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23 09:59
수정 : 2019.05.2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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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스 엑스 101>에 출연한 위엔터테인먼트 연습생 김요한. 사진 엠넷 방송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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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회의 사람 참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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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스 엑스 101>에 출연한 위엔터테인먼트 연습생 김요한. 사진 엠넷 방송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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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이 인생에 던지는 큰 질문이 있다.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를 것인가, 듣는 사람들이 좋아할 노래를 고를 것인가. 참고할 만한 장면이 있다. 글로벌 아이돌 만들기 프로젝트를 표방하는 엠넷의 〈프로듀스 엑스 101〉은 ‘소속사 오디션’으로 시작한다. 101명의 연습생이 소속사별로 춤과 노래를 보여줄 수 있는 팀 무대를 꾸미고 심사위원들로부터 실력에 따른 등급을 받는다. 이때 연습생 대부분은 장기가 잘 드러나는 무대를 꾸미려 노력한다. 박력이나 안무에 자신 있는 친구들은 ‘칼군무’(꽉 짜인 단체 춤)로 유명한 인피니트나 엑소의 노래를 고른다. 미성의 매력을 뽐내고 싶다면 방탄소년단, 파워풀한 가창력을 보여주고 싶다면 뉴이스트의 노래가 제격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한 연습생이 있다. 연습생 기간이 길지 않아 노래도 춤도 뽐낼 수준에 미치지 못했던 위엔터테인먼트의 김요한은 15년 전에 유행한 바퀴 달린 신발을 신고 미끄러지듯 무대에 등장해 지금은 이름도 생소한 가수 세븐의 ‘와줘’를 불렀다. 30~40대인 심사위원들은 20대 연습생의 시대를 뛰어넘는 절묘한 선곡에 감탄해 “취향을 저격당했다”며 그에게 ‘에이(A) 등급’을 줬다.
노래방에서도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혹시 그동안 너무 ‘내가 불러 즐거운 노래’만 부르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봐야 한다. 다만, 다른 사람의 ‘취향 저격’이라는 게 그리 쉬운 게 아니다. 한 집단의 음악 취향은 감을 잡기 힘들 만큼 복잡하기 마련이다. 호감을 높이고 싶다면 남들이 극히 싫어하는 걸 빼 나가며 고르기를 권장한다. 일단 소몰이 창법이나 염소 바이브레이션 또는 고음을 강조하는 노래는 탈락이다. 30대 여성 강아무개씨는 “박효신은 박효신으로 충분하다”며 “노래방에서 박효신이나 김동률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 있던 정도 떨어진다”고 외쳤다. 다른 20대 여성 김아무개씨는 “목을 심하게 떠는 염소 바이브레이션이나 굳이 닿지도 않는 고음을 시도하는 사람과는 노래방에 가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어 “임재범의 ‘고해’나 에메랄드 캐슬의 ‘발걸음’처럼 노래방 금지곡으로 지정해야 할 노래 중 하나가 요새는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낫씽 베터’(Nothing better)다”라며 “꼭 불러야겠다면 딱 1절까지만 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남자라고 다른 사람이 부르는 발라드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우정이나 직급에 눌려 참아줄 뿐이다. 20대 남성 김아무개씨는 “남자 친구 2~3명끼리 노래만 부르러 간 자리면 모르겠는데, 여럿이 놀자고 가서 버즈나 먼데이 키즈의 노래를 부르는 건 정말 참을 수 없다”고 밝혔다.
트렌드를 따라갈 때는 규정 속도를 준수해야 한다. 한 30대 남성은 “뭐라도 불러야 할 것 같아서 최신 유행하는 아이돌 노래를 신청해놓고 1절 조금 부르다가 랩 나오면 어물쩍거리는 사람이 많다”며 “이런 사람들은 결국 후렴 나올 때까지 기다려서 아는 부분만 부르고 멈춘다. 최악이다”라고 밝혔다. 후렴 좀 안다고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건 절대 아니다. 개인적으로 목격한 최악은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을 부르려 시도했던 내 친구의 분투다. 이 노래가 듣기에는 쉬워 보이는데, 막상 불러보면 진짜 목에서 피가 난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인피니트, 세븐틴 등 대다수 아이돌 노래의 음역은 상상 이상이다. 집에서 혼자 문 잠그고 불러보지 않은 아이돌 노래는 절대 시도해서는 안 된다.
개인적으로 30대 이상이 회식 자리에서 고르기에 의외로 마음 편한 노래는 ‘이미 유명해서 모두가 아는 그나마 최신 아이돌 노래’라고 생각한다. 트와이스의 ‘티티’나 레드벨벳의 ‘빨간 맛’ 또는 엑소의 ‘러브샷’이 그렇다. 선곡은 내가 해도 아는 사람들이 다 뛰쳐나와서 부르기 때문에 ‘선곡의 공’만 세우고 사라질 수 있어서다. 다만 ‘선곡은 내가 했으니 너희들이 한번 불러봐’라는 부장님 태도는 곤란하다. 최소한 마이크를 쥐고 1절 정도는 같이 불러야 하고, 남들이 하는 포인트 안무는 따라 해주는 게 좋다. ‘티티’를 부를 때는 탬버린 좀 흔들다가 양손의 엄지와 검지로 눈물 모양을 만들어 주고, ‘빨간 맛’을 부를 때는 후렴구에서 한손으로 입을 가렸다가 팔락팔락 펴주면 된다. 이렇게 했는데 누군가가 당신을 싫어한다면, 그건 노래 때문에 싫어하는 게 아니라 원래부터 싫어했던 거라고 봐야 한다.
박세회(허프포스트 뉴스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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