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1.24 09:33
수정 : 2019.01.2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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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코 스팸 샌드위치’. 사진 백문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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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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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코 스팸 샌드위치’. 사진 백문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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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굳이 한강의 남쪽과 북쪽으로 나누면 ‘한 사람의 생활 반경은 참 좁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강남과 강북을 횡단할 수 있는 편한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안 가본 동네는 안 가게 되고, 가 봤던 동네는 지루하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인근은 거품이 빠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세련된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한창 때는 나도 잘 다녔는데’ 하는 자조와 웃음 섞인 혼잣말도 잠시다. ‘어디서 뭘 먹고 마셔야 잘 먹었다는 소문이 나나’하는 생각에 머리가 분주해진다.
‘마음 놓고 와인 마시자’라는 생각에 닿으면 마음이 좀 복잡하다. 마시고 싶은 와인을 고르자니 주머니 사정이 안 받쳐준다. 적당한 와인을 마시자니 뜬금없이 높아진 입맛이 야속하다. 신사동 가로수길 건너편 영동호텔 뒤편에 있는 ‘보틀그린’은 이런 고민 없이 방문할 수 있는 ‘은혜로운’ 곳이다. 와인을 들고 가도 코키지를 받지 않는 보기 드문 미풍양속을 가진 곳인 데다 음식의 맛도 허투루가 아니다. ‘서양 레스토랑인 만큼 당연히 파스타, 샐러드 같은 흔히 볼 수 있는 메뉴가 그득하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테린, 소시송(프랑스식 소시지) 등으로 구성된 샤르퀴트리(샤큐테리) 접시부터 카다이으프(터키 국수)로 만 후 튀긴 은대구 튀김, 이베리코(도토리 등을 먹고 자란 스페인산 흑돼지)로 만든 햄을 넣은 ‘이베리코 스팸 샌드위치’까지, 다양한 메뉴가 황홀할 지경이다. 지금 같은 겨울철, 칼바람처럼 날카로운 샴페인 한 잔과 올리브 한 알을 먹으면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푹신한 소파, 널찍한 테이블, 시원시원하게 배치한 테이블 덕에 카페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보틀그린이 가진 매력 중 하나다. 느긋하게 앉아서 술을 마셔도, ‘혼술’해도 소외감이나 외로운 기분이 들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바삭바삭한 은대구 튀김은 폭신하고 부드럽고, ‘이베리코 스팸 샌드위치’는 씹을수록 육즙이 입안으로 가득 스몄다. 프랑스 수제 햄을 파는 것으로 명성 높은 서울 서초동 ‘메종 조’의 육가공품을 사용한다는 설명이 무색하지 않았다. 와인을 들고 가도, 소믈리에의 추천을 받아 마셔도 부담스럽지 않은 곳은 흔치 않다. 음식과 어울리는 적당한 와인이 있고, 마음의 부담이 덜한 곳은 대도시 서울에선 보기 드물다. 늘 가봤던 동네라고 해도 언제나 나도 모르는 숨겨진 곳은 있기 마련이다. 미식업계엔 늘 고수가 있고, 오늘도 배우는 마음으로 마신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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