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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27 09:30 수정 : 2018.12.27 21:04

그림 김보통

보통의 디저트

그림 김보통
얼굴 생김이 찐빵 같은 나를 ‘찐빵’이라 부르던 아이를 좋아했다.

찐빵 같기로는 그 아이가 더 찐빵 같았지만, 마음 상할까 말하진 않았다. 그저 “찐빵!”하고 부르면 바보 같은 웃음을 지었을 뿐. 마음을 표현하지도 못했다. 나는 식탐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역에서 부족한 아이였고, 연애는 무능 그 자체였다. 그런 내가 결단을 내린 때가 있었으니, 바로 고등학교 졸업을 얼마 앞둔 즈음이었다. 그 아이의 생일에 맞춰 고백하기로 한 것이다.

졸업하면 이대로는 마주칠 일이 없을 것이란 위기감 때문이었다. 애초 사귀고 어쩌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냥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버리는 첫사랑이 아쉬웠다. 결심하고 그 아이의 삐삐(아직 삐삐의 시대였다)에 “네 생일 아침 9시에 너희 집 앞에서 보자”고 음성을 남겼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망설이진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행동력만은 좋았다. 사고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탈이지만, 그랬다.

선물로는 그 아이가 보고 싶다던 책을 주기로 했다. 우연히 들은 그 책의 제목은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네모>였다. 몇 군데 서점을 돌아다녔으나 그런 책은 없었다. 직원들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어이하여 그 아이는 이렇게나 긴 제목의 책을 보고 싶어 하는 걸까 원망스럽기도 했다. 심지어 내용이 뭔지 짐작할 수도 없는 책이었다. ‘우아한 네모’라니. 형이상학에 관한 책인가 싶어 해당 분야의 서가를 아무리 뒤져도 그런 책은 없었다. 큰일이었다. 이러다간 나의 첫 고백이 실패한다. 아니, 애초 성공할 거란 기대가 없지만, 어쨌든 실패할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 한 점원이 제목을 듣고는 망설임 없이 한권의 책을 들고 나왔다.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그것이 그 책의 정확한 이름이었다. 여전히 내용은 뭔지 알 수 없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이제 오카리나만 준비하면 되는 것이다.

“엄마는 이 소리가 좋더라”라며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사다 주신 오카리나.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그 음색을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동생과 싸울 때 무기로 쓰는 바람에 고장 나 중간 음 하나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핑계로 손도 대지 않았다. 그 오카리나를 수리했다. 생일축하 노래를 연주하기 위해서였다. 너무 유치한 거 아니냐 싶지만, 남은 시간 동안 연습해 연주할 수 있는 곡은 그것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가 “소리는 좋은데 다른 건 연습 안 하니?”라고 물을 때마다 왠지 가슴 한쪽이 아팠다. ‘어머니, 아들은 이렇게 어른이 됩니다’라는 눈빛을 한 채 반복해 연습에 몰두하고 몰두했다.

생일은 주말이었다. 눈이 내린 다음 날이라 단독주택에 살던 아이의 집은 눈으로 덮여있었다. 한손엔 책이 담긴 쇼핑백, 다른 손엔 오카니라를 든 나는 보무도 당당히 대문 앞에 서서 벨을 눌렀다. 입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이윽고 인터폰을 통해 “누구세요?”하는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졸도할 뻔했지만 “나야”하고 답했다. 잠시 뒤 덜컹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더니 아이가 나왔다. 언제나처럼 “찐빵!”하고 부르는 대신 형장에 끌려가는 죄수 같은 걸음걸이로 주춤주춤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도망가려면 지금뿐이다 싶었지만 이내 대문이 열려 그럴 수도 없었다.

“왜?”하고 아이는 물었다. 나는 말없이 쇼핑백을 건넸다. 아이는 “선물이야? 고마워. 찐빵”하고 말했다. 착한 아이였다. 나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번 한 뒤, 그간 연습한 생일축하 노래를 연주했다. 크리스마스가 멀지 않은 눈 내린 아침. 미세먼지 없는 청명한 하늘로 조잡한 나의 연주가 울려 퍼졌다. ‘뉘 집 애가 아침부터 부지런도 하지’싶은 생각이 들만 한 광경이었다. 중간에 두 번인가 바람 새는 소리를 낸 뒤 가까스로 연주를 마친 나는 “그럼 안녕”하고 말했고, 아이도 얼떨결에 “그래. 잘 가”하고 답했다. 그리고 나는 기계처럼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났다.

당연히 우리는 아무런 사이도 되지 못했다. 각각 어른이 되어 좀 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을 때 들은 얘기로는, 그날 나의 연주를 현관문 너머에서 친구의 할머니와 부모님, 고모와 동생까지 모두 감상했다고 했다. 참고로 나는 찐빵을 안 먹는다.

글·그림 김보통(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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