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2.27 09:30
수정 : 2018.12.2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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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산맥 아래 펼쳐진 아스티의 포도밭. 사진 아스티와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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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미식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의 아스티 지역
한국에도 인기 많은 모스카토 다스티와 바르베라 다스티 생산지
바다 융기해 형성되어 특별한 테루아르 지녀
2014년에 포도밭 경관으로 유네스코 유산 등재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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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산맥 아래 펼쳐진 아스티의 포도밭. 사진 아스티와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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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파티에 어울릴 주류를 찾을 때 가장 쉽게 손이 가는 와인 중 하나가 ‘모스카토 다스티’다. 단맛이 강렬하면서도 기포가 부드럽게 터져 밝은 분위기에 딱 어울린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발포성(스파클링) 와인 모스카토 다스티의 고향,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아스티를 다녀왔다.
이탈리아 북부의 한 마을을 공간적 배경으로 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 초반 “스파클링 와인!”을 외치는 등장인물의 대사가 나온다. 이탈리아어와 영어를 섞어 쓰는 등장인물이 실제로 한 대사는 “프리찬테(Frizzante)!”다. 이탈리아 스파클링 와인 중 기포가 작으면서 약한 ‘약발포성 와인’을 프리찬테라 부른다. 영화는 한여름의 낭만적이고 슬픈 연인들의 사랑을 다룬다. 그래서일까? 영화에 등장하는 프리찬테는 기포가 입안을 살짝 간질이면서도 이름 모를 여러 꽃의 향기가 담긴 ‘모스카토 다스티’(Moscato d’Asti)가 아닐까 떠올리게 된다.
모스카토 다스티. 직역하면 ‘아스티의 모스카토’다. 그러나 와인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둔 사람이라면 떠오를 것이다. ‘아, 그 달콤한 와인!’ 모스카토 다스티는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주의 아스티 지역에서 ‘모스카토 비앙코’라는 포도 품종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을 일컫는다. 왜인지 익숙한 이름이라면, 국내 대형마트 와인 코너에서 분명히 본 적 있을 테다. 올해 대형마트 3사에서 판매량이 가장 많이 늘어난 와인 브랜드 1위는 모두 모스카토 다스티 와인이 차지했다. 알코올 도수가 5도 안팎이면서도 진하고 감미로운 달콤함에 국내 소비자들이 매혹되고 있다.
아스티 지역 와인 생산자들은 한국 시장에 큰 관심을 보인다. 아스티와인협회 자료를 보면 모스카토 다스티를 세계에서 3번째(2017년 기준)로 많이 마시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와인 생산자들은 현재에 머무르지 않는다. 지난 11월29일부터 12월1일까지 아스티 와인의 진화를 엿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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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개 브랜드의 아스티 와인을 시음하는 행사. 사진 제공 아스티와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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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9일 오전 아스티 지역의 오래된 성, 카스텔로 간차 카넬리로 향했다. 전 세계에서 온 80여명의 기자들과 아스티와인협회 관계자들이 모였다. 아스티와인협회가 주최한 ‘아스티와인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하려는 목적이다. 이곳에서 엿본 진화의 열쇳말은 ‘다양화’다. 국내 소비자에게 익숙한 모스카토 다스티의 첫인상은 ‘진한 달콤함’이다. 29일 낮 아스티의 40여개 와이너리의 생산자가 참여한 시음 행사에서는 달콤함은 옅게 하고, 그 자리를 싱그러운 맛으로 채운 와인들이 여럿 보였다. 포도의 당을 더 발효해 알코올 도수가 모스카도 다스티보다 높은 7% 안팎이고, 덜 단 ‘아스티 돌체와 당을 완전히 발효해 알코올 도수가 11%에 달하고 단맛이 거의 없으면서 드라이한 맛의 ‘아스티 세코’가 등장했다. 아스티 세코는 2017년을 전후로 와인 생산자들이 본격적으로 내놓고 있는 와인이다. ‘두게쎄 리아 모스타토 다스티’를 한국에 수출하고 있는 와인 생산자 로베르토 로바는 “생산하고 있는 아스티 세코도 한국의 와인 경연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어서 한국인들이 즐겨 마시는 술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에몬테의 다른 지역인 아퀴 테르메(Acqui Terme)의 대표 스파클링 레드 와인인 ‘브라케토 다퀴’(Brachetto d’Acqui)도 변신 중이다. 와인 본래의 붉은빛이 지배적인 브라케토 다퀴를 발전시킨 ‘아퀴 로제’가 2017년부터 등장했다. 이 와인 역시 기존 브라케토 다퀴보다 덜 달고, 그 붉은빛은 옅은 분홍색에 가까워졌다.
포도 재배에 알맞은 지리적 조건(테루아르)은 아스티 지역의 축복이나 다름없다. 이탈리아 와인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는 와인평론가 영국인 월터 스펠러는 그 깊은 역사와 특별한 떼루아를 설명하며 “이탈리아가 없었으면 지금의 프랑스 와인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 일대를 ‘알프스의 발’이라고 일컫는다. 아주 가파른 언덕 지형이 분포하고 있다. 피에몬테는 또 원래 바다였던 곳이 융기해 형성된 지역이라 이회토(점토와 석회로 된 흙)와 석회석으로 된 모래가 섞인 토양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아주 특별한 떼루아라고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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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한 맛으로 분홍색을 띠는 발포성 와인 ‘다퀴 로제’ 사진 제공 아스티와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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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티 인근의 랑게와 로에로 일대의 포도밭 경관은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유네스코의 누리집엔 ‘이 지역에서 포도나무 꽃가루가 발견된 것은 기원전 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본(B.C.63~24)은 와인 통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고 적혀 있다. 이탈리아에는 많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있지만, 와인 생산지가 선정된 것은 처음이다. 유네스코는 누리집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특정한 토양과 기후 조건에 따라 최선의 포도 품종으로 개량이 진행됐고, 그 자체가 와인 생산의 전문적인 지식을 형성해 전 세계적인 모범 사례가 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저 가진 유산만으로도 명맥을 이어가기 부족함이 없는 듯한데, 아스티의 와인 생산자들은 ‘혁명’을 부르짖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속해있으며 아스티 시내에서 20㎞ 정도 떨어진 니차 몬페라토(Nizza Monferrato)에서 예기치 않게 ‘혁명’이라는 단어를 마주했다. 와인 생산자들은 전통과 정체성을 강조하는 듯 ‘지문이 그려진 와인 잔’을 바르베라 다스티(Barbera d’Asti) 와인의 상징으로 삼았으나, 변화를 넘어 혁명을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12월1일 니차 몬페라토에서 열린 ‘바르베라 다스티 마스터 클래스(와인 설명과 시음을 함께 하는 세미나)’가 내세운 문구가 ‘바르베라 레볼루션(혁명)’이었다. 바르베라 다스티 와인협회의 필리포 모브리치(Filippo Mobrici) 회장은 “지난 수년 동안 우리 생산자들은 천천히 그러나 견고하게 바뀌고 있다. 바르베라 포도의 뛰어난 다양성으로 우리는 국제화를 지속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했듯 전통적인 와인 생산자들의 고민의 결은 하나로 모인다. 세계의 다양한 소비자를 향한 국제화다. 이날 마스터 클래스에서 시음한 와인만 19가지 종류였다. 알코올 도수가 14도에서 16.5도에 이른다. 시음을 위해 와인을 공기와 접촉시켜 코로 향을 맡기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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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베라 다스티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한 소믈리에. 사진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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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클래스가 끝나자 점심 식사가 이어졌다. 국수 면처럼 길게 뽑은 고기 가닥을 돌돌 뭉쳐 만든 이탈리아식 육회와 메추리 알 부침개가 접시에 등장했다. 서빙 한 이가 건네준 와인은 바르베라 다스티. 비교적 짧은 숙성 기간을 거친 바르베라 다스티는 입안을 도포하듯 매끄럽고, 과일 향이 풍부하다. 질긴 듯 부드러운 육회와 그 위에 올라간 진한 송로버섯과는 친구처럼 맛의 호흡이 잘 맞았다. 오크 숙성하는 바르베라 다스티 수페리오레는 묵직한 바디감과 강한 타닌이 특징인데, 날고기보단 양념을 많이 넣어 조리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고 한다. 우리 음식으로 치면 갈비찜이나 두루치기가 제짝이다.
수세대에 걸쳐, 수십 년 동안 와인을 만들어온 사람들의 손을 유심히 살펴본다. 손마디가 아주 굵고, 손톱 끝은 포도색이 옅게 침착되어 있다. 그 손으로 수확해 와인이 만들어져 식탁까지 오르는 여정을 떠올려 본다. 9000㎞의 길이다. 가장 유명한 모스카토 다스티는 국내 대형마트에서 1만원대부터 시작해 저렴한 가격에 쉽게 만날 수 있다. 아스티의 와인 생산자들을 만나고 보니, 참 고맙다. 연말 송년 파티 자리에 어울리는 부담없는 가격의 달콤하고 향기로운 스파클링 와인을 사서 들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아스티 와인이 진화하는 중에도 그 착한 가격을 오래 유지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갖게 된다.
아스티(이탈리아)/ 글·사진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사진 아스티와인협회 제공
[ESC] 와인과 송로버섯을 한 곳에서!
모스카토 다스티는 국내에서 유명한 와인이지만, 이탈리아 아스티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북부 이탈리아 소도시 여행을 떠난다면 빼놓지 않고 들러볼 만 하다. 관련 여행 정보를 모아봤다.
■ 여행하기 좋은 때
목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니차 몬페라토의 여행정보센터에서 일하는 데니스 그레아는 “일반적인 관광이나 와이터리 투어를 하고 싶다면 3월이 여행하기 좋다. 한여름을 너무 덥다”고 말했다. 아스티 일대는 또 세계 3대 미식의 하나로 꼽히는 송로버섯(트러플), 그 중에서도 희소해 그 가치가 높은 흰송로버섯(화이트 트러플)이 많이 나는 곳이다. 화이트 트러플 체험 여행을 하고 싶다면 10월 초에서 11월 말에 방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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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트러플.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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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정보를 얻으려면
아스티 지역의 여행 정보를 모아 놓은 누리집(www.astiturismo.it)이 있다. 숙박 시설과 레스토랑 정보를 비롯해 여행 가이드의 연락처까지 정리되어 있다. 이밖에도 사설 여행업체에서 송로버섯, 와인, 이탈리아 음식 등과 관련한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관련 정보는 체험 여행 예약 사이트(www.tartufoevino.it) 등에서 얻을 수 있다.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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