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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06 19:02 수정 : 2007.06.08 11:22

‘대한민국 방송계의 1%’가 되고픈 개그맨 황봉알과 노숙자

[매거진 Esc] 도대체 누구야? / ‘대한민국 방송계의 1%’가 되고픈 개그맨 황봉알과 노숙자

촉발은 김구라였다. 문화방송 <황금어장>의 코너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김구라, 인터넷방송 시절의 황봉알과 노숙자를 추억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들을 버린 게 아니다. 서로의 갈 길을 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구봉숙’(김구라, 황봉알, 노숙자의 약어) 트리오가 인터넷방송과 케이블방송을 휘젓던 시절이 있었다. 세 마디 중 한 마디는 욕이었고, 입만 열면 폭탄이었다. 수많은 연예인들과 정치인들이 도마 위에 올랐고, 일단 도마 위에 오르면 수습하기 힘들 정도로 난도질당했다. 팬들은 통쾌했고 후련했고 시원했다. 세 사람의 입에서 쏟아져나오는 욕을 듣기 위해 컴퓨터 앞에서 귀를 쫑긋 세웠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김구라는 공중파 방송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황봉알과 노숙자는 변한 게 없었다.

김구라와 헤어져 제 갈길을 가다

“저흰 변한 게 없어요. 수입도 변한 거 없어요.(웃음)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것처럼 제자리에서 열심히 뛰고 있어요.”

조금 슬픈가? 아니다, 뭐 인생이 다 그렇지. 그들은 운이 없는 편이다.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고, 성공할 뻔했다. 생각해 보면 그들은 너무 전위적이었다. 너무 앞서 나갔다. 요즘 공중파를 주름잡고 있는 ‘거칠고 솔직한 방송’ 콘셉트의 원조는 그들이었다. 거물급 연예인을 데려다놓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질문을 마구 퍼부었다. 그들은 너무 솔직했다.

“차인표씨한테 그런 질문 한 적 있어요. ‘너무 영화 많이 망했어, 도대체 투자를 누가 한 거야?’ 그런데 차인표씨가 참 대단해요. 그냥 같이 웃고 넘겨요. 그러면서 한 말이 있는데 ‘지금 이 마인드를 그대로 가지고 가면 5년 후엔 반드시 성공한다’였어요. 5년 지났는데 변한 게 없네. 그래서 차인표씨 고소하려고요.(웃음) 인표형 농담이에요! 제 좌우명이 ‘내 탓이다. 불만 갖지 말라’예요. 숙자랑 저는 무명이 조금 길 뿐이에요. 내일 어떻게 될지 누가 알아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다. 여전히 공중파에서 ‘뜨지’ 못했고, 여전히 인터넷 방송(‘꼬맨태극기’ www.bongsook.com)를 진행하고 있다. 여전히 욕도 많이 한다. 그러나 욕이 조금 달라졌다. 예전 방송에서의 욕은 구체적 지시대상이 없었다. 울분처럼 들렸다. 울분에 공감하고 함께 울분을 터뜨리고 싶은 팬들이 환호했다. 그러나 지금은 욕이 정교해졌다. “아니 형, 왜 이 부분에서 욕을 안 하는 거예요. 여기에서 한번 팍 터져줘야죠”라는 팬들의 항의를 받을 만큼 욕이 줄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그럴 수도 있다. 이젠 30대 후반이다. 욕이 줄었어도 공중파에선 여전히 그들을 부르지 않는다.

“인터넷 방송 하는 것만 듣고는 저흴 과격한 사람들로 아는데, 안 그래요. 저희 일상생활에선 욕 별로 안 해요. ‘얘네들 쓰면 누구처럼 방송사고 내고 그러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는데, 저희 공중파 출신 개그맨이거든요.(웃음) 이젠 방송이 많이 변했잖아요. 저희는 늘 똑같은 자리에 있으니까 도전의식이 있는 분들은 저흴 한번 써보세요. 그런 분들이 움직여줘야 해요.”


록가수 권순우(사진 맨 왼쪽)가 새롭게 가세해 ‘권봉숙 트리오’가 탄생했다.

애걸복걸하는 게 아니다. 공중파에서 제대로 한번 뜨고 싶은 욕망 때문도 아니다. 후배들의 희망이 되고 싶은 거다. 그들처럼 ‘코드가 다른’ 사람들도 공중파에서 색다른 웃음을 줄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텔레비전을 틀면 매일 똑같은 사람들만 나오잖아요. 그분들이 잘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알죠. 하지만 다양한 방송을 위해 1% 정도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지 않아요? 더도 덜도 말고 딱 1%만이라도 말이에요.”

그들은 이제 연예인 ‘뒷담화’를 즐겨 하지 않는다. 누가 이혼을 했든 가슴을 키웠든 신경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치부를 드러내고 상처를 주면서까지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대신 주제를 넓혔다.

알고봤더니 너무 진지하잖아!

“순우씨 영향이 커요. 저희가 소주 한잔 먹이고 영입했어요.(웃음) 원래 순우씨가 우리 팬이었는데 순우씨 공연에 게스트로 나가면서 친해졌어요. 순우씨 덕분에 방송의 주제가 좀더 넓어진 거죠. 에프티에이 이야기도 하고, 맥아더 얘기도 하고, 북핵 이야기도 하고…. 순우씨가 방송을 처음 해보니까 아예 콘셉트를 정해줬어요. 뭐냐면, 너 하고 싶은 얘기 다 하세요. 뭐, 원래 저희 방송이 그렇긴 했지만.”

지금은 가수 권순우씨와 함께 방송을 하고 있다. 이름하여 ‘권봉숙 트리오’다. 그들에게는 고정팬이 많다. ‘꼬맨 태극기’의 정식 가입 회원 수는 7500여 명. 가입을 하지 않고 방송을 듣는 사람을 치면 더 많을 것이다. 새로운 팬들도 생겼지만 오랜 친구 같은 팬들이 많다. ‘형님, 오랜만에 들어와서 4주치 한꺼번에 듣고 갑니다.’ ‘저 캐나다로 유학 왔어요. 여기서도 잘 듣고 있습니다.’ 모두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조금 슬픈가? 아니다, 인생이 뭐 다 그렇지. 그래도 황봉알, 노숙자 같은 ‘시원시원한 친구’들과 함께 나이를 먹는다는 게 조금은 위안이 된다.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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