으로 제안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완도에 정말 학생들이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 돈을 버는 직장을 만들 수 있을까요? 모릅니다. 신경 쓰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요.

글·그림 김보통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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