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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30 19:56 수정 : 2007.05.31 09:22

한식당 ‘기흥별당’의 윤정진씨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한식당 ‘기흥별당’의 윤정진

윤정진씨의 식당 ‘기흥별당’은 경기도 기흥에 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잘나가던 양식 요리사에서 한식 요리사로 업종을 바꾸더니, 이번에는 잘나가던 서울의 한식당 ‘가온’을 떠나 서울과 멀리 떨어진 경기도 기흥으로 옮겨왔다. 어머니가 살고 있는 곳이 기흥이라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돈이 없어서요!”

장난치듯 말한다. 장난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정말 돈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부러 그러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는 유쾌하다. 잘 웃고, 잘 웃긴다. 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도 그는 거리낌이 없다.

떨어지는 칼은 잡지마라…“배로 튕겨내죠”

“칼에 대해서 선배한테 제일 먼저 배우는 게 뭔지 알아요? ‘떨어지는 칼은 잡는 게 아니다’죠. 그런데 열이면 열, 손으로 잡아요. 손 다 나가죠. 요리사 신발코가 쇠로 되어 있어요. 찍히면 안 되니까. 이젠 칼이 떨어진다 싶으면 배를 내밀어요. 배로 칼을 튕겨내는 거죠.”(웃음)

그는 자신을 무쇠프라이팬 마지막 세대라고 칭한다. 상징적이다. 가운데 끼여 있다는 뜻이다. 선배들에게 엄하게 배웠고, ‘도대체 칼을 왜 갈아야 하는 건데요?’라고 반문하는 후배들을 가르쳐야 한다. 그가 유쾌한 이유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그는 양식과 한식 사이에 끼어있기도 하다. 양식의 칼 쓰는 법을 한식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차이는 크지 않다. 한식보다 더 많은 칼을 이용하므로 위생적이고, 앞날을 많이 쓰는 양식의 기법으로 섬세한 요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요리에 대한 그의 생각은 한식 쪽으로 기울어 있다. 한식만큼 힘든 요리가 없고, 한식만큼 손 많이 가는 게 없고, 한식만큼 잡생각 할 겨를이 없는 요리가 없다고 한다. 자리만 옮겨도 맛이 변하는 된장만 봐도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다. 그는 된장 담그는 날, 목욕재개한다.


기법은 양식, 바탕은 한식…된장 담글 땐 목욕재계

“얼마 전에 전주에 있는 현대식당에 가서 까무러칠 뻔했어요. 콩나물 국밥집인데, 주인 할머니는 정말 제가 본 칼잡이 중 최고였어요. 식칼을 쓰시는데, 마늘을 칼로 썰지 않아요. 칼을 옆으로 눕히더니 칼등으로 마늘을 갉아내는 거에요. 채소도 미리 썰어놓는 법이 없어요. 국밥을 시키면 그때 물어봐요. ‘맵게 먹어? 안 맵게 먹어?’ 물어보고는 그 자리서 고추와 마늘을 썰어내요. 요즘은 다 기계 쓰잖아요. 음식 철학에서도 그분만한 사람이 없어요.”


윤정진씨는 한식을 만들면서도 양식 칼을 이용한다.

국밥집 할머니의 칼등 무공에 “까무러칠 뻔”

윤정진씨는 요리에서 칼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식당의 할머니가 칼 쓰는 법을 보고 놀란 것도 그 때문이다. 칼을 어떻게 대느냐에 따라 재료의 맛이 달라진다. 파를 채친다고 해 보자. 칼날이 얼마나 잘 서 있느냐에 따라 재료의 보존기간이 다르다. 만약 칼날이 무뎌서 채소를 짓이긴다면 금방 문드러질 수밖에 없다. 육안으로 보면 차이를 알아내기 어렵다. 하지만 요리사라면 그 차이를 알아야 한다. 전주의 식당 할머니가 마늘을 갉아내는 것도 재료에서 최대한 맛을 뽑아내려는 것이었다.

그는 칼을 아낀다. 칼가방에다 온갖 종류의 칼을 준비해 둔다. 다른 곳으로 출장을 갈 때면 칼가방을 늘 가지고 간다. 봉변을 당한 적도 있다. 제주도로 출장을 갈 때 검색대에서 걸렸다. 가방을 열어보니 가지런히 꽂힌 칼이 열 다섯 자루가 넘었다.

출장 땐 열다섯 자루 가방에…‘봉변’ 당한 적도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냐,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요리사 자격증만 있으면 봐 줘요. 대신 도착할 때까지 승무원이 칼을 보관하죠. 제 칼이 없으면 요리하기 힘들어요. 제가 제일 아끼는 칼이 이거예요. 12년 된 칼인데, 일본 글로벌사 제품이에요. 이음새가 없이 통으로 되어 있는데, 무게도 딱 좋고 무엇보다 쇠가 튼튼해요. 우리나라에서 만든 칼은 쇠가 좀 무른 게 흠이에요.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서 70평생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린 장인을 봤어요. 그런 고수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는데 그게 승화가 안 된 거죠. 도자기나 검을 만드는 장인들은 있는데 왜 식칼 만드는 장인은 없는지 몰라요.”

윤정진씨가 앞으로 기흥에서 벌일 일이 궁금하다.

글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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