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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30 21:19 수정 : 2007.05.31 08:55

중식당 ‘목란’의 이연복씨.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중식당 ‘목란’의 이연복

이연복씨는 모든 요리를 직접 만든다. 대단할 게 없어보이지만 주방의 실상을 아는 사람이라면 놀랄 수밖에 없다. 대개의 주방장들은 부주방장을 거느린다. 부주방장과 일을 나눠서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주문이 들어오면 주방으로 들어가 웍(Wok; 중국 프라이팬)을 잡고 칼을 쥔다. 대만대사관 최연소 주방장이었다는 간판이 무색할 정도다.

머리에 용량 꽉 차 공책에 적기 시작

그가 요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주방의 서열이 엄격했다. 주방초보가 처음으로 하는 일은 설거지와 잡일이다. 그 다음에 전표를 보고, 그 다음에 국수를 뽑고, 그 다음에 칼질 보조를 한다. 칼을 잡자면 2∼3년이 걸렸다. 그 전에는 칼이나 웍을 만질 수도 없었다.

“새벽같이 주방에 나와서 몰래 칼질을 해요. 아침에 칼판장(주방의 칼 파트 수장)이 나와서 딱 보면, 참 기특하거든.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면 칼판장 기분이 좋아져서 일거리를 조금씩 줘요. 일단 자기가 편하니까 …. 그때부터 하나씩 가르쳐줘요. 양파나 배추를 썰더라도 어느 요리에 들어가냐에 따라 써는 방법이 달라져요. 그걸 하나씩 배우다 보면 나중엔 머리에 용량이 꽉 차서 더는 저장이 안 되지. 그때부터 공책에 적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요리사가 되는 거예요.”

프로의 똥고집 보다 차라리 완전 초짜가…


요즘에는 그런 요리사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직접 운영하고 있는 식당 ‘목란’에 프로페셔널 요리사를 쓴 적도 있었지만 기본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맘에 들지 않아 직접 칼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명 ‘프로페셔널’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똥고집’에 질리고 말았다. 그 후론 차라리 완전 초짜를 데리고 오자 싶었다. 직접 요리하면서 가르치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그는 무모하다 싶을 만큼 타협하지 않는다. 아직도 춘권(만두의 일종)을 직접 싼다. “그거 공장에서 납품받으면 되는데, 아직도 직접 만들어요?”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그가 느끼기엔 맛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요즘은 칼집을 내서 납품하는 오징어도 많은데, 그는 굳이 직접 오징어에 칼집을 낸다. 이유는 명확하다.

굳이 직접 오징어에 칼집을 내는 이유

중식당에서 쓰는 칼은 넓고 두꺼운 특징을 지니고 있다.
“생각해 보세요. 오징어를 잡으면 냉동을 하죠? 그런데 칼집을 내려면 그 오징어들을 해동시켜야 해요. 칼집을 내고는 또 냉동시키죠? 맛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큰 차이다. 그래서인지 이연복씨가 만들어 내는 짬뽕과 해물누룽지탕의 맛은 압권이다. 해물누룽지탕 잘한다는 몇 집을 비교한 잡지기사가 있었는데, 그의 요리가 최고로 꼽혔다. 오징어에 직접 칼집을 내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긴 힘들겠지만 그런 정성이 요리에 스며드는 것이다.

두 눈 가리고 썰어도 미세하고 정확한 두께로

그는 중국음식의 기본은 칼질에 있다고 여긴다. 채소 하나를 자를 때도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짬뽕을 볶을 때 채소가 너무 얇다면 씹히는 맛이 없어진다. 순이 다 죽어버린다. 반대로 잠깐 볶는 요리인데 채소가 너무 두껍다면 맛이 나질 않는다. 요리에 따라 재료에 따라 칼을 놀리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

그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온 걸 본 적이 있다. 생활 속 달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는 천연덕스럽게 칼질을 했다. 요리사라는 허장성세가 그에겐 없다. 심지어 두 눈을 천으로 가리고 무릎 위에 올려놓은 양파를 아주 미세하고 정확한 두께로 썰어내는 묘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본이다. 요리가 예술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전에 칼을 섬세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건 예술가의 몫이 아니라 장인의 몫이다.

글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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