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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13 22:01 수정 : 2007.06.13 22:16

<하얀 거탑>에서 <거침없이 하이킥>까지, 상반기 드라마의 빛나고 아쉬웠던 순간들. 에스비에스·한국방송·문화방송 제공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하얀 거탑>에서 <거침없이 하이킥>까지,
상반기 드라마의 빛나고 아쉬웠던 순간들

당신이 꼽는 올 상반기 최고의 드라마는? <매거진t>의 백은하 편집장과 “달리 할 일이 없어 텔레비전을 많이 보는 아줌마”라고 자신을 소개하지만 40대 후반의 나이가 무색하게 젊은 감각을 지닌 칼럼니스트 정석희씨가 올 상반기 텔레비전 앞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모은 드라마들의 빛났던 순간과 아쉬웠던 순간을 되새김질했다.

백은하 올 상반기에는 두고두고 곱씹어 볼 만한 드라마가 많았는데 제일 먼저 등장한 게 <하얀 거탑> 아닐까?

정석희 요새 드라마는 시청률과 인기의 체감온도 간극이 점점 더 벌어지는데 <하얀 거탑>도 그랬다. 젊은 사람들은 열광했지만 연세 많으신 분들은 이 드라마가 어렵고 복잡해서 재미없다고 하더라.

확실히 세대적으로 반응하는 드라마와 그렇지 않은 드라마가 갈렸다. 상반기에 막을 내린 <주몽>은 위험에 빠졌다가 해결되고 이렇게 단순한 구성으로 기존 시청자들에게 어필했지만 젊은 사람들은 자기 머리회전보다 느린 드라마는 시시하게 여긴다. 그런 면에서 <하얀 거탑>은 시청자들의 세대차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드라마였다.


<행복한 여자>의 시청률이 높았던 이유

그러니까 <마왕>은 시청률이 나올 리 없었던 거지. 촘촘하게 짜인 상황에 몰입을 해야 하는데 그런 거 머리 아프다고 여기는 세대는 못 본다. 유에스비니, 엠피3 녹음을 음악 파일로 교체한다느니 이런 이야기를 카세트 녹음해 듣던 세대가 어떻게 이해하겠나?(웃음)

<마왕>이나 <하얀 거탑>은 이야기가 촘촘히 박혀 있고 어떤 장면에서 나온 말이 나중에 어떻게 쓰일지까지 짜맞춰야 하니까 열정이 없으면 몰두하기 힘든 드라마였다.

정 반대로 <행복한 여자>나 <소문난 칠공주> 같은 드라마는 시청률은 높지만 인기나 영향력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드라마들의 시청자는 마당에 수도 있는 집에 대한 추억이 있고 <사랑이 뭐길래>를 보던 세대다.

백 시청률과 영향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드라마가 <거침없이 하이킥>이다. <하이킥>은 젊은 감성의 드라마인데 나이 든 시청자들이 일일드라마를 보는 시간에 편성돼 처음에는 우려도 있었는데 남녀노소를 다 사로잡았다.

시청자들을 골고루 잡으려면 등장인물을 골고루 배치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나문희, 이순재가 없으면 이만큼의 반응을 얻었겠나?

이 드라마가 두 중년을 다루는 방식은 여느 청춘물과 달랐다. 휴대폰 문자메시지도 보낼 줄 모르고 이런 나이 든 세대의 애환이 그저 웃긴 에피소드로 끝나는 게 아니라 몇년 뒤에 나도 저렇게 되겠지 하는 공감을 끌어냈다. 단순히 집안의 어른이 아니라 개별적 인간으로 그리니까 그 나이대의 시청자들까지 보게 되는 거다.

<하이킥>처럼 중년 캐릭터가 살아나는 게 드라마를 죽이고 살리는 데 더 중요해졌다. 개인적으로 <케세라세라>도 좋아했는데 통속멜로인데도 시청률이 안 나온 이유는 주연들을 받쳐주는 중년 캐릭터가 약했던 점도 있는 것 같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 엄마, 삼식이 엄마처럼 생기 있는 인물들이 있었다면 인기 있지 않았을까?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도 김수미나 김혜옥이 너무 잘했다. 안타까운 건 중년 연기자층이 얇다 보니 겹치기를 할 수밖에 없어서 소모되는 면도 있다. 예를 들어 송재호가 <사랑에 미치다>에서 주인공 시아버지로 나왔다가 채널 돌리면 <케세라세라>에서 회장님으로 왔다갔다 했는데 큰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나문희는 어쩜 그렇게 다양한 역을 그렇게 잘하는지 놀랍다. 얼마 전에 <놀러와>에 나와서 <하이킥>에서 애교 떠는 연기하기 힘들지 않았냐고 진행자가 물으니까 “저는 그냥 시키면 해요” 그러면서 태연하게 다시 ‘여봉~’ 연기를 해 보이더라.(웃음) 우리나라 배우 중 나문희가 최고인 거 같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노희경의 힘

너 어제 그거 봤어?
올 상반기 돌출됐던 드라마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가지 질문>을 빼놓을 수 없다. 노희경 작가, 성준기 감독을 중심으로 스태프, 배우 개런티를 전액 기부하는 ‘기부 드라마’로 알려진 2부작이었는데 그걸 보면서 방송판이라는 데가 누가 봐도 따뜻한 곳이 아닌데 노희경 작가는 진심으로 사람을 믿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배종옥은 <내 남자의 여자> 촬영만으로도 잠잘 시간이 없을 텐데 그 와중에 이걸 찍었다. 또 너무 시원하게 잘했다.

이런 시도가 ‘착하게 살자’는 식의 교훈이 아니라 방송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런 파워도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게 대단한 것 같다.

드라마도 좋았다. 시작과 끝의 개념 없이 일상의 한순간을 포착하는 형식이었는데 이런 걸 장르화시켜서 어떤 요일에는 이런 드라마만 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데 홍보가 너무 안됐다.

광고 때문에 연속성 없는 드라마는 방송사로서는 장점이 없다. 사실 작가, 배우, 감독이 노 개런티로 하지 않았다면 편성 자체가 불가능했을 드라마다. 이렇게 소명의식만으로 완성된 드라마가 이 살벌한 21세기에 만들어졌다는 게 신기하다.

쟁쟁한 배우들을 노 개런티로 끌어모은 건 노희경 작가의 힘인 거 같다. 노희경 작가 아니면 김수현 작가 정도나 가능할 일이지. 배우 이재룡은 노희경 드라마에서 건달로 나오는데도 너무 멋있는데 <착한 여자 나쁜 여자>에서는 완전히 바보가 돼서 속상할 거 같다.

노희경 작가는 배우를 볼 때 일반적인 시선과 다른 잣대로 사람을 보는 것 같다. 이재룡은 인텔리로 많이 나왔는데 노희경 작가는 그에게서 신사성보다 끼 많고 건들건들하는 걸 재밌는 구석으로 포착한 거다. 배종옥한테는 깐깐한 스타일을 비집고 나오는 헛똑똑이 같은 모습을 본 거고.

노희경은 완전 신인이었던 이한이나 천정명, 김민희처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친구들을 데려다가 반듯한 연기자로 만들어놨다. 그런데 <마왕>을 보면서도 주지훈이 딱 자리를 잡은 게 보이더라. 나중에는 엄포스(엄태웅)가 주지훈의 포스에 밀리는 것처럼 보이더라.

주지훈도 그렇고 에릭도 그렇고 이규환도 그렇고 모두 올 상반기의 발견이다. 앞으로도 이들처럼 잘생기고 똑똑한 친구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웃음) 즐거운 발견도 많았지만 나쁜 일도 많았다. <마녀유희>가 끝나고 보여줬던 시청률 책임 공방은 오랫동안 회자될 웃음거리다.

<태왕사신기>는 올해 안에 볼 수 있을까

극본이 나빠도 시청률 나오는 드라마가 있고 연기를 못해도 성공하는 드라마가 있다. 안되는 드라마는 두루 안된 건데 작가나 연출 탓만 하는 건 만날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하는 것과 똑같은 거다.(웃음)

<히트>는 시작했을 때의 스케일에 비하면 시청률이 그리 높게 나온 건 아니었는데 끝까지 팀워크가 좋았다. 그런 점에서 박상연 작가가 드라마 홈페이지에 ‘시청률 안 나왔던 건 내 잘못이다’라고 쓴 게 어떤 액션일 수도 있지만 <마녀유희>와 대조되면서 재미있었다. 하반기 기대작은 뭔가?

임성한 작가가 기다리고 있지 않나. 임 작가의 작품들이 초반엔 재밌고 괜찮다. 뒤로 갈수록 모든 캐릭터들이 산으로 가서 그렇지.(웃음) 임 작가가 결혼도 했으니까 이전과 좀 다른 시선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된다.

<태릉선수촌>을 만들었던 이윤정 피디의 <커피프린스 1호점>이 기대된다. 이윤정 피디는 드라마 감독 중에 드문 여성 감독인데 요즘 신진들 가운데 가장 앞서 있다. 윤은혜가 남장소녀로 변신한다는 것도 흥미롭고. 아, <태왕사신기>를 과연 올해 안에 볼 수 있을까도 궁금하다.(웃음)

최고의 의리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가지 질문>에서 노 개런티로 뭉친 스태프와 배우들.

“‘의리 없는 전쟁터’로 알려진 방송판에서 진짜 의리가 살아 있다는 걸 알려준 빛과 소금 같은 찰떡궁합.”(백은하)

“노희경 작가는 이들을 배우로 키웠거나 배우로서 새로운 면모를 찾게 해줬다. 당연히 모이지 않겠나.”(정석희)

최악의 의리

<마녀유희> 종영 직후 벌어진 시청률 책임 공방.

“한가인으로서는 똑똑한 척하다가 칭찬도 동정도, 아무것도 못 챙긴 발언이 아니었을까?”(백은하)

“인생의 조언자라는 게 정말 필요하구나. 한가인의 시부모님은 경험 많은 연기자인데 왜 그걸 못 말렸을까?”(정석희)

정리 김은형 기자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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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esc : 티브이로 사우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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