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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23 09:57 수정 : 2019.05.23 20:29

그림 김태권 만화가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그림 김태권 만화가
홍콩 배우 주성치의 영화 <식신>! 엄청난 과장 덕분에 보는 내내 정신없이 웃는 영화죠. 온갖 근사한 중국요리가 등장하다가, 마지막에 등장하는 메뉴가 바로 불도장.

불도장은 고깃국물 요리의 ‘끝판왕’입니다. 불(佛. 스님이), 도(跳. 뛰어넘는다), 장(?. 담을). ‘이 요리의 냄새를 맡으면 수행 중이던 스님도 식욕이 동해 담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농담이 요리 이름에 담겼어요. 향기도 맛도 최고라는 의미. (그런 만큼 값도 최고라서, 가격표를 보면 식당 담장을 뛰어 달아나고 싶은 충동이 일죠.)

청나라 시대에 탄생했다니, 역사가 그리 오래된 요리는 아닙니다. 한국에는 1980년대에 소개됐다고 하죠. 그런데 이름을 설명한 광고가 나가자 “불교와 불자를 놀림거리로 삼느냐”며 조계종에서 항의했대요. “그때는 정말 겁이 났죠. 정식으로 사과하고 불교신문에도 공식 사과광고를 냈어요.” 한 언론 매체에 실린, 한국에 불도장을 들여온 전 신라호텔 중식당 요리사 후덕죽의 회고.

한국과 중국의 스님은 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생긴 일화죠. 그런데 옛날에는 스님도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는 사실, 아셨나요? 저도 어렴풋이만 알고 있다가 이번에 차근차근 알아보았네요.

석가모니를 배신한 제자 데바닷타. 기독교로 치면 유다 같은 사람이랄까요. 지나치게 엄격한 수행을 고집하다가 스승과 척을 졌죠. 갈라선 이유 하나가 고기 먹는 문제였다고 합니다. 데바닷타는 엄격하게 육식을 금지하려 들었지만, 석가모니는 제한적으로 육식을 허용했다고 합니다. ‘세 가지 부정한 고기’(삼부정육·스님을 위해 죽인 고기를 본 것, 죽였다는 말을 들은 것, 죽인 게 아닌가 의심되는 것), 요컨대 수행자 먹으라고 일부러 죽인 고기가 아니면 먹어도 된다는 취지. 옛날에는 스님들이 탁발(스님이 경문 외며 동냥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주는 대로 먹지 않고 “고기는 빼고 다시 달라”고 굳이 따지기도 난처했을 겁니다. 지금도 태국이며 라오스며 티베트 등 여러 나라 불교는 육식을 허용한대요. 스님의 육식을 금지하는 것은 한·중·일(및 타이완)의 관습. 육식을 허용해도 되는 것 아니냐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만해 한용운은 허용하자는 의견을 편 적이 있고요. 2017년 8월에도 대한불교조계종 백년대계 본부는 ‘육식을 허용할지 말지’의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고 하네요.

그렇다고 스님이 불도장을 자연스럽게 드실 날이 금세 올 것 같진 않아요. 불도장은 여전히 극히 사치스러운 음식. 가격이 왜 그리 무시무시할까요? 첫째로 재료가 최고급. 반나절 이상 우린 고기 육수에, 해삼이며 자연 송이며 전복은 기본, 사슴 힘줄과 잉어 부레와 오계가 들어갑니다. 한창 욕을 먹는 상어지느러미도요.

둘째로 요리 시간이 길어요. 육수를 고아 내는 시간 따로, 재료를 손질해 삶는 시간 따로, 그리고 함께 섞어 찌는 시간까지. (그래서 불도장은 먹기 전날 예약하는 경우가 대부분. 돈 있다고 바로바로 사 먹는 음식이 아니랍니다.) 최고급 요리사의 한나절 품을 쳐줘야 하니 비쌀 수밖에요.

영화 <식신>의 불도장 장면이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까닭이기도 하고요. 요리대회에 나간 주인공은 악당의 함정에 빠져 준비한 식재료를 잃고 궁지에 몰립니다. 대회 종료를 몇 분 앞둔 상황에서 꺼내 든 마지막 카드가 무려 불도장. “원래 한나절 걸리는 요리지만, 주인공의 초인적 실력으로 몇 분 만에 완성”했다는 유머, 얼마나 재밌습니까. 다만 개그란 설명하면 어색해지는데, 주성치 감독에게 폐를 끼친 것이 아닌지 팬으로서 마음에 걸릴 따름이네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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