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이보다 더 재밌는 휴가는 없었다’ 우수작
인도 트리밴드럼에서 값싼 자리를 얻느라 새벽까지 대기하다 생긴 해프닝 아내와 두 번째 인도 여행에 나선 것이 벌써 3년 전 여름이다. 인도 여행에서 처음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했으니 인도는 우리에게 각별하다면 각별한 의미가 있는 나라다. 부부가 된 뒤에 도전한 두 번째 여행은 40일 동안 인도 남부와 스리랑카를 돌아보는 여정이었다. ‘도전’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만큼 쉽지 않은 여행이었다. 여행자들이 비교적 적은 곳이다 보니 편의시설이나 입맛에 맞는, 그러니까 적당히 세계화(?)된 먹거리가 드물었고 무엇보다 ‘인도’에 가졌던 편견을 날마다 깨고 또 깨야 했으니까. 친절한 여행사 직원을 만난 행운 벵골만과 맞닿은 동해안에서 내륙을 가로질러 아라비아해와 맞닿은 서해까지 가면서 첸나이, 벵갈로르, 마이소르, 폰디체리와 오로빌, 우티, 함피, 고아, 코치 등을 여행했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신비로운 유적과 대자연에 감동했고, 인도답지 않은 최첨단 대도시 문화에 놀랐고,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마주하면서 마음의 너비를 키웠다. 그런데 잊지 못할 인도 여행의 정말로 잊지 못할 사건은 마지막 날에 일어났다. 인도는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놀라운 곳이다. 마지막 여행지는 트리밴드럼이라는 도시였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스리랑카행 국제선 항공권 값이 가장 싼 곳이기 때문이다. 고단했던 인도 여행을 뒤로 하고, 황금빛 모래밭에서 푸른바다를 바라보며 열대 과일을 먹는 상상을 하고 있던 참이라 마음은 이미 부풀대로 부풀어 있었다. 숙소를 정하자마자 여행사를 찾았다. 스리랑카까지는 비행시간이나 요금이 국내선과 비슷한 수준이어서 어렵지 않게 표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자리가 없었다. 최소 열흘은 기다려야 한단다. 종일 여행사와 항공사 순례를 했지만 같은 대답이었다. 길고 지루했던 우기가 끝나자 여행객이 한꺼번에 몰렸기 때문이란다. 어떡하나? 열흘 뒤면 휴가는 끝인데! 저녁 무렵 들른 한 여행사에서 유나이라는 친구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유난히 환한 웃음을 가진 유나이는 다른 직원들처럼 콧수염을 기르긴 했어도 서글한 눈매와 둥근 얼굴이 앳돼 보이는 청년이었다. 우리의 절망적인 마음을 전해 듣자, 유나이는 아주 원초적인 방안을 내놓았다.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이다. 비행 전날이면 으레 티켓 두어 장은 취소되기 마련이니 내일 떠나는 티켓이 분명 있을 거라고 했다. 2~3일은 기다릴 작정을 하고 있던 터라 다음날 떠날 수 있다는 말이 되레 당황스러웠다. 문제는 수시로 단말기에 접속하여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밤늦게까지 어쩌면 새벽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 그렇게까지 해 주는 여행사 직원은 만나기 어렵다. 스리랑카에 꼭 가야만 하는 위급 상황도 아니고, 친분 관계가 있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더군다나 어렵게 자리가 난 비즈니스 클래스 티켓을 앞에 두고서도 우리는 망설이고 있었다. 이코노미 좌석과는 1600루피(약 37000원) 정도 차이였는데, 그 당시 우리가 쓰고 있던 물가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큰 액수였다. 이코노미 클래스 티켓이 3370루피(약 78000원)이었으니 반값이나 더 내는 꼴이었다. 그런데 유나이는 망설이는 우리 모습을 보더니, 자기가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 두 개를 꼭 잡고야 말겠다며 큰소리를 친다. 망설이던 마음도 일단 아끼고 보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보다 더 재밌는 휴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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