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05.30 16:37 수정 : 2007.05.31 18:24

딱밧(탁발)을 하고 있는 승려들에게 남자가 찹쌀밥을 건네고 있다.

[매거진 Esc] 소설가 박형서의 라오스 기행

지난 화요일 오후에 나는 라오스 루앙프라방의 한 노상주점에 앉아 있었다. 길건너 아래쪽 기슭에는 누런 메콩강이 흘렀고, 도로에 접한 내 테이블 위에는 그 유명한 맥주 ‘비아 라오’가 놓여 있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미지근해지는 동남아의 우기인지라 나는 계속해서 맥주잔에 얼음을 집어넣었다. 거리에는 프랑스식으로 지은 식민지풍 건물과 약간은 휘청거리며 걷는 누런 법복을 입은 승려들, 빼빼마른 몸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안주처럼 흩어져 있었다. 문득 키가 작은 청년이 지나가며 “싸바이디” 하고 라오어로 인사했다. 나도 답례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시선을 마주하지 않고, 얼굴을 비껴 서로의 조금 왼쪽을 보았다.

멋진 투어보다 더 인상적인 것

그게 내가 루앙프라방에서 인사하는 방식이었다. 라오스의 모든 것들은 이처럼 늘 중심에서 조금씩 벗어나 있다. 여기서 중심이란 한국뿐 아니라 모든 서구화된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거나 목표가 되는 것들, 굳이 말하자면 예의·돈·명예·욕망 등을 말한다. 라오스의 하급 관리는 자신의 생살여탈권을 쥔 고급 관리가 지나가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라오스의 평범한 사람들은 왜 돈과 명예가 자신의 삶에 그리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한다. 루앙프라방에서 마주칠 수 있는 욕망이란 그날 하루의 포근한 평화뿐이다. 무언가를 얻고자 최선을 다하고, 매일매일 아등바등 살고, 그러지 않다가는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서조차 손가락질을 당하는 우리 사회의 시각에서 보면 욕지거리 나올 만한 여유로움이 가득 차 있다. 관광객들도 쉽사리 거기에 전염되어, 투어에 참가하는 대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통가옥이 늘어선 거리를 어슬렁거린다.

돼지고기를 갈아 당면과 야체를 섞어 토마토와 피망에 넣은 라오스식 음식
물론 다른 유명한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루앙프라방에도 멋진 투어가 있다. 유람선을 타고 메콩강을 거슬러 팍오동굴에 들르거나 푸씨산 정상에 올라 아름다운 도시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왓씨엥통에 가거나 왓마이 사원을 돌아볼 수도 있다. 왕궁박물관을 방문해 90% 순금으로 이루어진, 루앙프라방이라는 이름의 기원이 된 성스러운 황금불상 파방을 구경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투어에 참여하면서도 마음은 언제나 눈앞의 화려함에서 한 발짝 비껴나 있게 된다. 왜냐하면 거기는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이기 때문이다. 루앙프라방에 머무는 여행자는 라오스 사람들이 고안해 낸 삶의 방식, 곧 ‘한 발짝 비껴서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곳저곳을 바삐 돌아다니더라도 마음은 늘 메콩 강을 따라 늘어선 한적한 켐콩 거리를 유유자적하게 거닌다.

‘어째서인가?’고 묻는다면 설명할 길이 없다. 라오스에서라면, 다른 모든 질문도 마찬가지다. 나는 왜 루앙프라방의 헐벗은 주민들이 늘 웃는 얼굴인지 알지 못한다. 어떻게 흐르는 강물을 몇 시간씩이나 말 없이 들여다볼 수 있는지, 쩨쩨하기로 유명한 유럽 관광객들에게 모욕적으로 시달리면서도 그토록 친절할 수 있는지 모른다. 아마 나는 영원히 그걸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저 이방인일 뿐이고, 내 나라에 돌아와서는 잠시 쉴 새도 없이 이처럼 원고를 휘갈겨야 하는 신세니 말이다. 나는 라오스를 사랑하되 라오스에 스며들 수가 없다. 우리는 그야말로 완전히 다른 존재 같다. 그들은 그들의 신화처럼, 마치 달에서 온 종족인 듯하다.

그 행복한 웃음을 이해할 수 있나

어쩌면 이 모든 것도 착각일지 모른다. 라오스는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성스러운 기운으로 가득 찬 동남아의 두메가 아닐지 모른다. 사람들은 타락했고, 그 능글거리는 웃음 너머에는 배덕한 탐욕과 광기와 같은 호전성이 이글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단순히 내가 오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의 오해도 없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어느 정도 두께의 콩깍지를 통하지 않고서는 참으로 농밀한 사랑스러움과 마주칠 수 없다. 나는 라오스에서 내 날의 일부를 보냈으며, 석양이 지는 메콩강변에 앉아 루앙프라방을 느꼈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오해며 환상임을 깨닫는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어차피 우리는 자신의 가족조차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하등한 존재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사랑이란 영리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무식하게 느끼는 것이다.


라오스 몽족 야시장에 전시해 둔 우산
우리는 때때로 타인을 느끼기 위해 여행한다. 그 과정에서 깊이 체화된 자신의 문화가 타인의 그것과 충돌하고, 또 불꽃이 튀는 걸 엿본다. 나는 루앙프라방을 느끼는 과정에서 저 번쩍이는 불꽃을 보았다. 사람들은 답답해 속이 터질 정도로 느리게 걷는다. 몇 해 전에 공사를 벌이던 도로는 아직도 공사 중이다. 한창 일할 나이의 젊은이들은 대낮부터 메콩강변에 앉아 하릴없이 맥주를 마신다. 그들은 그저 그렇게 산다. 라오스 사람들에게 세계를 변혁시킨다거나 부자가 되는 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마음의 고요한 안식이다. 그게 옳거나 그르다는 말이 아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가치평가도 내려선 안 된다. 우리는 그럴 권리가 없다.

어쩌면, 지금 내가 가진 이 모든 생각도 규정짓기 좋아하는 한낱 외국인의 오해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라오스는 동쪽으로 베트남, 서쪽으로 미얀마, 남쪽으로 타이, 북쪽으로 중국 등 온통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오래도록 고통을 당해 왔다. 근대에 들어서는 파쇼 일본과 프랑스로부터, 또 신흥 강대국 미국으로부터 무자비한 노략질을 당했다. 국토가 유린되고 가족이 살해당하고 재산을 빼앗겼다. 하지만 그들은 매일 웃으며 살아간다. 그 웃음이야말로 역사가 그 국민성을 규정한다는 매우 편리한 감상적 세계관에 대한 강력한 반증이다.

나는 그들의 행복한 웃음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왜 동남아에서 마주친 그토록 많은 장기 배낭 여행자들이 ‘가장 좋았던 나라’로 라오스를 꼽는지는 알 것 같다. 왜냐고 묻는다면, 내게 그 질문을 받았던 여행자들이 했던 대답처럼 ‘일단 가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가서 그 묘하게 정체된 시간을 직접 느껴보라고 말이다. 환상적인 라오스 전통 음식은 덤이다.

공항에서 루앙프라방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
스콜, 비아 리오, 그리고 느림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느릿하게 거리를 활보하던 늙은 유럽 관광객들이 비를 피해 이리저리 흩어졌다. 이른바 열대성 강우인 ‘스콜’로, 동남아 지역에서 우기에 흔히 만날 수 있는 봉변 중 하나다. 우산이 소용 없을 정도로 콸콸 쏟아대다가 잠시 후 뚝 그치고 만다. 수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순식간에 범람한 강물에 돼지가 사색이 되어 둥둥 떠내려가는 걸 본 적도 있다.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비 오는 거리를 바라보았다. 푸른눈을 한 여행자들이 비를 피하려 난민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나도 빗방울이 들이치는 내 맥주잔 주둥이를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하지만 라오스 사람들은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비가 올 때도 있는 거지, 하는 표정으로 느릿느릿 걸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지난 화요일 오후를 라오스 루앙프라방의 한 맥줏집에서 보냈다. 거기 앉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 아니 나를 제일 괴롭히는 것들로부터 한걸음 벗어나 맛있는 비아 라오를 마셨다. 오후 들어 스콜이 잠깐 내렸고, 그 비를 맞으며 부처님의 미소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는 라오스 사람들을 보았다. 그저 그뿐이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당시 메콩강 너머로 붉은 해가 졌는지 푸씨산 정상에 누런 달이 떴는지를 못나게 고민하는 이유는, 내가 지금 그곳을 떠나 한국의 책상 앞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루앙프라방=글 박형서/소설가 사진 AB-ROAD 협찬 베트남항공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