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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06 09:42 수정 : 2018.12.07 19:50

그림을 배달해주는 ‘핀즐’. 매달 그림과 작가 인터뷰가 실린 잡지도 보내준다. 사진 핀즐 제공

커버스토리┃그림러&그림
최근 그림 구매하는 이들 늘어
그림 배달업체·대여업체 인기
자신이 그린 그림 파는 화가도 있어
가격은 저렴해 찾는 이 많아

그림을 배달해주는 ‘핀즐’. 매달 그림과 작가 인터뷰가 실린 잡지도 보내준다. 사진 핀즐 제공
그림은 어렵고 비싸기만 하다? 천만의 말씀. 요즘은 그림도 ‘피자’나 ‘만화책’처럼 즐긴다. 피자처럼 배달받으니 갤러리까지 가야 할 필요도, 만화책처럼 빌리니 비싼 값에 소장할 필요도 없다. 갤러리라고 해서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비싼 그림만 파는 것도 아니다. 바야흐로 그림을 소비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

스트리밍 음악처럼 가볍게 즐기자!···그림 배달해주는 ‘핀즐’

임승혁(29·의사)씨는 ‘핀즐’에서 그림을 배달받은 지 1년이 넘었다. 식료품도 전자 제품도 아닌 그림이 배달된다니, 이게 웬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한 달에 3만3천원 정도 내면 ‘아트 프린트’라고 불리는 일종의 복사본을 매달 보내줘요.” 대학 시절 미술반에서 활동하고 틈틈이 전시회도 가는 등 그림에 관심은 많았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임씨가 소장한 그림은 여행지에서 사 온 길거리 화가들의 그림 정도였다. “갤러리에서 파는 원화는 비싸서 살 엄두를 못 냈는데, 이런 식으로 새로운 그림을 꾸준히 볼 수 있으니 좋아요.”

그림이 배달될 때는 작가의 인터뷰가 실린 잡지도 같이 온다. 1년 전부터 핀즐을 이용하는 이휘영(36·포토그래퍼)씨는 “작업의 콘셉트나 방향이 담긴 작가 인터뷰를 보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일단 어떤 작가인지, 무슨 작품인지 검색해볼 필요가 없으니 편하고요(웃음), 집에 온 손님이 그림에 대해 물어도 그냥 ‘유명한 작가야!’ 라고 하기보단 제대로 설명할 수 있으니 유용하죠.” 핀즐은 이탈리아 미켈라 피키, 독일 기욤 카시마, 일본 타쿠 반나이 같은 외국 젊은 작가들을 주로 다루며, 작가 인터뷰는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림의 크기는 꽤 큰 편으로, 거의 전지와 맞먹는 ‘에이원’(A1) 크기다. 정기 구독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핀즐 누리집과 온라인 편집숍 ‘29센치’에서 그림을 따로 살 수도 있다.

‘오픈갤러리’는 그림을 대여해주는 곳. 3개월마다 그림을 골라 바꿀 수 있다. 사진 오픈갤러리 제공
싫증 날만하면 바꿔 걸자!···원본 그림 빌려주는 ‘오픈갤러리’

비싼 돈을 주고 사려니 망설여지고, 복사본을 사려니 원본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기껏 사서 걸어놓긴 했는데, 매일 보다 보니 싫증 나고 지겨운 건 어쩔 수 없다. 갤러리에서 볼 땐 마음에 들었지만, 막상 사서 걸고 보니 벽지나 가구와 어울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땐 그림 대여가 답이다.

30대 후반 주부 이영은(경기도 군포)씨는 그림을 대여해주는 ‘오픈갤러리’를 이용한다. 집안 분위기를 바꾸는 일에 한계를 느끼면서부터다. “벽지나 가구를 계절마다 바꿀 순 없으니 인테리어 액자를 주로 샀어요. 금방 질리더라고요. 그렇다고 또 사긴 부담스럽고요.” 3개월마다 그림을 바꿔 걸기 시작한 지 1년이 좀 넘었다. “싫증 날만하면 새로운 그림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좋아요. 그림 하나만 바꿔도 집안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거든요. 추상화부터 인물화, 풍경화까지 다양하게 고를 수 있는 것도 장점이죠.”

오픈갤러리를 이용하면 고가의 그림을 굳이 살 필요 없이 원작 가격의 1~3% 수준으로 대여할 수 있다. 그림 대여는 합리적인 속성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산업이다. 그림을 전혀 모른다고? 걱정하지 마시라. 큐레이터가 공간의 규모와 특성을 고려해 그림을 추천해준다. “저도 미술이나 예술을 잘 몰라요. 그림도 갤러리를 다니면서 자주 봐야 보는 눈이 생기는데, 애들 챙기랴 집안일 하랴, 그러긴 힘드니까요.” 처음에는 무슨 그림을 골라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지만 이제는 ‘나만의 관점’이 생겼다는 이씨의 말이다.

큐레이터는 그림을 걸 때도 설치 기사와 함께 온다. 그림을 설명해주기 위해서다. 오픈갤러리가 보유한 작품 수는 약 2만2천점, 계약 중인 작가는 7백여명이다. 대여료는 10호(50x45cm) 기준 월 3만9천원이며, 그림 크기가 커질수록 가격도 올라간다. 대여한 그림이 마음에 들면 구매도 가능하다.

서양화가 부부가 직접 그린 그림을 파는 ‘그림가게 뚜’. 20호 이하 그림은 모두 9만원이다. 사진 그림가게 뚜 제공
부담스러운 ‘갤러리’ 아닌 친근한 ‘그림 가게’···‘그림가게 뚜’

갤러리에 처음 가면 괜히 주눅부터 든다. 고급스러운 조명, 작은 소음도 울릴 만큼 널찍한 공간, 뭔가를 아는 듯한 표정을 짓고 여유롭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 부잣집 사모님은 으레 갤러리 관장으로 나오는 드라마 설정은 갤러리를 더욱 ‘그들만의 리그’로 인식하게 만든다. 하지만 갤러리가 아닌 ‘그림 가게’라면?

서양화를 전공한 부부는 홍대 앞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틈틈이 개인전을 열고 고가의 그림을 팔았지만, 생계가 어려웠다. 학원을 접고 난 뒤, 강원도 홍천 일대 숲을 다니며 잣을 주웠다. 남편은 상급 소아마비를 앓고 있어 비탈길을 주의해야 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해도 한 포대를 채우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한 포대를 채웠을 때 받는 돈이 겨우 9만원. 이렇게 힘들게 일해도 9만원밖에 못 버는데, 그림을 그려 9만원을 벌면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경훈(59)·이완경(58)씨 부부가 ‘그림가게 뚜’(경기도 양주 송추계곡)를 열게 된 사연이다.

그림가게 뚜에서는 부부가 직접 그린 20호 이하의 원본 그림을 9만원에 판다. 미술관에서는 같은 크기의 그림이 평균 250만원 정도다. “군부대 입주 청소도 하고, 공원에서 제초 일도 했어요. 풀이 많이 자란 여름에 뙤약볕 밑에서 독한 제초제를 뿌려야 하는 일이었죠. 그렇게 몸을 쓰며 생계를 유지하다 보니 세상에는 그림 그리기보다 힘든 일이 많은데, 그림은 왜 그렇게 비싼 걸까 의문이 들었어요. 9만원을 벌려면 새벽부터 밤까지 일해야 하는데, 그럼 이 노동의 가치는 그림보다 하찮은 건가 싶었죠. 그러니 앞으로는 0하나씩 빼고 팔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림가게 뚜는 문을 연 지 7개월 만에 4백점의 그림을 팔았다. 비싸게 내놓은 그림이 어지간히 안 팔리던 과거와는 대조적이다. “사람들이 그만큼 미술품을 희망하고 있었다는 거죠. ‘난 그림을 살 수 없는 사람이고, 그림을 어디서 사는지조차 몰랐는데, 나도 그림을 살 수 있구나’ 하시더라고요. 그림을 평생 처음 사보는 분이 너무 많아요. 얼마 전에는 학생 한 명이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4만원짜리 수채화를 사 갔어요.”

평범한 사람들도 그림을 갖고 싶은 열망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그림가게 뚜. 1층은 카페를 겸한 갤러리고, 2층은 부부가 쓰는 작업실이다. 드로잉, 유화, 수채화, 사실화, 풍경화, 추상화까지 그림의 종류는 다양하다. 앞서 말했듯 20호 이하는 9만원이고, 30·40·50호는 19~29만원이다.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그림 선이나 색채를 써서 사물의 형상이나 이미지를 평면에 나타내는 행위다. ‘그림러’는 ‘그림 그리는 사람’을 뜻인 신조어. 그림은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인 표현수단이다. 본래는 실용성보다 심미성이 강하지만, 요즘은 이모티콘이나 웹툰·캐릭터 같은 산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런 분야에서는 컴퓨터로 그리는 디지털 페인팅이 대세다. 재료에 따라 유화·수채화·아크릴화·색연필화 등으로 나뉘며, 소재를 기준으로는 인물화·풍경화·정물화·비구상화(추상화) 등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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