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16 10:05
수정 : 2018.11.16 20:21
보통의 디저트
기억에 남는 대학 면접 경험이 두 개 있다. 첫 번째는 ‘고3’이 끝난 뒤 지원했던 어느 야간대학이었다. 지금이야 야간대학이라는 것이 사라져 생소한 것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있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직장인을 위해 개설된 과정이라 했고, 그래서 입학을 위한 점수도 낮았다. 내가 그곳을 지원했던 것은 당연히 내 점수로 갈 수 있는 주간대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입학 기준을 넘어 면접을 볼 수 있었다. 면접은 교수실에서 교수 한명이 학생 셋에게 질문하는 형식이었다. 나는 잔뜩 긴장했다. 주간이니 야간이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곳마저 떨어지면 나는 대학생이 될 수 없었다.
“먼저, 김보통 학생.” 나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했다. “우리 학교에 오게 되면, 어떤 학과에 진학하고 싶은가요?” 첫 질문부터 허를 찔렸다. 내가 지원했던 학부는 국제학부였는데, 그 학부에 무슨 과가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딱히 날카로운 질문도 아니지만, 어리석은 나로서는 예상치 못한 일격이었다.
“영문학과에 가고 싶습니다.” 국제학부니 그런 것쯤 있겠지라는 생각에서였다. “우리 학부엔 그런 과가 없네.” 그렇게 말하는 교수는 기가 차다는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일문학과를.” 나름 기민하게 생각한 답이었다. 옆에서 ‘흐읍’하고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나머지 두 면접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매우 당혹스런 표정에서 내가 오답을 말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과도 없네.” 교수는 체념한 듯 시선을 내리깔며 말했다. 거의 떨어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이대로 호락호락 떨어질 수는 없었다. 뇌세포를 총동원해 쥐어짠 해답을 교수에게 던졌다. “그럼 무슨 과가 있나요?” 교수는 소리를 내어 한숨을 쉬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다른 면접자들을 보니 왠지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후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놀랍게도 나는 그 대학에 합격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나를 합격시켜준 그 대학은 가지 않았다. 학교에서 교수님이 나를 발견했을 때 ‘저 녀석이 우리 학교 학생이라니’하는 자괴감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았다.
두 번째는 재수를 해 이듬해 본 수시 면접이었다. 이번엔 교수 셋에 학생 한명이었는데, 그중 한 교수가 물었다. “맨홀 뚜껑이 동그란 이유가 뭔지 아는가?”
그런 걸 내가 알 리가 있나. 하지만 이 질문은 ‘정말’ 그 이유를 묻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의 창의성과 혁신성을 살피려는 심산이겠지.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죠.”
면접이 끝난 후 어머니와 학교 앞 카페에서 도넛을 먹었다. 어머니는 근심스런 표정으로 “합격할 수 있겠어?”라고 물었고, 나는 “물론이지”라고 답했지만, 당연히 떨어졌다. 하지만 당시로선 납득할 수 없었다. 나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한 교수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떨어진 그 대학에 수능을 봐 정시로 합격했다. 나를 탈락시킨 교수들을 기를 쓰고 찾아내 ‘저 녀석이 우리 학교에 다니다니?…’하는 의아함을 안겨주고 싶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면접 때의 교수 얼굴을 까먹어버렸다. 이후로 학교에서 나를 보고 흠칫 놀라는 교수를 볼 때면 그때 그 교수인가 짐작했을 뿐이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에서 많은 것을 배웠냐면, 그렇다. 하지만 대학을 안 갔다면 무언가를 배우지 못했을까 묻는다면 글쎄. 어떤 선택을 해, 어떤 삶을 살았든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우지 않았을까.
이맘때면 ‘대학을 꼭 가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중요한 것은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거나, 선택한 것의 결과를 미리 짐작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는 도넛을 고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마다 다른 맛의 도넛일 뿐, 어떤 맛이 더 우월한가를 따지는 것은 쓸데없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섭취한 칼로리만큼 살아내면 된다.
글·그림 김보통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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