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15 19:57
수정 : 2019.05.15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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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전식당의 제육볶음. 사진 백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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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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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전식당의 제육볶음. 사진 백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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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리에서 오래 버티고 있는 식당, ‘노포’가 추앙받는 시절이 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핫 플레이스’가 들고 나는 마당에, 옛 간판 그대로 늘 같은 메뉴를 고집하는 식당은 그 나름대로 의미와 가치가 있다. 하지만 오래된 식당이라고 다 맛있는 식당일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을지로에는 20년은 우습게 넘은 나이 든 식당들이 즐비하다. 야외에서 술 마시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에 향하기 좋은 곳이 을지로인 이유다. 술꾼 주변에는 역시 술꾼뿐이라서, ‘을지로’ 한 단어에 동지들이 좀비처럼 서울 구석구석에서 스멀스멀 걸어 나온다.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을 1시간 가까이하고서야 드디어 행선지를 정했다. ‘석양을 바라보며 고기를 구워 먹자’라는 사뭇 건설적인 결론이 나온 터였다. 을지로 한가운데에는 그 존재만으로도 압도적인 세운상가와 청계상가가 있다. 예로부터 상인들과 유동 인구가 많았던 시내 복판이다 보니 이 주변에 고깃집부터 백반집, 닭볶음탕과 각종 소줏집까지 즐비하다. ‘다전 돈까스’라고도 불리는 다전 식당은 청계상가 3층에 있다. 청계상가와 세운상가가 이어지는 제법 긴 복도에 있다.
철판 제육볶음부터 대표 메뉴인 돈가스, 옻닭, 순대국밥, 순두부찌개까지 거의 모든 한식 요리가 있다. 이용하는 방식 또한 남다르다. ‘각자도생’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야외에서 먹고 싶으면 테이블과 의자를 직접 놓아야 하고 그릇과 수저, 반찬, 술까지도 직접 가져다가 먹어야 한다. 오겹살과 제육볶음, 돈가스까지 주문하고 소주와 맥주를 나란히 세워놓았다. 빨갛고 자극적인 양념으로 간한 제육볶음은 직접 볶아가며 먹는 맛이 있다. 생긴 지 20년도 훌쩍 넘은 노포라지만 사실 별 특별한 맛은 없다. 사실 이런 곳이야말로 맛 때문에 방문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거창하게 음식 맛을 따지고 까다롭게 위생 상태를 논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묘하게도 노포에서는 나름의 꼼꼼한 기준도 누그러지고 마음도 풀어진다. 콩나물과 김치, 상추 등을 썰어 넣고 밥을 볶는 재미,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이야말로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자랑거리다. 오겹살을 이리저리 뒤집다가 소맥 한 잔 말아 마시고, 달큰하고 새콤한 양념을 끼얹은 돈가스를 양껏 베어먹는다.
해는 슬슬 저물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올 때면 해가 진다. 노을을 바라보면서 먹는 고기와 술맛은 중독되면 정말 끊을 수가 없다. 매년 돌아오는 초여름이지만, 새로운 계절을 맞는 마음은 늘 설레고 버거워서 이렇게 나름의 환영 의식을 치른다. 이렇게 올해도 여름이 오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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