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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30 23:57 수정 : 2007.06.01 13:38

맛있던 자장면집은 다 어디로 사라졌나 /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매거진 Esc] 요리사 X와 김중혁의 음식잡담
변두리에서 한그릇 3500원이면 왕창 바가지…
살짝 볶은 춘장이 그립다

서울 청담동 중식당 ‘연경’

김: 지난번 기사가 나간 후,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다들 식당 위치 알려달라고 난리였어요.

X: 부산식당 위치?

김: 아니오. X님이 일하는 식당 위치요.

X: 절대 안 되지!(웃음)

김: 안 되죠. 오늘은 자장면입니다. 그것도 청담동에서 파는 자장면. 어째 청담동이랑 자장면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요? ‘연경’에 와보셨죠?

X: 와 봤지. 그때는 맛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

굴소스 청경채볶음의 원가는 얼마?

김: 청담동이니까 이해해야죠 뭐. 땅값 비싸잖아요. 전 중식당에서 음식 시킬 때마다 제일 이상한 게 바로 ‘굴소스 청경채볶음’ 가격이에요. 아니 청경채가 비싸봤자 얼마나 비싸다고, 굴소스 얼마나 많이 넣는다고 값이 그렇게 셀까요?

X: 원가는 정말 싸지. 굴소스 청경채볶음은 원가가 한 3퍼센트 들 거야. 그래도 맛이라도 있으면 돈이 아깝지 않지.

김: 짬뽕 국물이 너무 식었는데요? 뜨듯미적지근해요. 별로 진하지도 않네.

X: 짬뽕 국물의 핵심은 닭육수야. 원래 짬뽕 육수 만들 때는 닭뼈랑 돼지뼈를 함께 넣는 게 좋은데, 문제는 돼지뼈가 너무 비싸. 우리는 돼지뼈 가격이 거의 수입사골이랑 똑같아. 왜 그런지 알아? 감자탕집 때문이야. 닭뼈는 킬로그램당 500원이면 살 수 있는데, 돼지뼈는 1킬로그램에 3500원이거든.

김: 제가 좋아하는 중국집에서도 닭으로만 육수를 낸다더라고요. 왜 돼지뼈는 안 넣냐고 물어봤더니 너무 위험하대요. 돼지뼈를 잘못 넣으면 국물이 느끼해질 수 있고, 좋지 않은 걸 쓰면 돼지고기 냄새가 난대요. 손님한테 한번 불만 듣기 시작하면 끝이 없으니까, 돼지뼈는 포기했다고 하더라고요.

X: 라면도 중국면이잖아. 짬뽕이랑 뿌리가 같아. 둘 다 닭뼈로 국물을 내는 거지. 신선한 생닭을 넣을 수만 있다면 최고로 맛있는 육수를 뽑을 수 있겠지. 생닭 한 마리가 2500원 정도 하니까 그걸로 한 다섯 그릇은 진하게 육수를 뽑을 수 있겠다. 그럼 한 그릇에 원가가 500원 정도 추가되는 건데, 그 정도는 시도해 볼만하지 않나? 500원 비싸게 받으면 되잖아?

김: 일본 영화 <담뽀뽀> 보셨죠? 거기서 육수 뽑으려고 닭을 통째로 넣는 장면 나오잖아요. 역시 국물은 정성이야, 정성! 담뽀뽀에서 라면 먹는 첫 장면 진짜 웃겼죠. 라면 위에 얹힌 편육한테 말을 걸잖아요. “참 맛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 먹을 수는 없으니,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그러고는 편육을 라면 국물에다 묻어두잖아요. 그 장면 정말 최고예요.

‘캬라멜’이 자장면 시장을 점령하다

X: 그럼 우리도 그렇게 먹어보지 뭐. 건해삼 님은 이따 뵙겠습니다.

김: 중국에선 마른해삼이 그렇게 비싸다면서요?

X: 비싸지. 요즘은 필리핀산 같은 걸 많이 쓰지. 해삼 말렸다가 물에 불리면 촉감하고 향이 엄청 진해져.

김: 일본식 라면에는 숙주가 많이 들어가잖아요. 같은 뿌리인데 왜 짬뽕에는 숙주가 안 들어갈까요? 숙주 씹는 맛이 참 좋은데?

X: 희한한 일이지. 숙주 들어간 개성만두도 잘 먹고, 양지머리 육수에다 숙주나물 넣은 베트남 국수도 비싼 값에 잘 먹으면서 짬뽕에 들어간 숙주는 좋아하질 않아. 일본식 짬뽕에는 숙주가 들어가야 제맛이지. 비릿한 맛이 있지만 씹는 맛이 좋고, 칼칼한 국물을 더 살려주니까. 중국요리에서 숙주는 꽤 중요한 재료지.

김: 그런데 요즘 자장면은 어릴 때 먹던 것하고 너무 달라요. 우선 색깔부터 너무 다르잖아요.

X: 전부 ‘캬라멜’ 때문이야. 공장 춘장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이렇게 바뀐 거지. 그것 넣으면 윤기가 좌악 흐르잖아. 반질반질하고 거무죽죽한 게 훨씬 맛있어 보이지. 갈색은 일단 식감이 안 좋아. 어린 시절에 먹었던 자장면은 면 위에다 자장면을 조금만 얹어주잖아. 춘장을 기름에 살짝 볶아서 그냥 올려주는 거지. 그게 엄청 짜니까 조금만 얹어도 간이 맞잖아. 슥슥 비비면 국물은 거의 없고 이탈리아에서 먹던 오리지널 파스타 같은 모양이지. 절대 흥건하지 않아. 그리고 옛날 자장면에는 꼭 통감자가 들어갔잖아. 그런데 요즘은 감자가 너무 비싸서 그것도 넣기 힘들지.

김: 자장면은 원가가 얼마나 들까요?

X: 다 다르겠지만 동네 중국집 같은 데는 300원에서 400원 정도 들지.

김: 자장면 한 그릇이 3000원 넘으면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X: 비싸지! 그게 다 배달비용 아니냐. 배달하는 친구들이 그릇 당 한 200원씩 들고 가는 거야. 그러니까 변두리 동네에 가서, 그것도 식당에 들어가서 3500원짜리 자장면 먹으면 바가지 왕창 쓰는 거지. 강남에서 일할 때 보면 사무실에 자장면 배달 스티커가 매일 쌓이는데, 길거리에서 자장면집 찾아보긴 하늘에 별 따기란 말이야. 다 구석구석에서 배달만 전문으로 하는 거야.

김: 이제 자장면 맛있는 집도 찾아보기 힘든 거 같아요.

X: 된장찌개 맛있는 집들 생각해봐. 그런 집들은 다 이유가 있어. 어느 절에서 스님이 만들어 놓은 메주를 쓴다거나 고향집 할머니가 직접 만든 된장이라거나 그런 집들 찌개가 맛있잖아. 된장이 좋으니까 가능한 거지. 자장면 맛있는 집이 없는 건 당연한 거야. 좋은 춘장이 없으니까. 지금도 집에서 춘장을 만들어 먹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춘장을 상업적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캬라멜 넣은 강력한 공장 춘장의 맛을 못 이겨. 불행한 거지. 아직까지 좋은 된장을 찾는 사람이 있고, 비싼 값을 치르고라도 좋은 된장을 먹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명맥이 유지되는 거잖아. 만약 된장도 찾는 사람이 없어지면 공장에서 만든 된장이 시장을 점령할거야.

한국식당 ‘짜사이 인심’은 괜찮지

김: 우리 어릴 땐 자장면이 고급 음식이었잖아요?

X: 비쌌지. 밀가루가 지금처럼 싸지 않았고, 재료도 달랐으니까. 감자·양파·호박·돼지고기를 깍둑썰기 해서 내던 그 맛을 잊지 못해!

김: 그런데 자장면은 왜 자장면이 된 거죠?

X: 초(炒)장면과 작(炸)장면 두 가지 설이 있는데, 뒤쪽이 더 설득력이 있지. 둘 다 볶는다는 뜻인데, 베이징에 가면 지금도 작장면을 팔아. 이게 원조인 셈이지. 작이란 한자어는 약한 불에 오래 볶는다는 얘기니까 ‘장을 볶아서 얹어 먹는 면’이 바로 자장면이야.

김: 그래도 이 집 ‘짜사이’는 괜찮은 것 같은데요? 씹는 맛도 있고, 간도 알맞고?

X: 한국 식당 인심은 좋아. 한식이든 중식이든. 여기가 홍콩이었으면 짜사이 한 접시에 5000원은 더 내야지. 중국 사천 지방 갔으면 200원 정도 냈겠지. 사천식 식당에 가면 이것보다 훨씬 시큼하게 담아내.

김: 이제 슬슬 결론을 내려야죠? 음식이 식어버리니까 잡맛이 많이 남는 것 같아요.

X: 이 정도면 성의껏 하는 편이지. 요즘 중식당 가면 대개 요리 하나 시키고 자장면이나 짬뽕을 시키니까 양을 적게 주는 집들이 많아. 이 집도 양이 적은 편이네. 적게 먹으면 좋지. 그런데 가격은 안 내린단 말야.

김: 정말 구수한 자장면이 그립네요!

정리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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