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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18 09:03 수정 : 2019.01.18 20:14

‘일미집‘. 사진 백문영 제공

‘일미집‘. 사진 백문영 제공
만사 귀찮고 피곤한데 배까지 고플 때가 있다. 배가 고프니 아무 곳에나 들어가자’는 말만큼 무책임한 말도 없다. ‘배가 고파 죽겠는데 꼭 맛집을 찾아야겠냐‘고 묻는 이와는 겸상을 하지 않는다. 소중한 한 끼를 아무렇게나 채울 수는 없는 일이니까.

고된 노동으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할 때였다. 저녁 시간을 훌쩍 넘겨 밤 9시였다. 함께 노동한 친구에게 “간편하지만 든든히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가자”고 말했다. 시원한 ‘소맥’(소주+맥주)을 곁들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조건이었다. 친구는 가타부타 대답도 없이 택시를 잡아 강북구 미아동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서울의 북부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하지만 먹고 마시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인 만큼, 조용히 믿고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 지하철 4호선 미아사거리역 인근에 있는 ‘일미집’은 돼지고기구이 전문점이다. 한국 땅에 가장 흔하디흔한 음식점이 고기구이 집, 그것도 돼지고기구이 전문점이다. 저녁 9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도 가게 앞은 줄을 선 손님으로 북적였다. 30여분을 기다리고서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기다린 수고가 헛되지 않을 만큼 돼지고기는 맛있을까?

자리에는 이미 오징어 초무침, 돼지 껍데기 볶음, 간장 조림 새우와 달걀찜, 청국장이 깔려 있었다. “밑반찬을 안주로 소주 한 병, 밥 한 공기는 비운다”는 친구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일본식 달걀찜을 닮은 달걀찜은 부드럽고 포근했다. 제육볶음 양념 맛이 나는 달콤하고 쫀득한 돼지 껍데기 볶음은 계속 소맥을 들이키게 했다. 한 사람당 한 마리씩 나오는 간장 조림 새우는 짜지도 달지 않아서 밥에 비벼 먹으면 그야말로 밥도둑이 된다. 삼겹살 2인분과 흔히 ‘목고기’라 불리는 돼지의 목덜미 살 1인분을 주문했다.

요즘 유행하는 프리미엄 돼지고기 구이집과는 완전히 달랐다. 길게 숭덩숭덩 자른, 다소 투박한 모양새인 삼겹살은 두께만 1.5~2㎝ 정도였다. 굽는 데만도 10여분 가량 걸렸다. 육즙도 풍부했다. 이곳만의 특제 보리 쌈장과 얇게 자른 마늘을 곁들여 먹으니 세상을 얻은 것 같았다. 보리 쌈장은 보리가 알알이 씹히는데, 식감이 일품이었다. 구수한 향이 물씬 풍기는 숙성 삼겹살과 안 어울릴 수가 없다. 돼지 목덜미 살은 씹으면 씹을수록 쫀득쫀득 해 이빨을 튕기는 식감이 인상적이었다. 캐러멜을 씹는 것처럼 쫄깃한 덜미 살을 소금에 찍어 씹다가 소주로 입안을 헹궈 내면 정신은 아득하고 기분은 그야말로 쾌속선이 된다.

늘 느끼지만, 서울 구석구석에는 숨어있는 고수 맛집이 참 많다. 지금 뜨고 있는, 새로운 곳도 중요하고 의미 있지만, 낡고 오래된, 동네 주민에게 사랑받는 식당이야말로 진짜배기다. 숨어있는 동네의 맛집을 찾아 올해는 더 열심히 먹고 마시고 취하리라 다짐한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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