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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06 19:13 수정 : 2007.06.25 13:46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손목 한번 안잡고 구름만 쳐다본다면, 데리고 오세요
죄의식은 남자들 발명품…삶에 대한 통제권 밑줄 쫙

Q 안녕하세요. 전 스물세살이고요, 제 남친은 스물여덟입니다. 사귄 지는 한 달 좀 넘었고요. 만난 지 일주일 만에 사귀었고, 사귀자마자 계속 자자고 그러더군요. 결국 사귄 지 일주일 만에 술먹고 사고쳤어요.

사귄지 일주일만에 술먹고 사고쳤어요, 어쩌면 좋아요

솔직히 술먹고 사고친 건 나니까 누굴 원망하지도 않고요. 그런데 자고 나서 기분이 좋지않더란 말이죠. 그 후에도 자꾸 관계를 요구하는 남친한테 싫다고 거절했어요. 그러다가 좀 친해져서 남친 집에 가서 영화 보다가 또 관계를 맺었는데, 이번에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죄책감과 두려움과 왠지 내가 바닥으로 내려간 느낌,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너무 진도가 빠른 것 같기도 하고, 날 아껴주지 않는 것 같아서 남친한테 약간의 섭섭함도 들고요.

죄책감에 수치심에…얼굴보며 다른 얘기할 땐 참 행복한데

그런데 만날 때마다 남친은 나에게 자꾸 관계를 요구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싫다고 죄책감 든다고, 내가 아닌 것 같다고,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진지하게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나한테 그러더군요. “그럼 다른 식으로라도 해주면 안 돼?” 정말 ‘뜨헉’했습니다. 이젠 수치심까지 느낍니다. 생각할수록 자꾸 화가 납니다. 통화하고, 얼굴보며 다른 얘기할 땐 참 행복한데, 휴, 미치겠습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




A

그렇지 않으면 혼꾸녕 나야…‘구구단 어떻게 외어요’ 수준의 질문

1. 오우, 학생. 나, 당황스러워요. 선생님 구구단은 어떻게 외워요, 레벨의 질문인지라 명색이 미적분 강사로서 자괴감마저 들라고 그래요. 하지만 쇼는 마스트 고 온 이니까. 자 갑시다. 학생, 그 남친, 학생이 짐승으로 간주하는 그 남친, 상태, 너-무, 정상이에요. 너-무 정상이라 선생님이 할 말이 없어요. 만약 그 남친이 아직 손목 한 번 안 잡고 구름 쳐다보고 만날 시나 읊조리고 지구 온난화 걱정만 하고 자빠졌다. 그럼 선생님한테 델구 오세요. 몇 가지 기능장애 체크하고 아주 혼꾸녕을 내 줄테니까. 유치하기 짝이 없는 협박과 회유에다 알랑거리고 토라지면서 한 번만 하자고 시도 때도 없이 보채질 않는다 …. 그럼 그 남친, 치료받아야 해요. 근데 그 남친은 어떻게 한 번 해 보려고 온갖 시답지 않은 수작을 다 부리잖아요. 아-주 정상이에요. 그럼 첫 번째 챕터 <제 남친은 짐승인가요?>는 여기서 마치기로 해요.

* 요약 - 남친은 짐승인 게 옳다.
* 공부할 문제 - 그럼 질문한 학생은 뭘까~요?
1)선녀 2)아바타 3)봉제인형 4)자웅동체 5)짐승

여자가 불편한 건 다 남자들이 발명한 거…포르노 통제 원리와 같아

2. 두 번째, <저는 죄인인가요?>. 학생이 말한 느낌 - 두려움, 바닥에 내려간 느낌,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 수치심 등등의 제목은? 죄의식. 좋아하는 남자랑 좋아서 했는데 대체 그게 어서 왔을까. 정답. 남자들이 발명했다. 진짜? 진짜. 왜. 다른 놈들이 지 여자 채 가는 게 겁나서. 여자들 꼼짝 못하게 하려고. 정말? 정말. 섹스에 관한 한 수컷들은 다른 수컷들 절대 못 믿어요. 그래서 수컷들은 대신 암컷들을 통제키로 한 거예요. 정절, 순결 따위의 족쇄 이데올로기를 고안한 거죠. 열녀비가 뭐예요. 남자가 지 죽고 나서조차 여자가 딴놈한테 가는 게 싫은 거라. 죽을 때조차 곱게 안 디지는 거예요. 그래서 성이란 게 다 권력의 문제라는 거예요. 힘있는 쪽이 자신에게 유리한 가치를 신화화해 불변의 질서인 양 유포하는 거죠. 종교도 동원되고 문학도 동원되고. 상징체계는 다 동원돼요. 그래서 남자들의 욕심이 합법, 율법, 도덕으로 변장을 하죠. 생각해 봐요. 여자가 불편한 걸 여자가 왜 만들었겠어요. 여자가 불편한 건 다 남자들이 발명한 거예요. 그리고는 어릴 때부터 학습시켜 스스로도 믿게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혹여 그 경계를 밟는 행위는 다 품성의 문제로 환원시켜 버리죠. 저렴한 년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죠. 그래서 항상 감시하지 않아도 여자 스스로 저어하도록. 바로 학생이 지금 그러고 있는 것처럼. 사회가 포르노를 통제하는 원리와 여성 통제의 원리가 똑 같아요. 19세기 영국에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음란물에 관한 법률 제정 이유가 뭔 줄 아세요.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푸하하. 자, 이 말 외워둬요. 성은 권력의 문제다. 끝.

* 요약 - 죄인은 누가 죄인이야, 이 씨바들아!
* 공부할 문제 - 유럽 68세대는 왜 포르노를 합법화했을까요?

들이대는 방식 촌스럽다는 게 문제…무식한 수컷 사육방법 고민하세요

김어준 / 박미향 기자
3. 마지막 , <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해. 학생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꼴리면 하고 안 꼴리면 하지 말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중요한 건 섹스를 하느냐 안 하느냐가 아니라 삶에 대한 통제권을 스스로 온전히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예요. 삶에 대한 통제권에 밑줄 쫙. 남들이 강요하는 규범에 대해선 힘차게 팍뀨를 외쳐주세요. 그리고 남친의 문제는 딱 하나. 들이대는 방식이 촌스럽다는 거. 그러니 학생이 지금 해야 하는 고민은 나는 죄인일까요 흑흑, 이 아니라 이 무식한 수컷새끼를 대체 어떻게 세련되게 사육하지, 예요. 강아지 있죠. 그거 한 마리 키운다고 생각해요. 그까이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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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변태는 없다. 취향이 있을 뿐. 그러니 언제나 중요한 건 합의.
* 공부할 문제 - 왜 섹스는 아름다워야만 한다는 걸까요

* * * 지금까지 입문반에 땜빵 온 시간강사 어성애였습니다. 꾸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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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는?
배우이자 뮤지컬 제작자 박해미씨와 딴지일보 총수이자 방송인 김어준씨가 독자들의 ‘관계 개선’ 상담가로 나섰습니다. 부부관계, 가족관계, 직장 내 관계, 애인 관계, 친구 관계 등 살면서 엮이게 되는 인간관계의 고민에 대해 매주 번갈아 시원하고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상담을 원하는 독자는 고민 상담메일(gomin@hani.co.kr)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100% 비밀보장, 100% 고민해결을 책임집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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