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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18 14:48 수정 : 2007.05.20 17:44

소설가 김연수

[매거진 Esc] 김연수의 여자 여자 여자

부인 시리즈에서 말은 빼놓을 수 없는 상징이다. 부인 시리즈의 최고봉이랄 수 있는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6주 동안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던 로돌프가 마침내 생각해낸 것은 둘이서 말을 타고 전나무 사이로 떠나는 일이었다. 그 짧은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보바리 부인은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이렇게 생각한다. 자신의 눈이 이토록 크고 이토록 까맣고 이토록 깊게 보인 적은 없었다고. 여기까지 읽고도 “아하, 승마는 역시 건강에 좋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담 보바리>의 제일 악한인 샤를르 보바리를 두고도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할 게 분명하다.

승마는 역시 건강에 좋아?
샤를르 보바리는 왜 나쁜가? 엠마 보바리를 처음으로 만나러 가던 날 아침부터 그는 말 위에서 졸고 있었다. 이 남자는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현대 직장인을 닮았다. 틈만 나면 잠을 잔다. 후작의 성곽에서 새벽 세 시까지 엠마와 자작이 춤을 출 때도 이 남자는 거의 실신 상태였고, 엠마와 레옹이 소곤소곤 문학을 논할 때도 옆집 약제사 아저씨랑 자고 있고, 엠마와 로돌프가 자기 진찰실에서 밀회를 가질 때도 자고 있다. 엠마 같은 아내가 있는데도 태평스레 잠을 잤다는 점에서 그는 세상에서 제일 나쁜 남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쁜 건 엠마가 자살한 뒤, 그 묘비에 새길 문구를 ‘나그네여 발길을 멈추라’로 할까, ‘사랑스러운 아내 이곳에 잠들다’로 할까 고민할 때다. 이 남자는 도대체 엠마가 누구였는지 알기는 알고 있었을까? 엠마는 잠을 자지도 않고, 발길을 멈추지도 않는 여자였다.

<마담 보바리>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레옹과 재회한 엠마가 성당에서 나와 마차에 함께 올라타는 장면이다. “어디로 모실깝쇼?”라고 마부가 물으니 레옹이 엠마를 마차 안에 밀어 넣으면서 “아무데라도 좋아!”라고 대답한다. 마차는 목적도 방향도 없이 닥치는 대로 헤매고 다닌다. “그 마차의 모습은 생폴, 레스퀴르, 가르강 산, 라루우쥬 마르에서도 보였고 가이야르브와 광장에서도, 말라드르리 거리, 디낭드리 거리, 생 로멩, 생 마클루, 생니케즈 성당 앞에서도, 바스 비에이유 투르나 트롸 피프에서도, 모뉘망탈 공동 묘지에서도 볼 수 있었다.” 거기가 어디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암튼 계속 달려야만 한다는 게 중요하지. 1857년 플로베르는 이 장면으로 피나르 검사에게 기소됐다.

‘마지막 장면’은 모르는 게 좋아!
부인 시리즈에서 말이 중요한 까닭은? 말이 있어야지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담 보바리>에서 ‘말’은 공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드는 오페라나 소설로도 나타난다. 그러니 최근에 만든 영화에서도 이런 대사를 들을 수 있다. “당신이 위도를 선택해. 나는 경도를 말할 테니. 우리 둘이 거기로 가는 거야.” 쉽게 잠들지 못하고 늘 어딘가로 움직이려고 하는 부인들을 향한 최대의 유혹어다. 이 말에 위도와 경도를 따져보기 위해서 지리학을 공부하는 건 얼뜨기들의 짓이다. 무심결에 내뱉은 곳이 태평양 바다 한 가운데라고 해도 상관없다. 문제는 여기만 아니면 되는 일이니까. 마지막은 미셸 푸코의 말이다. “책을 쓸 때 마지막 장면을 이미 알고 있다면 쓸 마음이 나겠는가? 글쓰기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다. 그렇다면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쩐지 이 남자도 뭘 알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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