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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13 17:00 수정 : 2007.06.13 19:18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이보다 더 재밌는 휴가는 없었다’ 우수작

인도 트리밴드럼에서 값싼 자리를 얻느라 새벽까지 대기하다 생긴 해프닝

아내와 두 번째 인도 여행에 나선 것이 벌써 3년 전 여름이다. 인도 여행에서 처음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했으니 인도는 우리에게 각별하다면 각별한 의미가 있는 나라다. 부부가 된 뒤에 도전한 두 번째 여행은 40일 동안 인도 남부와 스리랑카를 돌아보는 여정이었다. ‘도전’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만큼 쉽지 않은 여행이었다. 여행자들이 비교적 적은 곳이다 보니 편의시설이나 입맛에 맞는, 그러니까 적당히 세계화(?)된 먹거리가 드물었고 무엇보다 ‘인도’에 가졌던 편견을 날마다 깨고 또 깨야 했으니까.

친절한 여행사 직원을 만난 행운

벵골만과 맞닿은 동해안에서 내륙을 가로질러 아라비아해와 맞닿은 서해까지 가면서 첸나이, 벵갈로르, 마이소르, 폰디체리와 오로빌, 우티, 함피, 고아, 코치 등을 여행했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신비로운 유적과 대자연에 감동했고, 인도답지 않은 최첨단 대도시 문화에 놀랐고,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마주하면서 마음의 너비를 키웠다. 그런데 잊지 못할 인도 여행의 정말로 잊지 못할 사건은 마지막 날에 일어났다. 인도는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놀라운 곳이다.

마지막 여행지는 트리밴드럼이라는 도시였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스리랑카행 국제선 항공권 값이 가장 싼 곳이기 때문이다. 고단했던 인도 여행을 뒤로 하고, 황금빛 모래밭에서 푸른바다를 바라보며 열대 과일을 먹는 상상을 하고 있던 참이라 마음은 이미 부풀대로 부풀어 있었다. 숙소를 정하자마자 여행사를 찾았다. 스리랑카까지는 비행시간이나 요금이 국내선과 비슷한 수준이어서 어렵지 않게 표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자리가 없었다. 최소 열흘은 기다려야 한단다. 종일 여행사와 항공사 순례를 했지만 같은 대답이었다. 길고 지루했던 우기가 끝나자 여행객이 한꺼번에 몰렸기 때문이란다. 어떡하나? 열흘 뒤면 휴가는 끝인데!

저녁 무렵 들른 한 여행사에서 유나이라는 친구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유난히 환한 웃음을 가진 유나이는 다른 직원들처럼 콧수염을 기르긴 했어도 서글한 눈매와 둥근 얼굴이 앳돼 보이는 청년이었다. 우리의 절망적인 마음을 전해 듣자, 유나이는 아주 원초적인 방안을 내놓았다.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이다. 비행 전날이면 으레 티켓 두어 장은 취소되기 마련이니 내일 떠나는 티켓이 분명 있을 거라고 했다. 2~3일은 기다릴 작정을 하고 있던 터라 다음날 떠날 수 있다는 말이 되레 당황스러웠다. 문제는 수시로 단말기에 접속하여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밤늦게까지 어쩌면 새벽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

그렇게까지 해 주는 여행사 직원은 만나기 어렵다. 스리랑카에 꼭 가야만 하는 위급 상황도 아니고, 친분 관계가 있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더군다나 어렵게 자리가 난 비즈니스 클래스 티켓을 앞에 두고서도 우리는 망설이고 있었다. 이코노미 좌석과는 1600루피(약 37000원) 정도 차이였는데, 그 당시 우리가 쓰고 있던 물가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큰 액수였다. 이코노미 클래스 티켓이 3370루피(약 78000원)이었으니 반값이나 더 내는 꼴이었다. 그런데 유나이는 망설이는 우리 모습을 보더니, 자기가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 두 개를 꼭 잡고야 말겠다며 큰소리를 친다. 망설이던 마음도 일단 아끼고 보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보다 더 재밌는 휴가는 없었다’

아찔했다, 유리 파편을 팔뚝으로!

시간은 어느새 밤 10시를 넘겼다. 지쳐 졸고 있는 아내를 먼저 숙소로 보내고 유나이와 함께 컴퓨터 화면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야근을 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유나이는 이게 자기 일이라며 씩 웃는다. 남아 있던 다른 직원 하나가 밤참을 사 왔다. ‘아차! 내가 사올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염치없이 야식을 얻어먹으며, 나는 발권을 하고 나면 모두에게 맥주를 사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자정을 조금 넘기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자리가 났다. 재빠르게 예약을 거는 유나이의 얼굴엔, “거 봐라, 내가 할 수 있다고 했지?”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기뻐서 환호성을 질렀다. 다음날 10시 비행기였다. 계획대로 스리랑카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발권을 마치고 서로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눈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맥주 마시러 가자! 내가 쏜다!” 그리고 유리로 된 출입구를 힘껏 미는 순간 ….

와장창! 커다란 정문 유리문이 반 정도 닫아놓은 밖의 셔터에 걸려 순식간에 깨지면서 무너져 버렸다. 내가 안쪽으로 열었어야 하는데 너무 기쁜 나머지 문을 확 밖으로 열어버린 것이었다. 두꺼운 유리문이 쩍 갈라지는 걸 보면서도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깨달은 거지만 정말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날카롭게 깨진 부분이 아닌 뭉툭한 테두리 부분이 팔뚝에 정면으로 떨어진 것이다. 팔이 아픈지도 몰랐다. 직원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날카로운 유리쪽이 내 팔뚝 위로 떨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큰 다행이라며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이내 모두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문제는 돈이었다. 문 값을 어떻게든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라면 회사 쪽에서 수리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 사과를 받아야 하는 것은 오히려 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새벽 한 시에 사장님 몰래 비상연락으로 직원들을 불러 모아 대책 회의를 여는 것을 보고야 나는 문제가 심각함을 깨달았다. 문 값은 우리 돈으로 12만원쯤 든다고 했다. 자리가 나길 기다리면서 유나이와 몇 시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이곳 직원들의 월급이 우리 돈 5만원에서 10만원 사이라는 걸 들어 알고 있었다.

나는 큰맘 먹고 문값을 내기로 했다. 낯선 친구에게 베풀어준 유나이의 따뜻한 정을 생각해서라도 모른 체할 수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긁어 문값을 치르고 한 사람 한 사람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약속대로 맥주를 마시러 가자니까 모두들 괜찮다고 한다. 아무래도 다들 기분이 좀 가라앉은 것 같아 음료수를 사 돌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다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모두에게 손을 흔들며 돌아서는 나도, 나를 다독이며 즐겁게 여행하라는 유나이도 이젠 좀 기분이 나아졌나보다.

마음을 부자로 만들어준 정많은 친구들

그때 깨진 문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을 3년 만에 꺼내 본다. 몇 만원을 더 보태 비즈니스 클래스 티켓을 샀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조금 아끼려다 엉뚱한 큰돈이 깨졌으니 미련한 짓이었는지도 모른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 배낭여행을 떠나고, 우리 돈 몇 백 원을 아끼려고 무작정 걸어다니던 그때 마음만은 누구도 부럽지 않은 부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 마음을 부자로 만든 것은 그곳에서 만난 정 많은 사람들이다. 유나이의 환한 웃음이 그립다.

참, 스리랑카 여행은 어땠냐고? 멍든 팔과, 닥쳐올 카드 돈에 떨리던 가슴을 바닷물에 푹 담그고 실론의 태양을 만끽할 수 있었던 내 생애 최고의 휴가였다. ^^;;;

홍석봉/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중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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