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12.06 09:38 수정 : 2018.12.07 19:46

그림을 그리고 있는 유선주 객원기자. 사진 드로잉프렌즈 제공

커버스토리┃그림러&그림
유선주 객원기자 그림 수업 체험기
그림으로 마음도 치유하는 '드로잉 프렌즈'
도자기가 도화지인 포슬린페인팅 '아틀리에 봄'
"손맛·몰입감 최고···친구에게 선물할 생각"

그림을 그리고 있는 유선주 객원기자. 사진 드로잉프렌즈 제공
그림을 못 그린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자조적으로 쓰는 말 중에 ‘망손’과 ‘똥손’이 있다. 나는 망손이다. 이 손으로 나의 개성과 취향을 드러내는 건 무리일까? 내 손과 화해하도록 이끄는 그림 수업 두 가지를 체험해봤다.

자기 발견 드로잉 ‘드로잉 프렌즈’

텔레비전에 나오면 넋을 놓고 보게 되는 3대 아저씨가 있었다. ‘통 아저씨’ 이양승씨는 몸을 참 잘 접었고, 종이접기 달인 김영만 아저씨는 뚝딱뚝딱 만들기를 참 잘했다. 외국엔 밥 로스 아저씨도 있다. 밑그림도 없는 캔버스에 붓으로 물감을 툭툭 찍어 올리고 페인팅나이프로 쓱 긁다 보면 어느새 호숫가가 생기고, 침엽수가 자라며 오두막이 들어선다. 밥 아저씨는 말했다. “어때요. 참 쉽죠?”라고.

그림 그리기는 정말로 쉬울까? 누구든 수업 시간이나 회의 중에 가볍게 끄적이는 그림에 푹 빠져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창작 욕구가 마구 솟아올라서 정색하고 펜을 쥐면 그때부터 브레이크가 걸린다. 뭘 제대로 그리기도 전에 틀렸다는 표시로 직직 선을 그어버린다. “에이 망쳤다.” 남과 비교하고 나를 다그치고 쉽게 실망하는 이 마음을 어쩌면 좋을까?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취미 드로잉 아카데미 ‘드로잉 프렌즈’를 찾아갔다. 이곳의 ‘자기 발견 드로잉’ 수업은 그림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것부터 출발한다.

‘드로잉 프렌즈’에서 작업하고 있는 수강생의 작품. 사진 드로잉 프렌즈 제공
“우리 눈은 다양하고 복잡한 이미지를 짧은 시간 안에 인식하고 판단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훈련받지 않은 손으로 그린 그림이 내 눈에 안 차는 것은 당연하다. 우선 눈과 손의 차이를 인정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드로잉 프렌즈 장진천 대표의 말이다. 8주 과정은 펜 드로잉부터 그리면서 다양한 선 맛을 알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내 주변의 사물을 천천히 관찰해 눈과 손을 조응시키는 법을 익히고, 일러스트를 그려서 에코백이나 티셔츠 등 ‘굿즈’로 제작해 활용하는 법도 알려준다. 그림으로 일상을 기록해보고 마지막엔 나의 추억을 그림으로 남기는 여행 드로잉으로 수업이 마무리된다.

그림을 못 그린다고 지레 포기하던 이들이 자신의 손에 대한 믿음을 되찾고, 그림이 지속 가능한 취미가 되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수업의 지향점이다. 장 대표는 “독학을 위한 강의”라고도 표현한다. 그래서 초급반 다음에 중급, 고급으로 가는 상위 클래스가 없다. 대신 공식 카페의 활동이 활발하다. 수강생들은 매주 릴레이로 주제를 바꿔가며 자신이 그린 그림을 올리는 ‘위드(위클리 드로잉)’이나 그림 소풍 모임 등으로 교류한다. 수강생은 직장인이나 전업주부 등 35살 이상이 많다.

유선주 객원기자가 그린 그림 ‘가오리 연가'. 사진 드로잉 프렌즈 제공
체험 수업 전날엔 못 그려서 망신당하면 어쩌나 초조했지만, 수업을 진행하는 장 대표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초보자의 불안은 어느새 훌훌 털었다. 내 감정, 내 경험을 소재로 삼는 그림이니까, 내가 즐거우면 된다. 여행 드로잉에 쓸 사진은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 표지판 옆에 가오리 두 마리가 나란히 걸려있던 모습으로 골랐다. 풍경을 그릴 때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담으려고 하지 말고 우선 맨 앞에 보이는 사물의 밀도를 높이라는 설명을 듣고 약 50분 동안 가오리를 열심히 그렸다. 완성은 안 되었지만, 제목은 정했다. ‘가오리 연가’다.

드로잉 프렌즈

’자기 발견 드로잉’을 모토로 내세우는 취미 드로잉 아카데미다. 과정은 8주. 그림을 에코백이나 티셔츠 등에 그려 넣어 ’굿즈’를 만드는 법 등도 알려준다. (서울 마포구 신촌로4길 22-12 플로렌타워 빌딩 5층/dwfriends.com)

그림을 담는 그릇 ‘아틀리에 봄’

그림을 꼭 종이에 그려야 할까? 색다른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포슬린페인팅은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리는 공예의 한 종류다. 학원이나 공방의 누리집을 보니 한 가지 망설이게 하는 점이 있었다. 장미, 국화, 팬지 등. 대부분의 작품 이미지가 꽃이었다. 이렇게까지 꽃을 그릴 일인가! 꽃이 싫지 않지만, 꽃만 그린다고 생각하니 부담스럽기도 했다.

포슬린페인팅 수강생들의 작품. 사진 아틀리에 봄 제공
지난달 27일에 찾아간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아틀리에 봄’은 꽃 외에도 다양한 포슬린페인팅 작품을 구경할 수 있었다. “저부터도 정해진 커리큘럼을 똑같이 따라서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수강생이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으면 웬만하면 다 승낙한다. 원하는 스타일을 찾도록 가이드를 해준다. 6년 전에 공방을 시작할 때부터 조금 편하게, 문턱을 낮추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포슬린페인팅과 글라스페인팅 수업을 겸하는 최새봄 작가의 강좌에는 2~30대의 젊은 수강생들이 많다.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를 그리는가 하면, 여행 사진을 접시에 옮기고, 해골 도안을 그리는 이도 있다. 물론 꽃도 있다.

포슬린페인팅을 설명하고 있는 최새봄 작가. 사진 아틀리에 봄 제공
도자기에 그림을 그린다니, 가마에 굽고 나서 원하는 색이 안 나오면 망치로 와장창 깨버리는 조선시대 도공 같은 작업을 상상했는데 포슬린페인팅은 방식은 달랐다. “이미 완성된 도자기 위에 그리고 다시 굽는 방식이다. 초벌 굽기는 한 번, 그리고 유약을 발라 구우면 끝나지만, 이 작업은 한계가 없다. 수차례 그리고 굽기를 반복하면서 표현을 쌓아 올린다. 물론 딱 한 번 굽고 끝내는 게 성미에 맞는 분들도 있다.” 최 작가가 펜과 붓 페인팅 실습용으로 머그잔을 내왔다. 매끄러운 표면, 심지어 곡면이다. 손재주 없는 사람에겐 너무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도자기 전용 연필과 먹지로 스케치를 하면 된다. 밑그림은 굽는 동안 깨끗하게 사라진단다.

유선주 객원기자가 머그잔에 한 포슬린페이팅. 사진 아틀리에 봄 제공
포슬린페인팅 전용 안료를 찍은 펜촉과 붓의 사용법도 종이와 다르다. 매끄러운 도자기 표면은 물기나 기름기를 흡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엔 새하얀 머그잔에 바들바들 떨면서 펜촉을 올렸다. 익숙해지니 묘한 손맛이 느껴졌다. 낯선 소재에 적응하는 몰입감도 크다. 무엇보다 설레는 건, 내가 그린 그림을 일상에서 식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나를 마치기도 전에 선물하고 싶은 사람의 얼굴도 떠올랐다. 크리스마스 휴일이 얼마 남지 않았고 공방에는 캐럴도 흐른다. 양말과 겨우살이 장식을 머그잔 앞뒷면에 그렸다. 가마에 반나절을 굽고 난 완성품은 그린 직후보다 훨씬 근사해진단다. 원데이 클래스만 다녀왔는데도 병이 생겼다. 흰 접시와 머그잔만 보면 뭔가 자꾸 그리고 싶어지는 증상이다.

아틀리에 봄

포슬린페이팅(도자기 등을 도화지로 하는 그림) 전문 그림 아카데미.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수채화 등과는 다른 독특한 그림 그리기를 배울 수 있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미산로29길 40-18 4층/atelier-bom.com)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선을 긋고, 면을 칠하고, 색을 긁어내는 다양한 드로잉 북

하얀 백지가 막막한 이들, 그림에 영 재주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몰입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조해너 배스포드의 <비밀의 정원>을 비롯한 다양한 컬러링북들이 한동안 베스트셀러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빈 면의 색을 채워가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잡념도 떨치는 효과가 있다. 반복되는 패턴의 선을 긋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오메트릭 패턴 드로잉>은 자와 컴퍼스로 아름다운 기하학무늬를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아크릴 물감은 유화 물감처럼 두텁게 표현할 수 있으면서 건조 속도가 빠르고 수채화 물감처럼 물로 간단하게 붓을 헹굴 수 있다. <메리 썸머(Merry Summer) 아크릴물감 뉴에디션>은 일러스트레이터 드로잉 메리의 밑그림 20점과 작가가 실제로 사용하는 아크릴 물감이 포함된 구성이라 도구 고민을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다. 종이 팔레트도 제공한다. 면을 채워가며 아크릴 물감의 성질을 익히면 작가의 작품처럼 멋진 일러스트가 만들어진다. 어린 시절 스케치북을 크레파스로 알록달록하게 칠한 후, 그 위에 검은 크레파스로 덮은 면을 뾰족한 막대기로 긁어내던 쾌감을 기억할 것이다. 번거로운 밑 작업을 대신해 주는 ‘스크래치북’이 있다. 도시의 야경, 식물, 동물, 명화 등 주제도 다양하다. 긁어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린다.

유선주 객원기자

그림 선이나 색채를 써서 사물의 형상이나 이미지를 평면에 나타내는 행위다. ‘그림러’는 ‘그림 그리는 사람’을 뜻인 신조어. 그림은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인 표현수단이다. 본래는 실용성보다 심미성이 강하지만, 요즘은 이모티콘이나 웹툰·캐릭터 같은 산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런 분야에서는 컴퓨터로 그리는 디지털 페인팅이 대세다. 재료에 따라 유화·수채화·아크릴화·색연필화 등으로 나뉘며, 소재를 기준으로는 인물화·풍경화·정물화·비구상화(추상화) 등으로 나뉜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커버스토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