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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06 19:50 수정 : 2007.06.08 16:12

소중한 사랑을 기리는 문구가 새겨진 영국 하이드파크의 공원 벤치. 스스무씨도 새겨넣을 이름이 있다.

[매거진 Esc] 스스무요나구니의 비밀의주방 ④

무작정 고향을 떠난 뒤 요리인생 첫걸음을 딛기까지

뉴욕의 주방에는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일하지만 차별 같은 건 별로 없어요. 요리에 재미를 붙이고 있을 때 나한테 부주방장 제의가 들어온 적이 있어요. 싫다고 했어요. 자신이 없었어요. 나보다 요리 더 잘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또 하나 걱정이 있었는데, 내가 일본인이기 때문이에요. 그때 뉴욕 주방에는 아시아인이 거의 없었는데, 아시아인으로서 최초의 부주방장이 된다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내가 잘못하면 내 문제가 아니에요. 내가 일본을 대표하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미국 사람이 부주방장이 됐는데 두 달 만에 해고됐어요. 그 다음에 또 프랑스 사람이 부주방장 됐는데, 그 사람도 금방 해고됐어요. 그걸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결국 부주방장이 되었죠. 아시아인으로는 최초였을 거예요.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당한 모욕

요리를 처음 배웠던 영국에서는 상황이 아주 달랐어요. 나는 스물둘에 대학을 그만뒀어요. 고향 오키나와에서 생물학을 배웠는데, 학교가 너무너무 재미없는 거예요.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여기서 살게 되면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서, 애기는 한두 명 낳고, 그렇게 살겠구나.” 오키나와는 섬이잖아요. 답답해요. 커다란 지구 중에, 아시아 중에, 일본 중에, 오키나와 중에 아주 작은 내가 있다는 생각을 하니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아버지는 그때 통신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아버지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그냥 무작정 바깥으로 나가고 싶었어요. 아버지는 반대했죠.

“나가는 건 네 마음대로 해라. 대신 아무 것도 도와주지는 않을 거다!”

스스무 요나구니의 비밀의 주방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오키나와에는 미군이 많아요. 바에서 바텐더를 했죠. 돈도 벌고 영어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돈을 마련해서 시베리아 철도를 탔죠.


2주 이상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곳이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였어요. 스코틀랜드에서 황당한 일이 있었어요. 어느 맥줏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80살쯤 된 할아버지가 인사를 해요. “아, 이제 영어로 말할 수 있구나. 일본에서 벗어났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이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보기에 ‘일본’이라고 대답했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내 얼굴에다 맥주를 확 끼얹는 거예요. 난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어요.

“너 같은 일본 사람은, 인간이 아니야!”

그 할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에게 포로가 된 적이 있었대요. 자기 친구들이 여러 명 죽었대요. 난 할아버지에게 소리쳤어요.

“할아버지, 왜 나한테 그러는 거예요?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난 전쟁이 끝나고 태어났단 말이에요!”

그때 영국에서는 아시아인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어요. 호텔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어디서나 그랬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설거지뿐

에든버러에 도착해서 공원에서 잤어요. 돈이 없잖아요. 스코틀랜드에 도착하니 남은 돈이 딱 18파운드였어요. 그래도 절 도와준 사람이 있었어요. 공원에서 자고 있을 때 어떤 아저씨가 자기 집에서 자라고 했어요. 배낭여행 하고 있다니까 불쌍해 보였나봐요. 그 집에서 일주일 정도 잤는데, 돈이 필요하잖아요. 신문에서 아르바이트 모집하는 걸 유심히 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설거지밖에 없어요. 전화를 걸었죠. 스코틀랜드가 아니라 런던의 하이드파크 근처에 있는 호텔이었어요.

그때 전화를 받은 사람이 호텔 주인의 부인이었는데, 설거지할 사람이 급하다고 얼른 출근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지금 바로 가지는 못합니다. 며칠 걸릴 겁니다”라고 했죠. 그랬더니 이유를 물어봐요. “지금 스코틀랜드에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더니 부인이 한참동안 깔깔 웃더라고요. 스코틀랜드에서 전화를 걸고 인터뷰하는 게 너무 웃겼나봐요. “도대체 어떤 바보 같은 사람인지 궁금하니까 일단 와 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영국으로 가게 됐어요. 그게 우연히 시작된 제 요리 인생의 첫걸음이었던 셈이죠.

정리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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