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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23 16:22 수정 : 2007.05.24 15:33

이순재

[매거진 Esc] 정이현의 남자 남자 남자

세상의 아버지는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 억압적이거나 희생적이거나. 가부장제 상징질서 안에서 ‘힘세고 잘난’ 아버지는 자신의 힘으로 아랫것들을 찍어누르는 이미지로, ‘힘없고 가난한’ 아버지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련한 이미지로 일반화된다. 그런데 여기, 도무지 무섭지도 불쌍하지도 않은 아버지가 한 분 계신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웃어른 이순재님!

손자야, 나 대신 잡혀 가줘!
사실 이 분, 나름 성공한 인생이다. 번듯한 한방병원장에, 든든한 건물과 까맣고 멋진 세단까지 둔 일흔살 남성이 그리 흔한 건 아니니까. 잘난 며느리에게 병원실권을 넘겨줬다는 속사정이 없진 않지만, 장성한 두 아들에 손자들까지 죄다 한집에 거느리고서 제법 큰소리치고 사는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다복해 보인다.

그러나 오로지 순수하게 ‘나’의 이기적 욕망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 아버지로서 그 남자의 남다른 점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나’의 범위인데, 보통의 아버지들과는 달리 처자식조차 깔끔히 배제한, 완전한 단독자로서의 ‘나’만을 의미한다는 것이 특히 놀랍다.

환약인지 토끼똥인지 아들을 속여 시식하게 하는 것쯤이야 애교로 넘기겠다. 그러나 독수리타법으로 악성 댓글을 달다 고소당했을 때 그가 보인 행태에는 그저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식구들과 부하 직원들을 한 명씩 차례로 바라보며 “나 대신 좀 잡혀 가줘!” 라고 요구하는 그 자세가 어찌나 당당하시던지, 하마터면 독립운동하다 끌려가는 길이라고 착각할 뻔했다.

얼결에 그에게 간택된 것은 집안의 제일 아래 서열인 손자 윤호다. 무려 ‘금품’으로 친손자를 꾀어 거짓 자백하도록 만드는 할아버지는 아마도 국내드라마 역사상 (그리고 모르긴 해도, 국내 사법역사상) 전무후무할 것이다. 물론 그가 내세우는 명분이야 없지 않다. 집안의 가장이며 병원장인 자신이 잡혀가면 우리 집과 우리 병원은 (쪽팔려서) 앞으로 어쩌느냐는 것. 하지만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그 말이 구차한 변명일 뿐임을 잘 안다는 점에서, 기존의 다른 아버지들이 내세웠던 명분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른 아버지들은 자기가 내세우는 명분을 스스로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 적어도 상대방의 귀는 너끈히 속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보통 아버지들의 그 지겨운 후렴구
내 몸의 안위 앞에서 자식새끼들조차 냉정한 타인으로 취급하는 이 얌체 가부장이 밉지 않게 느껴지는 까닭은 뭘까? 혹시 우리가 그동안 ‘아’와 ‘피아’의 구별이 몹시도 안 되는 아버지들만 줄기차게 봐 왔기 때문은 아닐까? “그 여자랑 헤어져라. 다 너를 위해서야.” “치마 짧게 입지 마라. 다 너를 위해서야.” “그런 인생은 안 된다. 다 너를 위해서야.” ‘너’와 ‘나’를 노골적으로 헛갈려하는 이 후렴구야 말로 아버지란 분들의 단골 레퍼토리 아니던가.


자식과 관련된 일이라면 도통 자타 분리가 안 되어 고생하는 아버지들이 많다. 그 틈바구니에서 저토록 투명하고 꿋꿋하게 ‘나’만을 생각하는 아버지 이순재의 모습이 차라리 새롭고 전복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자식 인생에 투사하고 자식 대신 복수하고 자식에게 몸 바치기 전에, 부디 다들 이원장님처럼 ‘내 몸’ 먼저 사랑하고 ‘내 영혼’ 먼저 보우하시기를. / 소설가 정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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