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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06 20:57 수정 : 2007.06.08 16:05

액체질소로 급속 냉각시킨 아이스크림이 사과 속에 숨어있다. 슈밍화의 음식.

[매거진 Esc]

세계에서 뜨고 있는 분자 요리, 과연 한국에서도 통할까

영국의 <레스토랑 매거진>은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50군데를 선정했다. 독특한 점이 있다. 1위부터 3위까지가 이른바 ‘분자 요리’(molecular cuisine)를 표방하는 식당들이다. 스페인의 ‘엘 불리’(El Bulli), 영국의 ‘더 팻덕’(The Fat Duck), 프랑스의 ‘피에르 가니에르’(Pierre Gagnaire) 등. 도대체 분자 요리가 무엇이길래 사람들이 이렇게도 난리일까?

요리계의 피카소? 요리계의 마티스?

분자 요리란 재료와 조리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변형시켜서 기존의 음식과는 다른 음식을 만들어내는 스타일을 말한다. 한마디로, 과학적인 요리법이다. 얼마 전 피에르 가니에르가 내한해 분자 요리를 선보이면서 그 이름이 한국 사람들의 입에도 오르내리고 있지만 아직은 낯설다. ‘음식 맛은 손맛’이라는 말이 공통의 진리로 통하는 곳이 바로 한국 아닌가.

요리란 것은 기본적으로 ‘실험’이며 ‘물리’며 ‘화학’이다. 끓이고 삶고 데치고 볶고 튀기는 순간 ‘분자’로 이뤄진 음식 재료들이 다른 상태로 바뀌는 것이므로 모든 요리의 기본은 분자다. 그러므로 분자 요리란 재료의 궁극적인 맛을 찾기 위한 창의적인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을 뽑는 잡지에서 분자 요리 식당들이 대거 상위권을 차지한 것 역시 ‘얼마나 새로운 시각으로 요리를 만드냐’를 가늠했기 때문일 것이다. 분자 요리는 아이스크림을 튀기고 액체질소로 재료를 급속히 냉각시키고 수프를 얼리는 등 기존의 요리 습관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기이한 방법을 쓴다.

분자 요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새로운 요리의 탄생이라는 것이다. 피에르 가니에르를 ‘요리계의 피카소’ ‘요리계의 마티스’라 하는 이유는 ‘이제 새로운 요리의 패러다임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찮다. “분자 요리란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 음식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스페인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만들어낸 요리법”이며, “2000년 즈음에 시작된 분자 요리가 요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것이라고 보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악평도 줄곧 이어지고 있다.

분자 요리가 유럽 사람들을 사로잡은 연유는 분명하다. 유럽인들은 대체적으로 전통적 식습관에 익숙하다. 새로운 요리를 먹더라도 전통과 동떨어진 것은 꺼린다. 이질적인 요소를 하나로 합해 놓은 퓨전보다는 음식과 과학을 접목하고, 전통과 새로움을 합쳐 놓은 분자 요리가 더 입맛에 맞을 수밖에 없다.

외국 레시피 따라 하다간 ‘어설픈 깜짝쇼’

한국에도 하나 둘 분자 요리를 내세우는 식당들이 늘어날 전망이다. 다양한 음식문화를 받아들이고 자기식으로 발전시키는 일본의 경우를 생각하면 한국에도 새로운 시도들이 늘어났으면 싶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세계와의 ‘컨템포러리’를 느낄 수 있는 식당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한다. 그러나 문제는 많다.

압구정동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주방장 ㄱ씨는 “분자 요리란 과학적인 접근법이다. 원리와 효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외국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하기만 한다면 ‘어설픈 깜짝쇼’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또 다른 우려도 있다. 〈Esc〉에서 ‘비밀의 주방’을 연재하고 있는 스스무 요나구니 요리사는 분자 요리는 식당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스페인의 엘 불리는 1년에 6개월밖에 영업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주마다 메뉴가 조금씩 바뀐다. 6개월이 지나면 식당 전체의 메뉴가 바뀐다. 그리고 6개월 동안 새로운 메뉴를 준비한 뒤, 새롭게 시작한다. 한국에서 그렇게 식당을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요리의 핵심은 무엇일까? 맛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아무리 신기해도 맛이 없다면 소용없다. 한국에서 분자 요리라는 새로운 ‘흐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맛을 찾아내려는 노력과 새로운 시도에 아낌없이 박수를 쳐 줄 수 있는 식당 문화가 먼저 생겨야 한다. 귤은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분자 요리가 대륙을 건너면 무엇이 될까? 그게 궁금하다.

글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물수건은 후식입니다

한국 최초 분자 요리 레스토랑 ‘슈밍화’ 신동민 셰프

청담동의 레스토랑 ‘슈밍화’ 신동민 셰프는 일본에서 처음 분자 요리를 만났다.

한국 최초 분자 요리 레스토랑 ‘슈밍화’ 신동민 셰프
“롯폰기에 ‘류긴’(龍音)이라는 식당이 있어요. 나오는 음식을 보면서, 도대체 이게 뭐지? 먹으면서도, 도대체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놀랐던 거죠. 사과 모양을 하고 있지만 사과는 아닌 음식 …. 4시간 동안 기다려서 셰프를 만났죠. 무슨 재료로 어떻게 만든 건지 …. 그렇게 해서 처음 분자 요리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오늘날 그의 요리 방식이 생기는 데 영향을 끼친 곳은 류긴이지만, 그는 여러 요리사들의 장점을 배우러 도쿄에서 런던으로 떠났다. 런던에서는 ‘노부’에서 일하다가 ‘팻덕’에 있는 요리사들도 알게 되었고,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새로운 것을 하나씩 배워 나갔다.

대표적인 예가 분자 요리에서 많이 쓰는 액체질소다. 액체질소를 이용하면 다른 재료를 순식간에 냉각시킬 수 있다. 눈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낸다 거나 하는 식으로, 진기한 음식이 새로운 방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접시 위의 코르크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코르크는 우엉으로 만들어요. 숯은 고구마를 쪄서 오징어 먹물을 입힌 후 가쓰오 국물에 재워 두었다가 한 번 더 훈제를 하죠. 그러면 나무 향이 느껴지니까요. 온천 달걀도 모양은 달걀이랑 똑같이 생겼지만 망고와 코코넛으로 만든 거예요. 탁자 위에 있는 물수건 있죠? 그것도 솜사탕으로 모양을 낸 후식이에요. 다 먹을 수 있는 거죠.”

음식들을 한 코스 한 코스 진행해 나가면서 가끔 이런 시각적 충격으로 손님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슈밍화에서 나오는 음식들을 분자 요리라고만 할 수는 없다. “제 요리의 기본은 일식이에요. 일본의 전통적인 가이세키 요리를 시대에 맞게 변형한 거죠.” 기본적인 코스 진행은 전통 일식 개념을 두면서 색다른 재료로 눈과 입에 즐거움을 전해 주고자 하는 것이다.

초밥(스시)도 마찬가지다. 초밥대는 일본에서 들여온 원목으로 만들었다. 국내에는 그 정도로 큰 노송을 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무를 잘 말리고 쪄서 초밥을 만들 때 맛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쌀은 햅쌀만 쓰지 않는다. 올해 난 쌀과 묵은 쌀을 알맞게 섞어서 지어야 더욱 괜찮은 초밥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요리를 할 때도 간에 마음을 쓸 수밖에 없다. 기본 간장은 두 가지. 맑으면서도 향을 은은하게 내려면 진간장이라 할 수 있는 고요구치를, 염분이 많아서 간을 맞추기 쉬운 우스구치를 쓴다. 일식이 섬세함을 추구하다 보니 이런 기본 양념들부터 잘 다듬어서 내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서 그가 추구하는 방향은 단순한 분자 요리에 머물지 않는다. 기본 틀은 가이세키 요리이면서 긴 코스가 진행되는 동안 순간순간의 악센트를 분자 요리의 형식으로 부여하는 것이다.

글 고형욱/ 음식칼럼니스트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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