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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20 19:55 수정 : 2019.03.20 20:05

보통의 디저트

살면서 먹어본 디저트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터키 이스탄불에서 먹었던 바클라바다. 터키의 전통요리인 바클라바는 얇은 페이스트리 도 사이에 버터를 발라 층층이 쌓아 올린 다음 구운 디저트다. 꿀이 들어간 시럽에 흥건히 적셔두었다 먹는다. 한 조각 잘라 포크로 집어 들면 시럽이 뚝뚝 떨어질 정도다. 당연히 달다. 이 정도로 달아도 될까 싶을 정도다. 입에 넣으면 혀가 아릴 정도로 달다.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바클라바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보통씨!” 컵라면을 5달러에 팔던 민박집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다른 여행지에서 만났던 사람이었다. 내 또래의 남녀 한 쌍이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밤 기차를 타고 이동하다 지갑을 도둑맞아 실의에 빠진 채였다. 다행히 여권은 있었으나, 한국에서 돈을 받기까지 단식을 해야 하는 가혹한 상황. 당시 나는 빈 병을 팔거나 잔심부름을 하며 모은 동전을 그들에게 주었다. 혼자 배고프면 참으면 될 일이지만, 둘이 같이 배고프면 싸움이 일어날까 걱정스러웠다. 즐거운 기억을 만들러 와서 헤어지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봐왔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주신 돈으로 잘 사 먹었어요.” 그때의 커플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덕분에 싸우지 않고 잘 여행했어요. 그리고 오늘 저녁 비행기를 타고 귀국합니다.” 다행이었다. 결말을 알 수 없어 찜찜했던 영화를 마저 보게 된 기분이라 안심했다. “마지막으로 함께 식사라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필이면 둘이 한 끼 먹을 돈만 빼고 다 써버려서 아쉽네요.”

애초에 바라지 않았기에 서운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짧지만 반가운 작별 인사를 하고, 둘은 트렁크를 끌고 민박집을 나섰다. 마침 점심이라 나도 밥을 먹으러 나섰다. 나 역시 여행의 막바지라 남은 돈이 좀 있었다. 늘 궁핍한 식사만 해왔기에 좀 제대로 된 밥을 먹을까 싶어 민박집 주인에게 최고급 식당을 소개받았다.

멋진 곳이었다. 3층짜리 건물을 통으로 쓰고 있었으며, 종업원은 신드바드 같은 옷 대신 정장을 입고 서빙을 했다. 인기가 많은 곳인지 내부는 물론 외부에 마련된 야외 좌석까지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한 번쯤은 이런 사치를 부려도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식당으로 들어서는데, 야외 좌석 한 테이블에 눈길이 갔다. 그곳엔 아까의 커플이 사이좋게 앉아 식사하고 있었다.

“합석해도 될까요?” 다가가 말하니 나를 알아본 둘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아. 정말 돈이 없는데. 마지막으로 좋은 식당에 가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둘은 피데(빵 위에 다진 고기와 치즈 등을 올려 먹는 터키의 음식) 하나와 콜라 한 병을 시켜 나눠 먹고 있었다. “네, 알아요. 무슨 말인지.” 비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알았다. 배고픔은 배고파 본 사람이 안다. “오늘은 제가 살게요. 우리 여행의 마지막을 축하하는 의미로.”

이어 우리는 다 먹지도 못할 만큼의 음식을 시켜 배불리 먹었다. 와인까지 한잔씩 마셨다. 기분이 좋았다. 그간 서로의 여행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참을 떠들다 마지막으로 바클라바와 차이(우유와 여러 가지 향신료를 넣고 끓여 마시는 인도식 홍차)를 시키려고 하는데, 커플이 말했다.

“이제 곧 비행기 시간이라서 저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번잡스러운 인파 사이로 그 커플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상하지. 막상 나는 설거지하고, 빈 병이나 팔면서 여행했지만, 다른 여행자들을 만날 때면 좋은 기억만 가졌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슬픈 일 없이, 아프지 않고 돌아가길 바랐다.

그래. 그러면 된 거지. 빈 병을 팔아 모은 푼 돈으로 누군가가 슬프지 않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지. 나는 앞으로 삶에서도 그렇게 살고 싶다. 홀로 남아 턱을 뚫고 시럽이 흘러내릴 것처럼 단 바클라바에 쌉쌀한 차이를 마시며 생각했다. 이제 와 돌아보면 그렇게 살아왔는지는 모르겠다.

글·그림 김보통(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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