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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13 17:02 수정 : 2007.06.15 13:52

한국방송 22기 신인 개그우먼 박지선(23) /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매거진 Esc] 도대체 누구야? / 박지선
할머니 말투로 웃겨주는 <개그콘서트>의 ‘부작용’ 박지선

“22기 박지선입니다.” 전화 목소리를 듣고 ‘설마’ 했다. 설마 연기가 아니라, 실제 목소리? 직접 보고 나서야 믿을 수 있었다. 도망가는 남자친구를 잡아두기 위해 이봉주의 폐활량, 박태환의 어깨와 김연아의 균형감각을 갖고 있는 성형 ‘부작용’의 목소리와 말투가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국방송 간판 개그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서 ‘선배 대 신인’의 대결 코너 ‘300’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성형전·성형후·부작용 3명이 나와 각자 자기 남자친구 자랑을 늘어놓는 ‘3인3색’에서 가장 오른쪽에 어색하게 서 있다가 입만 열면 더 어색한 말투로 개그를 쏟아내는 그 여자를. 그 여자의 정체는 한국방송 22기 신인 개그우먼 박지선(23)이다.

‘노량진 박’에서 ‘노량진 블루스’로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할머니와 방을 같이 썼어요. 할머니 고향은 강원도인데 경상도와 충청도를 두루 거치셔서 말투가 독특하세요. 할머니와 언제나 함께 지내다 보니 제가 지금 할머니 말투를 그대로 쓰고 있는 거예요. 저희 가족은 말투가 다 이래요. 오빠도 이렇고. 또래 친구들이 고무줄 하고 인형놀이 할 때 저는 할머니와 노인정에서 민화투 치고 놀았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쓰는 단어도 남다르죠. 제가 ‘경장이 그렇네’라고 하면 친구들이 다 못 알아듣더라구요. (‘경장이’가 뭔가요?) 아, 할머니들은 ‘굉장히’를 ‘경장이’라고 그러세요.”

개그맨 선배들도 인정한 특유의 말투뿐 아니라 경쟁률이 하늘을 찌른다는 개그맨 공채에 합격하기까지 여정도 남다르다. 박지선은 고려대 사범대 교육학과 4학년이다. 남들 앞에 서는 게 좋아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는 박지선은 같은 과 친구들이 그렇듯 임용고시 준비를 하던 학생이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무릎 나온 추리닝을 입고 커다란 가방을 등에 지고’ 노량진 학원가로 임용고시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그 때문인지 박지선은 <개콘> ‘노량진 블루스’에서 고시원에 들어온 여학생으로 깜짝출연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진짜 ‘노량진 박’이었던 박지선은 올해 초 결심을 했다.

“아무래도 개그맨 시험을 한 번이라도 봐야겠더라구요. 웃긴다는 얘기는 제가 좀 들었거든요. 휴학을 했죠. 친구들도 다 ‘야, 너 그거 꼭 해라’고 격려해 줬어요. (날카로운 눈빛으로) 경쟁자가 한 명 줄었다는 생각에 그런 걸까요? 개그 대본을 쓰는 1차 시험 준비를 하는데 개그에 대해 아는 게 있어야죠. 물어볼 데도 없고. 제 얘기를 쓰기로 했어요. 제가 좀 오지랖이 넓은 편이거든요. 버스를 타도 기사 아저씨에게 아는 척하고 그러는 애 있죠? 그게 저예요. ‘오지랖 넓은 여자’로 대본을 짠 거죠. 문제는 대본 쓰는 데 아는 게 없어서 등장인물이 자그만치 5명이었던 거예요. 2차 시험을 보러 갔는데 제가 혼자 이쪽저쪽 옮겨 다니면서 버스기사 아저씨부터 오지랖 여인까지 1인 5역을 했다니까요.”

2차를 통과하고 자유·지정 연기를 해야 하는 3차 관문이 남았을 때 박지선은 도우미가 필요했다. 노량진에서 임용고시 준비를 하는 친구를 밥 사 준다고 여의도로 불러냈다. 무릎 나온 ‘추리닝’에 임용고시 8종 교과서를 끼고 온 친구에게 대본을 숙지시키고 시험장에 데리고 들어갔다. 감독관에게 미리 얘기를 했다. 이 친구가 연기를 못하니까 이해해 달라고.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걔가 저보다 연기를 더 잘하는 거에요. 와! 얘가 연기가 되더라구요. 감독관들은 제가 웃기려고 ‘얘 연기 못합니다’라고 한 줄 알았대요. 반응이 좋았어요. 어쨌든 도우미 친구가 진짜 도움이 되긴 한 거죠.” 드라마에서는 보통 이럴 때 연기를 더 잘한 친구가 덜컥 발탁되기도 하지만 박지선의 친구는 다시 노량진으로 돌아갔다. 연기를 권해 보지 그랬느냐고 물었다. “걔가 … (얼굴을 가리키며) 이게 좀 ….”(웃음)

<개그콘서트> ‘300’에서 어색한 말투로 개그를 쏟아내고 있는 박지선(오른쪽). 한국방송 제공
“얼굴로 웃기는 건 복받은 거예요”


올해 3월에 뽑혔으니 이제 딱 석 달 됐다. 박지선은 ‘3인3색’ 중 남자친구에게 노래를 불러 주는 상황에서 “나도 여자랍니다. 아니랍니다”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왜 “아니랍니다”가 아니라 “나도 여자랍니다”에서 웃음이 터지는지 모르겠고, ‘프리티 우먼’에 맞춰 몸동작을 하면서 실수로 박자를 놓쳤는데 왜 거기서 웃음이 터지는지 모르겠다는 신인 개그우먼이다. 아직까지는 개그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래도 무대에 오르면 기분이 좋아진다. <폭소클럽2> 무대에도 올랐고 지금은 <개콘>에서 활약하는 그에게 뻔한 질문이지만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을 했다. 꿈이 뭐냐고. 묻는 사람 민망하게 박지선은 말없이 허공을 쳐다봤다.

“…. 저는요, 단순해서 그런지 거창하거나 체계적인 꿈 같은 건 없어요. 할머니 말투를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여 줄 수 있는 게 좋구요. 개그맨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이뤄진 것도 좋아요. 지금 선배님들이랑 짜는 코너도 있고 동기들이랑 준비하는 코너도 있는데, 다 잘되기를 바라구요. 주변에서 처음부터 ‘얼굴’로 웃기려고 하면 부담스럽지 않겠느냐는 조언도 해 줘요. 그런데 얼굴로 웃기는 게 개그맨으로서는 복 받은 거일 수도 있구요. 그거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개그를 쭉 하고 싶다’는 것과 ‘열심히 해야겄다’는 생각만 해요.”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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