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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06 21:38 수정 : 2007.06.08 16:12

겸재 정선의 대표작 <금강전도>. 이번에 개방된 내금강 관광코스는 맨 아래 장안사터부터 보덕암 지나 묘길상까지 3.5km여의 구간이다.

[매거진 Esc] <금강전도>를 들고 오른 금강산,
겸재는 과연 산을 보고 지도를 그렸을까

예부터 금강산 구경은 내금강 구경을 일컬었다. 조선의 시인 묵객이 풍류를 즐긴 곳이자, 근대에 이르러선 금강산 전철로 연결된 국민 관광지였다. 북쪽의 명승지개발지도국은 금강산에 관광·등산 코스 22곳을 관리하고 있다. 내금강은 남쪽에 개방한 여섯번째 코스다. 이달부터 일반에게 공개된 내금강을 다녀왔다. 편집자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느리게 바라본다. 맨 아래 절이 하나 보인다. 산 아래 깊숙이 내려앉은 절. 숨을 죽이고 다시 바라본다. 한참 있으니, 절이 총총 보인다. 하나, 둘, 셋, 넷 … 모두 열 곳이다. 절들은, 그동안 숨어 있었던 것 같다.

절들의 이름은 무얼까? 맨 아래 절 앞에 무지개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는 만천교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 절은 신라 법흥왕 때 지은 장안사다. <금강전도>는 장안사 앞 만천개울을 따라 오르며 고도를 높인다. 장안사 바로 위의 절은 표훈사다. 다시 계곡을 따라 오른다. 큰 합수목이 나오고 여기서 오른쪽 골짝을 따른다. 절벽에 손톱만한 암자가 하나 붙어 있다. 여기가 보덕암이로군. 계곡의 끝은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1639m)이다. 그림은 거기서 끝난다.

비로봉과 장안사가 함께 나오다니 …

그런데 이상했다. <금강전도>가 정양사 헐성루에서 그려졌다는 사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양사에서 그림을 그렸다면 이런 구도가 나올 수 없다. 정양사는 비로봉과 장안사 사이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로봉(정양사의 앞)과 장안사(뒤)가 함께 보여선 안 된다. 앞을 보면서 뒤를 볼 순 없으니까. 그럼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가 금강산을 보지도 않고 그렸단 말인가?

겸재의 그림 <만폭동도>. 한가운데 뾰족하게 솟은 암봉이 금강대다. 300여년의 세월이 흘러 금강대 주변에는 나무가 무성해졌다.
<금강전도>를 들고 내금강에 오르기로 했다. 겸재의 다른 금강산 그림들도 챙겼다. 관광객 숙소가 모여 있는 외금강 온정리를 출발한 버스는 1시간40분 만에 내금강에 도착했다. 내금강의 처음은 <금강전도>의 맨 아래 장안사다. 하지만 장안사는 그림의 모습을 잃었다. 둥근 아치의 돌다리는 직선의 시멘트 다리로 바뀌었고, 부도 하나와 웃자란 엉겅퀴만 장안사 터를 채우고 있었다. “장안사는 미군의 폭격으로 소실됐다”고 북쪽 안내원이 말했다. 국보급 유적 제97호.

버스는 장안사에서 2.5㎞ 위쪽에 있는 표훈사에서 관광객을 내려줬다. <금강전도>에서 짙은 솔숲 사이로 지붕만 살짝 비쳤던 표훈사는 남쪽의 여느 아담한 절 같았다. 한때는 큰절이었으나, 릉파루·반야보전·판도방 등 건물 일곱 채와 칠층석탑만 남았다. “스님 열 분 정도가 절에 있다”고 표훈사의 스님이 귀띔했다.

표훈사에서 왼쪽 산길로 올라가면 정양사이고, 오른쪽 오솔길을 따르면 만폭동이다. 정양사는 이번에 개방된 내금강 관광코스에서 제외됐다. 오른쪽 길을 따랐다. 금강문을 지나니 내금강 최고의 비경인 만폭동 금강대가 나타났다. 약 100m에 걸친 넓은 너럭바위 앞에 금강대는 목석 같은 남편처럼 서 있었다.

법기봉 절벽에 보덕굴이 있는데, 굴 입구를 막아 보덕암을 지었다. 고구려 때 창건해 1675년에 다시 세웠다. 보덕암 뒤로 대·소 향로봉이 보인다. 겸재는 <보덕굴도>를 그려, 법기봉과 보덕암은 오른쪽에 대·소 향로봉은 왼쪽에 배치했다.
겸재의 <만폭동도>(서울대박물관 소장)를 꺼내 북쪽 관광해설원에게 보여줬다. “이 가운데 있는 게 금강대입네다. 그 뒤로 대·소 향로봉이고 그 맞은편에 있는 게 보덕암입네다.” 겸재는 너럭바위와 계곡을 근경으로 잡아두고 금강대를 가운데 배치했다. 금강대에 풀이 무성해졌을 뿐, 여기까지 풍경은 300년 전 그림과 똑같았다. 그런데 겸재는 오른쪽 뒤에 보덕암을 넣었고, 멀리 비로봉까지 그렸다. 이렇게 좁은 협곡에서 한참 떨어진 보덕암이 보일까? 날씨가 흐렸기에 확인할 수 없어 그림을 접었다.

만폭동 여기저기의 예술과 낙서

만폭동 여기저기는 글씨 천지다. 어떤 것은 예술이지만, 어떤 것은 낙서로 보였다. 조선 사대부들이 놀러 왔다가 간 ‘흔적’ 말이다. 조선의 4대 명필의 한 사람이라는 봉래 양사언이 초서체로 쓴 ‘만폭동’이라는 세 글자, 그리고 그 옆에는 삼산국(三山局) 바둑판이 예술의 진수 같았다. 세 산의 신선이 보여 바둑을 두었다는 바둑판의 줄을 세었다. 19줄의 선과 집 361곳이 있는, 진짜 바둑판 맞았다. 너럭바위에 앉아 바둑을 둔 건 신선이 아니라 조선 사대부들이었을 것이다.

만폭동 위로는 만폭팔담이다. 매끈한 암반 위에 담과 소가 이어지는 구간. 제1담 흑룡담에서 비파담·벽파담·분설담·진주담·구담·선담·화룡담에 이르러 제8담이 완성된다. 분설담 위 법기봉 보덕굴엔 보덕암이 있다. 보덕암은 땅 위에 서 있지 않고 암벽 등반하는 자세로 절벽에 붙어 있다. 건물을 지탱하는 건 길이 7.3m의 구리기둥. 분설담 출렁다리를 건너 가파른 돌계단을 150m 오르니 보덕암 지붕이다.(일단 지붕 위로 올랐다가 밑으로 내려가는 구조다.) “절 안으로 내려갈 수 없나요?” “안 됩네다. 사고 염려가 있어 기거하는 스님도 없습네다.” 암자는 굵은 쇠사슬로 십자형으로 묶여 있었다. 바람이 불면 심하게 흔들리기 때문이란다. 국보급 유적 제98호.

651년 창건해 1731년 중창한 금강산 4대 사찰 중 하나인 장안사. 한국전쟁 와중에 소실돼 겸재의 그림 <장안사>의 정취는 찾을 길 없다. 옛 건물의 주춧돌과 부도만 남은 장안서터에 빨간 엉겅퀴가 피었다.
보덕암 지붕에서 겸재의 ‘보덕굴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를 꺼냈다. 비로봉 아래로 내금강 연봉이 줄지어 내려가다 보덕암 앞에서 대향로봉과 소향로봉이 형제처럼 손잡고 막고 있다. 그림과 풍경이 똑같다. 보덕암에서 다시 내려와 계곡을 따라 1.8㎞를 오르면 묘길상이다. 높이 1, 폭 9.4m의 한국 최대의 마애불이다. 내금강 개방 구간은 여기까지다. 비로봉은 여기서 6km를 더 올라야 한다.

겸재의 그림과 실제 본 풍경은 같기도 했고 다르기도 했다. 어떤 것은 과장됐고, 어떤 것은 축소됐고, 어떤 것은 보이지 않았다. 남쪽으로 돌아와 이태호 명지대 교수(미술사)에게 ‘금강전도의 미스터리’에 대해 물었다. 그는 “겸재가 답사해 상상해서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강전도>는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겸재가 장안사에서부터 비로봉까지 샅샅이 탐승하며 스케치한 것들을 한 화면에 부감식(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화법)으로 재배치한 결과라는 것이다.

관광코스에서 정양사가 빠진 이유

‘금강전도의 탄생지’인 정양사의 전망도 그림처럼 장쾌하지도, 구체적이지도 않다. 시범답사 때 멋진 전망을 기대하고 정양사에 오른 현대아산 관계자들도 이 때문에 적지 않게 당혹해했다고 한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수풀이 우거져 금강산 전체가 조망되지 않았다”며 “왕복 1시간의 가파른 길에 비해 정양사에서의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결국 현대아산은 이번 내금강 관광코스에서 정양사를 뺐다.

사실 내금강 어느 곳에서도 일만이천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은 없다. 다만 겸재는 금강산을 발로 뛰고, 이를 토대로 <금강전도>를 완성했다. 겸재 정선은 차라리 김정호에 가까웠다. 그는 보이는 것만 그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까지 찾아내 그렸다. 겸재의 그림은 지도가 드물던 시대에 가장 정확한 지도였다. 그러고 보면, 남쪽의 국립공원이나 등산로 입구에 세워져 있는 안내 조감도도 겸재의 스타일을 닮았다. 내금강의 입구인 장안사 터에는 부감법을 사용한 관광안내도가 서 있다. 그것도 <금강전도>와 참 닮았다.

■ 내금강을 가려면…

내금강 관광은 매주 월·수·금요일에 출발한다. 2박3일 프로그램을 신청해 둘쨋날 내금강에 들어간다. 아침 8시 온정리를 출발해 9시40분쯤 표훈사에 도착한다. 표훈사에서 묘길상까지 다녀온 뒤(왕복 7.5㎞), 오후 1시 표훈사 앞에서 점심을 먹는다. 그 뒤 백화암 부도, 삼불암, 울소를 거쳐 장안사터까지 전나무 산책길(2.6㎞)이 이어진다. 장안사터에서 오후 3시30분 버스를 타고 온정리로 돌아간다. 매회 150명으로 인원을 제한한다.

요금은 숙박지에 따라 달라진다. 1인당 호텔 42만원, 펜션 37만원, 빌리지 28만원. 전국 금강산관광 대리점이나 현대아산 홈페이지(mtkumgang.com)에서 예약. 문의 (02)3669-3000.

금강산 관광에 쇼핑의 즐거움이 더해졌다. 한국관광공사는 지난달 28일 금강산 온정리에서 금강산 면세점 개점식을 열고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했다. 온정각 동관 1층에 마련된 255평의 매장에서 화장품·향수·양주·담배·스포츠용품 등을 비롯해 북한 특산품이 판매된다. 가격은 인천공항 면세점과 같다.

금강산=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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