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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30 21:13 수정 : 2007.05.31 08:54

이탤리언 레스토랑 ‘EO’의 어윤권씨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이탤리언 레스토랑 ‘EO’의 어윤권

어윤권씨의 이력은 화려하다. 스무살부터 요리를 시작했고, 한국의 유명호텔에서 요리를 했다. 그러곤 스물일곱에 이탈리아로 떠났다. 로마·소렌토·밀라노의 유명 식당에서 요리를 했다. 덕분에 한국과 이탈리아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요리의 깊이는 육수…육수의 질은 칼

“한국에서는 모양 예쁘게 내고 손재주 있으면 요리 좀 한다는 소리 듣잖아요. 그런데 이탈리아에 갔더니 기준이 달라요. 우선 요리사라면 모든 재료를 떡주무르듯 해야 해요. 30킬로그램짜리 참치 한 마리, 돼지 한 마리 같은 걸 능수능란하게 다뤄야 해요. 그래야 기초과정이 끝나는 거죠.”

그가 코르텔로 다 스카파오사(Cortello da Scapaossa; 뼈를 박살내는 칼)를 가장 아끼는 칼로 꼽은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그는 요리의 깊이를 육수에서 찾는다. 육수 뽑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칼이라 생각한다. 큰 생선이나 고기의 굵은 뼈를 세밀하게 자를 수 있는 칼이 있어야 제대로 된 육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도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한 나라의 음식문화 수준이 정해진다고 믿는다. 이탈리아의 메뉴를 보고 놀란 것도 그 때문이다.

칼질 잘 한 건 두 배 값 “아무개 칼한테 감사”

‘벤탈리아토 프로슈토’라는 메뉴가 있다. 한국말로 옮기자면 ‘칼질 잘한 프로슈토’다. 기계로 썰어낸 프로슈토(햄)가 13유로 정도 한다면 칼질 잘한 프로슈토는 20유로에 이른다. 섬세한 요리의 과정에 값을 치른다는 것이다.

“잡지의 화보에다 요리를 싣는 경우에 이런 문구를 쓴 걸 봤어요. ‘이 요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아무개 칼한테 특별히 감사를 표한다’. 한국도 이젠 선진국이 됐지만 식문화에선 아직 많이 뒤떨어져 있는 것 같아요. 좋게 생각하면 근검절약이 몸에 밴 것일 수도 있는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밥 한 끼 먹는데 뭐 그렇게까지 돈을 내면서까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윤권씨가 가장 아끼는, 뼈를 박살내는 칼.

도구 많아질수록, 기술 좋아질수록 밥값 내려간다

그는 요리도구가 많아지고 좋은 기술자가 많아지고 음식문화가 발달할 수록 ‘밥값’이 내려간다고 믿는다. 듣고보니 일리가 있는 얘기다. 고급재료를 다듬을 때 그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5킬로그램짜리 넙치를 다듬는다거나 비싼 꽃등심을 손질할 때 최고의 요리사가 최고의 도구를 쓴다면 손실분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같은 1인분이더라도 양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니면 가격이 떨어지거나. 제대로 손질하지 못한다면 정확히 1인분만큼만 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화 선진국은 대중적인 것과 소수를 위한 것의 구분이 확실해요. 요리사만 놓고 보더라도 직업인으로서의 일반 요리사와 장인의 세계가 확연히 나뉘어요. 일반 직업인으로서의 요리사는 한국의 요리사보다 수준이 떨어지죠. 그 사람들은 그저 자신이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장인은 달라요. 장인들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재료를 다듬는 걸 원칙으로 하죠. 양복을 만들 때처럼 재료를 재단해 나가는 거예요. 고기를 들여오더라도 반 마리, 4분의 1마리씩 들여와요. 송아지 같은 건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오기도 해요. 그걸 잘 손질해서 부분별로 파는 거죠. 또 하나 차이점은 그게 곧바로 다 팔린다는 거에요.”

톱니 모양 바가지 모양 등 갖가지…100퍼센트를 위하여

그는 연장 또는 도구의 힘을 믿는다. 모든 재료에는 거기에 딱 알맞은 도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티초크를 자를 때면 톱니모양 날이 선 칼이 필요하다. 섬유질이 질겨서 일반 칼로는 자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아티초크의 잔가시를 뽑을 때면 둥그런 바가지 모양의 칼이 필요하다.

요리에서 칼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10퍼센트일 수도 있고 100퍼센트일 수도 있다. 그저 지지고 볶는 수준의 요리에서 칼의 비중은 크지 않겠지만 섬세함이 필요한 요리에서는 칼의 비중이 100퍼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는 요리에서 칼이 차지하는 비중이 좀더 올라가길 바라는 것 같다. 우리의 음식문화가 좀더 앞으로 나간다면, 기술로서의 요리를 좀더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곧 그렇게 될 것이다.

글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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