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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13 17:26 수정 : 2007.06.13 19:16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이보다 더 재밌는 휴가는 없었다’ 우수작

멜버른 공항에서의 좌충우돌,
출발시간이 지난 비행기를 세우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해질녘 노을을 바라보며 추억이 담긴 멜버른을 뒤로 한 채, 공항버스에 몸을 실었을 때까지는 말이다. 멜버른 공항에서 ‘제트 스타’ 비행기를 타고 브리스베인 공항에 도착하는 것이 나의 임무. 혼자서도 괜찮겠냐는 팀원들의 염려에, 나는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장담하며 홀로 하게 될 비행에 들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8주간 여행. 만족스러웠노라 성급히 결론 내리고, 한국을 향해 내 마음은 달음질치고 있었다.

“당신은 갈 수 없을 것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체크인 장소에 갔다. 웃음을 띠며 여권을 보여줬다. 그러나 들려오는 직원의 음성은 “당신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별일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예약 내역을 뽑은 종이를 전해주었다. 그러나 청천 병력 같은 말이 내게 돌아왔다. “당신 공항 잘못 왔다!” 내가 가야 할 공항은 이름 모를 외딴곳이라고 한다.(지금도 그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웁스!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상황을 짐작한 직원은 나에게 말한다. “당신은 갈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체크인 30분 전에는 가야 하는데, 여기서 거기까지 50분 거리. 지금 겨우 60분 남았다. 그러니 갈 수 없을 것이다.” 갈 수 없을 것이라는 직원의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개학 즈음이어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혹여 날짜를 바꿀 비행기 표가 생겼대도 수중에 여윳돈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꼭 그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절박함이 앞섰다.

정보센터로 가보라는 말에 당황한 가슴을 쓸어내릴 틈도 없이 달려갔다. 다시 처음부터 상황을 설명해야만 했다. “나는 공항에 지금 잘못 왔고, 그 비행기를 타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 까만 머리. 금방이라도 눈물 맺힐 눈으로 호소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직원분이 차분하게 설명해줬다. “오케이! 당신은 지금 당장 택시를 타고 그 공항으로 가야 한다. 최소한 50분은 걸리는데, 지금 출발하면 9시30분에 도착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쪽 공항에 당신의 상황을 이야기해 비행기 시간을 조금 연장해 보도록 하겠다. 서둘러라!”

장담할 수 없었다. 내가 타야 하는 제트 스타 비행기는 국내 전용으로 기내에서 물을 사고 지정 좌석도 없는, 한마디로 한 사람을 위해 기다린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비행기였다. 그래도 지푸라기는 잡았다. 이제 택시 타고 본래의 공항으로 이동하는 것. 그런데 아뿔싸! 택시비가 오스트레일리아 돈으로 90달러란다. 내가 가진 전재산은 50달러뿐인데. 카드도 하나 없었고 돈 빌릴 이 누구 하나 없었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갔다. 나는 택시를 타고 빨리 이동해야 했다. 그렇지만 돈이 부족한데?

이제 내 몫이었다. 택시를 잡았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 앞좌석에 탔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50달러로 어떻게 그 공항까지 갈 수 있을까? 택시기사는 인도에서 온 외국인이었다. 초를 다투는 시간과 부족한 돈 때문에 마음이 무척 조급했다. 그렇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그러곤 이야기를 건냈다.

‘이보다 더 재밌는 휴가는 없었다’

“잘 들으세요, 저 돈 없어요”

“나는 한국에서 왔어요. 한국 사람을 만나본 적 있어요?” “2002 월드컵 기억하세요? 삼성 휴대폰을 쓰시네요? 그거 한국산이에요.” 부족한 돈을 한국에서 보낼 심산이었던 나는, 자연스레 이야기하면서 전자우편 주소를 물었다. 내릴 때 물어보면 정신 없을 것이란 판단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기름도 한 번 떨어지고, 고속도로에서 시속 초과로 카메라에도 찍히고, 정말 여러가지 했다. 다시 내 지갑을 뒤졌다. 오스트레일리아 돈 50달러, 홍콩 공항에서 햄버거 먹으려고 남겨뒀던 15달러, 그리고 정말 지갑 탈탈 털어서 한국 돈 7천원을 찾았다. 전부 합치면 이곳 돈으로 75달러 정도였다. 그래도 부족한 택시요금. 미터기는 속절없이 잘도 올라갔다. 드디어 내가 가진 전재산 75달러를 넘었다. 나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야심한 낯선 이국땅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돈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저 어떻게 보이세요? 제 성격을 한 번 짐작해 보세요. 물론 우리가 처음 만났다 해도 왜 느낌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제 첫인상 어때요?” “왜 그런 것을 물어보지? 그래, 내 생각엔 당신은 이노선트(innocent)한 것 같다!” “그럼 그 말은, 어니스트(honest)와 비슷해요? 그럼 하나만 더 물을게요. 저 믿으세요?” 내가 생각해도 정말 어이없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래, 난 당신을 믿는다!” 앗싸! 인도인 특유의 새큼한 냄새가, 달큼한 내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곤 나는 지체 없이 말을 꺼냈다. “고마워요. 믿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죠. 나도 당신을 믿어요. 그렇기에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제가 하는 이야기 잘 들으세요. 저 돈 없어요. 가진 건 75달러뿐 이에요. 그런데 나를 믿는다고 했죠? 한국에 가면 전자우편으로 나머지 돈 꼭 갚아 드릴게요.” 마음 깊은 곳에서 모든 용기를 끌어, 진실된 마음으로 준비했던 이야기를 전했다. 두근두근. 이제 난 어떻게 되지?

“돈? 보내주지 않아도 된다. 당신이 가진 돈만 받겠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이 비행기를 타는 일이다!” 세상에, 감사 답례로 내가 산 기념품을 꺼내 선물하겠다고 하자 한사코 사양했다. 그러고는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오히려 미터기를 꺼 버렸다. 어쩜 그런 배려까지 ….

이제 남은 열쇠는, 공항에 빨리 가는 것. 한참을 달리다 공항 표지판을 발견했다. 그때 시각 9시20분. 그런데 영화는 항상 마지막 순간에 꼬이지 않던가! 공항은 잘 찾았는데 들머리가 어딘지 도대체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마지막까지 엉뚱한 비행기로 돌진

절망이었다. 차를 돌릴 겨를도 틈도 없었다. 아스팔트길이 아닌 그곳에서 전진과 후진을 거듭하며 흙먼지만 잔뜩 날렸다.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선명한 주황색 비행기를 발견했다. 제트 스타! 그때 시간 9시30분, 9시30분에 출발하기로 한 비행기가 정말 그곳에 서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나를 기다려 준 것이다. 간신히 공항 입구를 찾아가니 ‘속도를 줄이시오’ 표지와 함께 설치된 스무 곳이 넘는 방지턱. 그야말로 하늘을 날듯이 날랐다. “당신 차 괜찮겠소?” 나의 질문에, 당신의 비행기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던 택시 아저씨! 난 정말로 카레를 좋아할 것이다. 그렇게 여차해서 39분에 내렸다. 전자우편으로 꼭 연락하겠다는 인사와 함께, 약지에 낀 2년차 된 내 따뜻한 은반지를 그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꼭 맞았다. “그건 우리 우정의 표시야!” 그러곤 캐리어를 들고 정신없이 공항으로 뛰었다. 적막한 공항에서 나를 발견한 여직원이 무전기로 말했다. “영 레이디가 도착했다. 막 도착했다!” 그러곤 어서 가라고 나에게 말했다. 선명한 저 제트 스타 비행기를 향해.

비행기 두 대가 있었다. 이미 흥분한 나는 조금 더 익숙해 보이는 비행기를 향해 뛰어갔다. 뒤에서 ‘스톱’이라는 여승무원의 말이 들렸다. ‘내가 도착했는데 오인하고 출발하려 하는구나.’ 그래서 더 열심히 냅다 달렸다. 그런데 공항직원들이 달려들어서, 나를 붙잡곤 정신 차리라고 말하였다. 그 비행기가 아니라면서. 마지막까지 나는 그렇게 웃겼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에 올랐다. 마지막 탑승자. 승무원이 말했다. “당신은 행운아예요!” 제트 스타는 한사람을 위해서 기다리지 않는단다. 그런데 비행기에 문제가 생겨 출발시간이 조금 지연됐는데 그러던 와중에 내가 도착했다는 것이다. 지금 출발할 것이니 ‘남는’ 자리에 앉으라고 말씀하신다.

‘하~’ 알 수 없는 기분에 눈물이 나왔다. 그렇게 예정시각보다 늦은 15분 뒤,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낯선 시골의 공항을 떠났다. 정다정/ 전남 나주시 죽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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