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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30 18:15 수정 : 2007.06.05 17:30

<채털리 부인의 연인>

[매거진 Esc] 김연수의 여자여자여자

복습하자! 엠마 보바리는 ‘말탈래 부인’이다. 그럼 <채털리 부인의 연인>의 주인공 코니는? (본인은 절구부인이라고 주장하지만) 두말 할 것도 없이 ‘차탈래 부인’이다. 그런데 그 남편 클리퍼드가 지금 숲으로 가면서 코니를 향해 이런 대사를 날린다. “난 지금 인간 정신의 업적물을 타고 있는데다, 이것은 말을 능가하니까 말이야!” 전쟁에서 하반신을 다친 이 남자가 말하는 ‘정신의 업적물’이란 바퀴 달린 환자용 모터 의자다. 이 의자에는 한 사람밖에 탈 수 없었으니 애당초 ‘차탈래 부인’의 욕구는 불만에 가득 찰 뿐이다. 그런 부인 앞에서 ‘정신의 업적물’이라니 그 무슨 풀 뜯어먹는 소리더냐? 그러니 승마로를 따라가던 그 모터 의자가 고장나는 건 당연하다. 부인 시리즈에서 말을 조롱하면 안 된다.

채털리 부인, 차탈래 부인!

얼마 뒤, 그 승마로로 천둥번개가 몰아친다. 굵은 빗줄기가 쏟아진다. 그리고 멀리 벌거벗은 두 마리 짐승이 그 승마로 위를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이는데, 어째 말은 아니다. 그럼 뭔가? 말이라도 나온다면 그럭저럭 문학적으로라도 비유하겠는데, 이 소설에는 말도 안 나오고 그저 비 내리는 승마로 위에 성질 급한 두 짐승뿐이다. 그러니 말로도 할 수 없다. 여기 쓰자니 18금이다. 그 다음 장면이 궁금하시다면 다들 서점으로 달려가든지, 하다못해 도서관이라도 찾아가서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빌려보는 수밖에.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분들한테 결론만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짧고 날카롭게. 그러곤 끝냈다. 짐승처럼.” 아쉬워도 하는 수 없다. 바쁘신 분들은 늘 좋은 걸 놓칠 수밖에 없다.

코니의 남편 클리퍼드도 바쁘신 분이다. 귀족계급으로 목하 탄광사업에 열중이시다. 나중에 코니가 완전히 떠나버린 뒤에는 정말 훌륭한 사업가로 변신할 정도였다. 탄광사업은 뭔가 파내서 돈을 버는 일이다. 남자들에게 어울린다. 하지만 앞날이 걱정돼 오늘도 내일도 곡괭이질을 하느라 남자들은 죽어간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친다. 앞날을 걱정하는 멜러즈의 내면에서 절망의 공허를 느끼며 코니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것은 모든 욕망을 죽이고, 모든 사랑을 죽이는 것이었다.”

욕구불만 부인들에겐 돈보다 사랑

김연수의 여자여자여자
이 동굴이나 저 탄광이나 마찬가지다. 부인들은 돈 버는 일이나 앞날에 대한 걱정에 정신이 팔린 남자들에게는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돈 버느라 바쁜 남자들, 지금 하지 못하는 남자들,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는 남자들은 아무런 매력이 없다고 부인들은 주장한다. “누구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하는데?”라고 버럭 화를 내도 할 수 없다. 왜냐면 이건 부인 시리즈니까. 잘 하고 싶다면, 멜러즈처럼 이런 편지를 부인에게 보내 보시라. “돈을 벌고 쓰는 것 대신에 인생을 사는 법을 사람들이 배워 깨우치기만 한다면, 그들은 25실링으로도 아주 행복하게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을 거요!”


이번에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말이다. 탄광에 출근하는 길에 멋진 여자를 보게 된 조르바, 문득 깨닫는다. “이 병신아, 탄광엔 뭣하러 가? 뭣하러 풍향계처럼 뱅글뱅글 돌면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해? 여기에 탄광이 있지 않으냐? 뛰어들어 갱도를 열면 되는 걸 가지고!” 멜러즈도 알고, 조르바도 안다. 욕구불만의 부인들에게는 돈보다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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