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민의 탐정놀이
그곳에서 어릴 때 기억나기 시작 첫 번째 응급실 경험은 초등학교 때 했다. ‘어린이 해병대 캠프’라는 이름이었던가. 학교에서는 그걸 극기훈련이라고 불렀다. 충청남도 안면도 근처였던 걸로 기억한다.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짐을 풀고 빨간 모자를 푹 눌러쓴 아저씨들의 구호에 따라 움직였다. 오와 열을 맞추지 않으면 오리걸음이나 쪼그려 뛰기를 시켰다. 함께 온 선생님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자 분위기는 더욱 강압적으로 되었다. 사고가 터진 건 다음 날이었다. 빨간 모자 아저씨들은 우리를 바닷가로 데려갔다. 그러고는 손에 손을 잡고 뒷걸음으로 물에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꽤 쌀쌀한 날씨였다. 몇몇 아이들이 울음을 터트려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맞잡은 손에 의지하며 한 발 한 발 안으로 들어갔다. 사고 직후 신문에는 ‘바닥이 움푹 팬 갯골에 초등학생 23명이 무방비 상태로 휩쓸려 실종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바닷물을 두어 번 들이켜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숨이 턱까지 찼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다행히도 다섯 살 때부터 수영을 배웠던 나는 정신없이 뭔가를 뿌리치고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바위에 부딪힌 정강이에서는 피가 철철 흘렀다. 내 오른손을 잡았던 민아와 왼손을 잡았던 재호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인근의 응급실에서 급한 치료를 받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해 며칠을 앓았다. 텔레비전에는 연일 극기훈련 사고 현장이 보도되었다. 닷새 후. 실종됐던 23명의 아이 가운데 9명은 시신을 찾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수색도 난항이라는 소식을 기자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전했다. 어처구니없는 인재라고도 했다. 9명의 명단에는 매일 함께 등교하고 방과 후에 늘 어울려 놀던 민아와 재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 퍼뜩 떠올랐다.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내가 뿌리쳤던 건 민아와 재호의 손이었다는 생각이. 더럭 겁이 났다. 엄마 아빠에게 얘기해야 하나. 그 아이들의 부모님께 고백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사람이 세 시간 넘게 울면 죽는다던데’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집에 돌아와 있었다. 잠든 사이에 병원에서 퇴원한 건가.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집 안 풍경은 극기훈련을 떠나기 전과 똑같은데 식구들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았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나는 벌떡 일어났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맑고 창문으로 따듯한 햇살이 비쳐들었다. 마당으로 나가 보았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엄마? 누군가 후다닥 뒤꼍으로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야? 어디 있어, 엄마. 나는 엄마를 부르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홍민아, 숨바꼭질하자.” 그것은 분명 민아의 목소리였다. 잊을 리가 있나. “민아야? 너 어디 있어?” 나는 민아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반가운 마음에 왈칵 눈물이 났다. “아이참, 숨바꼭질이라니까.” 얘가 왜 갑자기 숨바꼭질을 하자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꿈이구나.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구나. 꿈이라는 걸 알았지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숨바꼭질을 하자고? 그래, 알았다. 내가 찾아주지. 우리 집 마당은 넓고 숨을 데는 많았다. 나는 앞마당과 뒷마당을 한참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담장 옆을 살피려는데 뒤쪽에서 탕하고 큰 소리가 났다. 현관문이 막 닫힌 참이었다. 문 사이에 노란 손수건의 끄트머리가 끼어 있었다. 내가 올해 생일날 민아에게 선물한 손수건이었다. 그 손수건이 손에 닿으려던 찰나,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부르르 몸이 떨렸다. 나는 잠에서 깼다. 여전히 병원이었다. 엄마 얼굴이 보였다. 내가 잠꼬대를 하며 몸부림을 치더라고 엄마는 말했다. 그리고 이런 얘기도 들려주었다. 방금 민아 시신이 발견됐다고. 손에 노란 손수건을 꼭 쥔 채로 파도에 떠밀려 왔다고. 초등학생 때 간 ‘어린이 해병대 캠프’
극기훈련 중 친구들 실종·사망 이틀 뒤에 나는 또 꿈을 꾸었다. 이번에는 우리 집이 아니라 재호네 집이었다. 재호와 함께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마루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마당 한쪽에 세워둔 자전거도 보였다. 그리운 광경이었다. 꿈이라는 걸 알았지만 가슴이 설다. 나는 친구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재호야, 어디 있어. 타닥타닥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허둥지둥 뛰어갔다. 그러자 발걸음이 뚝 멈췄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오늘은 재호랑 숨바꼭질을 하는 거구나. 내가 술래다. 금방 찾아줄게, 친구야. 나는 땀이 뻘뻘 나는 것도 잊고 열심히 찾아다녔다. 얼마나 뛰었는지 무릎이 얼얼했다. 숨이 차서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었다. 그때 마당에 있는 변소 위쪽 장독대 사이에서 콧노래 소리가 들렸다. <모래요정 바람돌이>의 주제가였다. 여전히 곡조는 엉망이었다. 엉망이라고 놀려도 늘 끝장을 보는 것이 재호의 특기였다. 가만히 살피니 그중 제일 큰 장독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찾았다!” 나는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장독 뒤를 덮쳤다. 그러자 독이 와장창 깨지며 안에 들어있던 간장이 쏟아져 나왔다. 그날, 재호의 시신이 어부가 바다에 던진 그물에 걸려서 발견되었다. 그 후로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동안 나는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사를 하고 원하던 학과에 합격하고 대학에서 공부하는 사이에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고 나이를 몇 살이나 먹어도 동무들과 꿈속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기억은 잊히지 않았다. 만날 수만 있다면 다시 한번 꿈속에서라도 만나고 싶었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속으로 바랐다. 오늘 밤 잠이 들면 그때처럼 숨바꼭질하며 놀 수 있기를, 잠깐이나마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면 전 우주가 도와준다고 쓰인 책도 사서 읽었다. 허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은 책에서나 가능한 얘기임을 실감할 뿐이었다. 추억으로 간직할 수밖에 없는 건가. 그런데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 겨울에 그 바람이 이루어졌다. 내가 태어나 두 번째로 실려 간 응급실에서였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쓰러졌는데 정신을 차리니 어릴 적 살던 집에 와 있었다. 놀라지는 않았다. 그리운 우리 집이네. 다시 왔구나. 감회에 젖어 있는데 발소리가 들렸다. 한 명이 아니었다. 두 명이 뛰어다니는 소리였다. 아아, 드디어 내 차례인가. 이번 숨바꼭질에서는 내가 숨고 민아와 재호가 술래다. 이제야 만나러 와주다니, 참 오래 걸렸다고 중얼거리며 나는 눈 밑을 쓱 문질렀다. 어서 나를 찾아봐, 친구야. 나는 20년 전 그날처럼 신나게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장독 뒤에 숨을까. 뒤꼍으로도 문이 나 있는 부엌에 숨을까. 내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뒤쪽에서 아이들 발소리가 들렸다. 곡조가 엉망인 콧노래 소리도 들렸다. 카피카피 룸룸 카피카피 룸룸, 이루어져라! 그 곡조에 가락을 붙여 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면 금방 찾을 수 있을 텐데. 왜 이렇게 못 찾는 거야. 아주 쉬운 데 숨어 있잖아. 장난치지 말고 얼른 찾아줘. 안달하던 내가 막 노래를 불러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 알리려는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성인이 된 후에도 친구들 꿈꿔
상처 다룬 책 통해 잊지 않으려는 노력 중 “홍민이는 아직 아니야.” 재호의 목소리였다. “이렇게 서두르면 홍민이네 가족이 불쌍하잖아.” 이건 민아의 목소리. “홍민아, 다음에 만나.” 가만히 뒤돌아서니 초등학교 때 모습 그대로 두 친구가 다정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비치고 있었다. 싫다, 나도 너네랑 같이 갈 거다.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만 혼자 살겠다고, 너희들 손을 뿌리치고 나만 혼자 살아남아서, 얼마나 미안했는지. 내가 빌게. 이렇게 빌 테니까 용서해 달라고. 나도 데려가 달라고 흐느끼며 말했다. 울면서 소리쳐도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등에 가만히 닿는 부드러운 손바닥 감촉이 느껴졌다. 눈을 떠보니 엄마와 아빠, 동생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알아내지 못했던 내 병은 중앙대학교병원으로 옮겨서야 겨우 밝혀졌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 말라리아 보균자가 드물었는데 마침 일주일 전 같은 병에 걸린 환자를 치료한 의사가 우연히 응급실을 지나다가 콧노래 소리에 이끌려 내 차트를 보게 된 덕분이었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말라리아는 군 복무한 철원에서 걸렸다는 확신이 생겨 국가를 상대로 소송했으나 패소 판결을 받았다. 그 일을 겪은 뒤로, 국가 시스템이 오작동하여 가족과 지인을 잃은 사람들의 심정이 담긴 소설을 틈나는 대로 자주 읽는다. 잊지 않으려고. 이를테면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피리술사> 같은 책 말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무언가를 은폐하기란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다. 단 한 사람의 비밀도 들키고 탄로 나게 되어 있다.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 관련되는 눈과 귀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욱더 비밀은 새어나가기 쉬워진다. 본인에게 그럴 마음이 없어도 비밀이 생겨나는 자리에 우연히 있게 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새어나간 비밀의 대부분은, 이번에는 알고도 모른 척하는 사람들 속에서 감추어져 간다. 단단히 감추어진 죽음의 진상도 아는 사람은 알고 있다. 알고도 모르는 척하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때가 오면 알고 있는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을 아는 대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시대가 변한다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 기억하고 있어야만 한다. 모든 것을 지금 느끼는 마음 그대로 기억하고, 품고, 야무지게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겠다. 나도 잘 기억하고 있을게. 기억하고 있다가 전부 얘기해 줄게. 나중에 만나자, 친구야.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이 콩트는 필자가 독자들이 ‘읽어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도록 다양한 소설을 색다르게 소개하는 방식인 ‘궁금증 유발적 소설 각색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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