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05.30 23:12 수정 : 2007.05.30 23:12

왕희지의 글씨

[매거진 Esc] 여행에서 건진 보물 / 소설가 성석제의 ‘난정집서’

난 글씨를 보면 마음이 편해져. 아니, 마음이 편해지는 글씨가 따로 있지. 예전에 글씨를 하나 선물받은 적이 있었는데, 글씨를 한참 들여다보면 이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글씨를 썼는지 알겠거든. 글씨에는 그런 힘이 있어. 그래서 한동안 좋은 글씨를 구하려고 애를 썼지. ‘난정집서’는 우연히 구한 거야. 얼마 전 중국 소흥엘 다녀왔는데, 거기 최대 관광지 중 하나가 난정이야. 왕희지가 놀던 데지. 41명의 선비가 모여서 술을 마시며 시를 지었는데, 그 서문을 왕희지가 썼지. 술이 좀 취해서 쓴 거야. 다음날 일어나보니 자기가 봐도 글씨가 좋아. 그런데 그 글씨를 재현하려니까 그건 죽어도 안 돼. 그날만큼 마음에 드는 글씨는 안 나왔지. 거기 보면 초교지처럼 고친 흔적이 나와. 그게 ‘난정집서’야.

난정에 들어가기 전에 안내인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 “사실 게 있으면 알아서 싸게들 사십시오. 하지만 버스에 타거든 서로 가격을 얘기하지 마십시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좀 있다 알게 됐지. 거기에 왕희지 박물관이 있는데 그 바로 옆에 가게가 있어. 사람들은 거기에서 많이 사더라고. 부채도 있고 문진도 있고 …. 나는 거기서 안 사고 참았지. 비쌌거든. 참고 참다가 버스 주차장에서 제일 가까운 가게에 들어가서 이 글씨를 봤어. 주인남자가 120원을 달래. 15000원이라니, 말도 안 되지. 너무 비싸다고 했더니 종이를 주면서 얼마를 원하는지 써보래. 나는 20이라고 썼어. 그랬더니 손가락질을 하면서 욕을 하는 거야. 나는 부채를 부치면서 관두라고 했지. 100원에 가져가래. 싫다. 80원. 싫다. 60원. 싫다. 30원. 안 된다. 그때 다른 손님들이 들어왔어. 이 주인이 참 웃긴 게, 그럼 다른 손님들 상대하면 될 텐데 계속 나하고 흥정을 하는 거야. 나는 부채질 하면서 계속 서 있었지. 그랬더니 “에이씨, 가져가라”면서 던지더라고. 주인남자는 다른 손님 때문에 바빠서 계산대에 있는 주인여자에게 돈을 내밀었어. 그랬더니 이건 “20원이 아니다”라는 거야. 무슨 소리냐, 주인이 20원이라 그랬다, 그러곤 얼른 나왔지. 뒤에 온 사람들 얘기 들어보니 부부싸움이 났다 그러더라고. 그런데 웃기는 건 다른 데 갔더니 똑같은 걸 15원에 팔고 있더라고. 부부싸움은 왜 했나 몰라. 아무튼 돌아와서 글씨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 액자를 해야겠는데, 어떤 모양 어떤 색이 어울릴까?

정리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