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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우체국에 있는 ‘틴틴우체국’. 스리디(3D)프린터 체험구역과 휴머노이드 로봇이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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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우체국
디지털 시대, 우체국은 변신 중
코딩게임·증강현실 체험, 3D 출력 등
소원우체통·느린 우체통·복지우체통 등 우체통도 달라져
‘용돈 배달 서비스’도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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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우체국에 있는 ‘틴틴우체국’. 스리디(3D)프린터 체험구역과 휴머노이드 로봇이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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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에서 로봇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날 본 로봇은 트랜스포머나 건담 따위가 아니었다. 하얗고 반들반들한 ‘휴머노이드’, 즉 인간과 비슷한 외형을 가진 로봇이었다.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행동을 잘 따라 한다. ‘춤추는 로봇’으로 불리는 우체국 로봇도 그랬다. 흔들흔들, 건들건들, 흐느적흐느적. 내 움직임을 잘도 따라 했다. 한동안 서로 마주보며 같은 동작을 하고 있으려니 내가 로봇 같고, 로봇이 나 같았다. 물아일체, 아니 이심전심이라 했던가. 다행히 주변에 관중(?)은 없었다.
지난 11일, 서울중앙우체국 지하 1층에 있는 ‘틴틴우체국’을 찾았다. 어디선가 “와아” 탄성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초등학생 4~5명이 당구대 반 크기 정도 되는 테이블에서 코딩게임(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활용한 게임)을 하고 있었다. 키가 대략 10㎝ 정도 되는 코딩로봇을 조종해 게임판 위의 목적지에 우편물을 빨리 배달해야 이기는 게임이었다. 코딩로봇의 이름은 ‘카미봇’. 방향조절은 일반 게임의 컨트롤러 역할을 하는 스마트폰으로 해야 했다. 집배원 유니폼 차림으로 게임판 위를 쏘다니는 카미봇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너무 재밌어요!”, “신기해요!”, “제가 이겼어요!” 아이들은 코를 박고 그 앞을 떠날 줄 몰랐다.
‘틴틴우체국’은 로봇과 코딩, 스리디(3D) 프린팅 같은 4차 산업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우체국이다. 지난해 서울중앙우체국, 경기광명우체국, 부산연제우체국, 전남서광주우체국 등 전국 10개 지점에 문을 열었다. 겨울방학을 맞아 초등학교 1~3년생 17명을 데리고 견학 온 이현주(26?이화여대 종합사회복지관)씨는 “우체국이라고 해서 우편업무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양한 4차 산업기술을 체험할 수 있다니 놀랍다”고 했다. “아이들도 너무 좋아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개인적인 관심사이기도 해요. 실생활과 연계된 기술을 직접 보니, 책이나 기사로는 다소 추상적으로 이해되던 지식이 피부로 와 닿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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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우체국 ‘틴틴우체국’에 있는 코딩게임. ‘카미봇’이라는 코딩로봇을 조종해 목적지에 우편물을 빨리 배달해야 이기는 게임이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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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하나면 뭐든 해결되는 시대, 우체국이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우편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개였지만, 이메일과 에스엔에스(SNS)가 보편화하면서 우편 물량은 눈에 띄게 줄었다. 2011년 전국 우체통 기준 4793만통이던 우편물은 2017년 2194만통으로 6년 새 절반 이상 줄었다. 우정사업본부가 매년 적자 폭이 커지는 우편사업의 부진을 만회하고자 ‘알뜰폰’ 판매나 인터넷쇼핑몰 운영 등에 나선 지도 오래다. 우체국 건물 중 일부는 사무실이나 병원, 카페로 임대해 수익을 내기도 한다.
서울중앙우체국 안에 있는 우표박물관에는 지난해 7월 증강현실을 이용한 스리디(3D) 프로그램이 신설됐다. 그림을 그린 후 스캐너로 스캔하면, 대형스크린에서 그림이 움직이는 걸 볼 수 있는 ‘우표로 그리는 신비한 아쿠아리움’이다. 11살 조카와 이곳을 찾은 김휘웅(38·경기 부천)씨는 “어렸을 때 우표 수집을 하던 추억을 떠올리며 와봤다”며 “우표박물관으로서의 정체성과 디지털 체험관의 역할이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고 했다. “제가 제 조카만 할 때는 기념우표가 나오길 기다렸다가 사곤 했지만, 요즘 아이들은 우표가 뭔지 전혀 모르잖아요. 앎의 폭을 넓히는 차원에서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만화 우표코너에서 뭔가를 조카에게 설명했고, 조카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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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서울중앙우체국에 있는 우표박물관을 견학하고 있다. 사진 우정사업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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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우체통을 변형한 이색우체통들도 눈길을 끈다. 대표주자는 편지를 보내면 6개월~1년 뒤에 도착하는 ‘느린 우체통’이다. 전국 2백여곳에 있으며, 2017년 총 187만통의 편지가 수거됐을 정도로 인기다. ‘행복배달 소원우체통’은 아이들이 써넣은 소원을 이뤄주는 우체통으로, 지난해 소원편지를 쓴 어린이 3천7백여명에게 장난감과 학용품 등이 전달됐다.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된 ‘행복배달 소원우체통’ 은 전국 각 지역을 대표하는 총괄우체국 247개와 지역 아동센터가 협업한 우정사업본부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총괄우체국이 지역아동센터에 ‘행복배달 소원우체통’을 설치하면, 아이들은 자전거나 학용품 갖기·놀이공원이나 영화관 가기 등의 소원을 적어 넣는다. 우정사업본부가 총괄우체국에 편성한 예산으로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준다.
전북 진안군은 올해 공공장소 329곳에 ‘복지우체통’을 설치할 예정이다. 우체통에 어려운 사연을 써넣으면 맞춤형복지를 제공한다. 서울 동대문구는 지난해 일부 대학교에 자살 예방을 위한 ‘빨간 우체통’을 설치했는데, 우체통에 고민을 털어놓으면 정신건강 복지센터에서 상담 및 검진을 해준다.
대국민 서비스로 반응이 좋은 것은 지난해 6월 출시된 ‘용돈 배달 서비스’다. 월 1회 현금을 직접 배달해주는 서비스로, 교통이나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둔 자녀들에게 유용하다. 모든 우체국에서 매월 10만~50만원까지 신청할 수 있으며, 이용료는 2420~5220원이다. “경남 산청에 다리가 불편한 친정어머니가 혼자 사신다”는 김신재(51)씨는 “계좌이체를 해도 엄마가 은행까지 가셔야 한다는 점이 걱정이었는데, 집배원이 직접 현금을 배달해주니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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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전주우체국 1층에 있는 ‘카페 우정’에서 일하는 바리스타들. 사진 우정사업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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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우체국에 있는 세계 각국의 우체통 모형.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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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세대’ 취업에 기여하는 우체국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전북전주우체국 1층에 있는 ‘카페 우정’의 바리스타들은 모두 60~70대 여성이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이 카페는 채용공고를 낼 때부터 지원자의 연령 하한선을 60대로 뒀다. 카페 우정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강희숙(62?전주 혁신동)씨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는 동안에는 레시피를 외우는 게 쉽지 않았고, 라떼의 거품내기가 좀 어려웠지만, 지금은 힘든 점이 거의 없이 즐겁고 재밌기만 하다”며 “나이 먹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좋고, 삶의 활력이 된다”고 했다.
이제 ‘틴틴우체국’으로 돌아와 보자. 스리디프린터 체험구역에서 스리디프린터를 통해 출력한 호루라기를 불어보았다. 진짜로 소리가 났다! 겉보기론 방구석에 처박힌 고물 프린터와 비슷해 보이건만, 이런 걸 출력해 내다니! 생산과 물류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 알다시피 스리디프린터를 쓰면 물체를 직접 전달하지 않아도 된다. 지(G)코드로 변환된 파일을 전송하기만 하면 상대방이 그 물체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우체국은 앞으로 스리디프린터를 활용해 운송과 생산을 동시에 하는 곳이 될지도 모른다. 우체국의 위기를 말하는 이도 있지만, 변신이 계속되는 한 그 장래는 밝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체국은 재미있다.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우체국 편지쓰기는 문학이나 영화의 오래된 주제다. 예전에는 편지 같은 우편물을 접수하고 배달하는 곳이 우체국이었다. 스마트폰과 에스엔에스(SNS)가 보편화하면서 우편물이 급감하자 요즘은 택배와 예금?보험 판매가 우체국의 주요 수입원이다. 우체국은 전국 2천여개가 있으며, 우편 업무만 취급하는 우편취급국도 있다. 우편 사업의 적자를 만회하려고 ‘알뜰폰’ 판매나 건물임대, 인터넷쇼핑몰 같은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4차 산업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우체국을 신설하거나 1인용 전기차를 도입하는 등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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