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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06 09:31 수정 : 2018.12.06 14:35

화실 ‘아트 아뜰리에'에서 그림 그리기에 푹 빠진 이들. 그림 수업은 또 다른 ‘힐링' 분야로 뜨고 있다. 사진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커버스토리┃그림러&그림
‘워라밸’ 추구하는 30대 그림 그리기에 빠져
‘?E’·‘그림러’란 신조어도 검색어에 올라
취미 미술 가르쳐주는 학원 개업도 봇물
노인에게도 치매 예방 등 권할 만한 취미

화실 ‘아트 아뜰리에'에서 그림 그리기에 푹 빠진 이들. 그림 수업은 또 다른 ‘힐링' 분야로 뜨고 있다. 사진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붓질을 하다 보면 2시간이 금방 가요. 끝날 때는 언제나 아쉽죠. 아, 여기 조금만 더 칠할걸.(웃음)”

지난달 28일 저녁 7시, 서울 강남역에 있는 ‘아트 아뜰리에.’ 김다혜(30)씨가 유화로 인물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는 근처 건설회사에 다닌다. “퇴근길에 와서 그려요. 그림에 몰입하면 복잡한 생각이 정리돼요.” ‘여행스케치’ 수업을 듣는 직장인 이경욱(32)씨는 연필과 볼펜으로 기린을 그리는 중이었다. “평소 스트레스가 많은 편인데, 여기 오면 스트레스는 빼고 저만 여기 옮겨 온 느낌이에요.”

‘?E’이라는 말이 있다. 그림의 준말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을 뜻하는 ‘그림러’도 있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많은 이들이 그림을 그린다. 동호회도 많고, 포털 네이버에 있는 그림 관련 카페는 1만4천개 정도다. 유화나 수채화·아크릴화·색연필화부터 도자기에 그리는 포슬린페인팅, 유리에 그리는 글라스아트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한때는 미술이 경제력과 재능이 있어야 가능한 취미였다. 요즘은 아니다. 미술 학원 대부분이 재료와 화구를 제공하기 때문에 굳이 비싼 값을 주고 재료를 살 필요가 없다. 손재주가 없다고? 기초반에서 먹지를 대고 그려보자. 어떤 그림이든 그릴 수 있다. 디지털 페인팅을 배우는 것도 방법이다. 부족한 재능은 컴퓨터가 보완해주며, 여행지에서건 집에서건 태블릿 피시 한 대면 그릴 수 있으니 간편하기까지 하다.

시간이 일정치 않거나 확신이 없다면? 하루 2~3시간짜리 ‘원데이 클래스’를 즐겨보자. 주로 팝아트 초상화를 그리는데, 자기 자신이나 소중한 사람의 얼굴이 담긴 캔버스를 들고 돌아가는 길이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실크스크린으로 판화를 그리거나, 에코백과 손수건을 만들기도 한다.

미술 학원에서만 그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직장인 윤수빈(30)씨는 최근 컬러링북에 빠졌다. 컬러링북은 인쇄된 스케치에 색칠만 하도록 만들어진 책이다. “월요병이 좀 덜해진 것 같아요.(웃음)” 그는 퇴근하면 샤워를 하고, 음악을 틀어놓고, 컬러링북을 펼친다. “색을 칠하다 보면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데, 그 느낌이 좋아요. 어릴 때 하던 ‘색칠공부’ 생각도 나고요.”

화실 ‘아트 아뜰리에'에서 그림 그리기에 푹 빠진 이들. 그림 수업은 또 다른 ‘힐링' 분야로 뜨고 있다. 사진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영·유아기에는 누구나 그림을 그리고, 그 후에도 많은 이들이 그림을 배운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고 입시경쟁의 궤도에 들어서면서 그림은 전공자 등 특정한 사람들의 영역으로 멀어진다. 즐거웠던 미술 시간은 자습 시간으로 바뀌고, 10대를 위한 미술은 오직 입시미술 뿐이다. 그렇게 ‘세계와 나를 잇는 연결고리’를 잃는다. “뭔가를 그리려면 관찰이 필요하고, 관찰을 하려면 관심이 필요하다. 그림은 세계와 나를 잇는 연결고리다.” 소설가이자 문화비평가인 존 버거는 말했다.

김다혜씨도 잘 다니던 미술학원을 중학생이 되고 나서 관뒀다. 최근 퇴근하고 집에 가니 그가 그린 유화가 걸려 있었다. “부모님이 걸어놓으셨더라고요. 그때 진학 문제로 그림을 그만두게 했다는 미안함 때문이신지 지금은 많이 응원해주세요. 저도 예전에 포기했던 꿈을 찾는 기분이고요.”

‘모든 아이는 예술가로 태어난다. 문제는 이들이 크면서 어떻게 예술가로 남아있느냐다.’ 피카소가 남긴 말이다.

최근 그림 그리기 취미가 젊은 층에만 부는 바람은 아니다.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사는 설미연(78·가명)씨의 거실엔 손자, 소녀의 초상화나 꽃, 풍경화 등의 그림이 걸려 있다. 한 미대 교수가 만든 취미반에서 그린 그림이다. 지금은 동네 복지관에서 미술수업을 듣는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무료한 시간을 그림 그리며 보낸다. 이제는 힘에 부쳐 탁구 같은 운동은 안 한다. 노인에게 하루는 길다. 그림 그리는 동안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손자, 소녀를 그린 그림을 아이들에게 선물하면 좋아한다.” 치매미술 치료전문가들은 그림은 “손을 쓰기 때문에 소근육 운동이 될 뿐 아니라, 주변의 색과 형체에 관심을 두고 주의 깊게 봐야 하므로 노년기에 자칫 퇴보하기 쉬운 시각·지각 능력과 공간개념이 향상돼 치매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바람이 차가워지는 계절이다. 그림은 날씨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모쪼록 ‘?E확행’ 해보시기를.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그림 선이나 색채를 써서 사물의 형상이나 이미지를 평면에 나타내는 행위다. ‘그림러’는 ‘그림 그리는 사람’을 뜻인 신조어. 그림은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인 표현수단이다. 본래는 실용성보다 심미성이 강하지만, 요즘은 이모티콘이나 웹툰·캐릭터 같은 산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런 분야에서는 컴퓨터로 그리는 디지털 페인팅이 대세다. 재료에 따라 유화·수채화·아크릴화·색연필화 등으로 나뉘며, 소재를 기준으로는 인물화·풍경화·정물화·비구상화(추상화) 등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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