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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06 21:08 수정 : 2007.06.08 16:00

펑크문화의 표상으로 일컬어지는 영국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공연 모습.

[매거진 Esc] 최범석의 시선④

난 문화를 좋아한다.

난 음악을 좋아한다.

또 난 펑크를 좋아한다.

내가 태어난 1977년은 펑크의 전성시대였다. 펑크는 음악에서 왔다. 펑크 음악을 많이 알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내가 알기로 펑크는 음악이자 패션이고 정신이자 문화다.

젊은이들의 용기, 그리고 독립심

1970년대 이전에도 ‘펑크’라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있었지만 그 중에 음악에 관한 건 하나도 없었다. 펑크 문화가 시작된 영국에서도 ‘펑크’의 뜻은 그냥 시시한 사람, 쓸모없는 사람, 조무라기, 똘마니, 하찮은 것, 실없는 소리 등이 전부였다. 50년대 어떤 한 미국 서부 영화에서는 한 총잡이가 총싸움을 하기 전 “유, 펑크!”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넌, 쓰레기야!”라고 말한 거다.


그러나 나는 ‘펑크’가 젊은이들의 용기나 독립심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는 젊은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젊은이들은 음악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펑크는 젊음과 나이듦 사이에 균열을 내기에 충분했고, 당시에 기성세대와 신세대를 가르는 문화가 됐다.

젊은세대들이 따를 사람은 ‘어른’들이 아니라 바로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직접 클럽을 차리고 직접 레코드 레이블을 만들었으며, 직접 옷을 디자인하면서 기성세대를 밟고 올라서려고 했다. 이 폭팔적인 ‘펑크’의 반란은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롭고 신선한 문화를 가져왔다.


펑크는 패션이자 젊은이들의 문화로 전세계에 퍼져나갔다.
펑크의 정점이었던 75~79년 영국에서는 새로운 패션과 그래픽, 파괴적인 예술까지 태어나게 했다. 나는 그때가 개인적으로 엄청난 창조성이 만개한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때의 아티스트나 뮤지션들을 아주 좋아한다. 지금도 그들의 음악과 영상을 보면서 영감을 얻고 그들의 가치관과 개성을 배우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펑크의 뿌리는 파괴이고 자유분방한 정신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침을 뱉는 등의 정신나간 짓과 가족이 해체되는 것 따위를 펑크와 연결시킨다. 하지만 펑크를 이해하려면 그 전에 그들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한없이 보수적이고 귀족적인 영국문화에 젊은 사람들은 지루해했고, 변하는 시대에서 다른 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다. 또 그들만의 세상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기성세대 가치관을 뛰어넘어라

이제 그들도 나이를 먹었고 펑크 문화도 기억속에서만 남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젊은이들이 자유이자 용기라는 점에서 영국의 펑크가 태어난 지 30년이 지나 이제야 한국에서 펑크와 같은 문화가 태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최범석의 시선
물론 정신세계는 다르지만 한국 젊은이들은 지금 불경기와 실업의 침체에서 살아남고자 직접 옷을 만들고, 자기들의 노래를 부르고, 자기들만의 사이트를 만들면서 나만의 공간을 넓혀간다.

어른들은 말한다. “저 아이가 되겠어? 저 아이 별로던데. 어린 것들이 까불고 다니면 그렇게 보기 싫더라 ….” 자신들이 쌓아놓은 세상에서 젊은이들의 행동이나 가치관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이 세상은 어느 시대라도 그렇듯 젊은이들이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들이 자신의 재능과 개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건 어른들의 몫이다. 국민소득 몇 만 달러 달성, ‘메이드 인 코리아’의 세계 진출 등은 더는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아이디어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그래서 지금도 ‘펑크’ 정신은 우리에게 남아야 하는 것이다.

최범석 / 패션 디자이너· 제너럴 아이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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