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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18 14:11 수정 : 2007.05.18 14:48

동대문 출신 패션디자이너 최범석(가운데)씨가 지난 4월 열린 ‘프레타 포르테 부산 F/W 컬렉션’에서 피날레를 장식했다. 사진 제너럴 아이디어 제공.

[매거진 Esc] 최범석의 시선

현재 대한민국 젊은 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 최범석(30)씨가 국내외를 여행하며 패션 디자이너로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글과 사진을 통해 전한다. 최씨는 홍대 앞 노점상 주인으로 시작해 지난해 파리 백화점에 입점한 그의 드라마틱한 패션 이력을 소개하는 짧은 자전적 글로 첫회를 갈음했다. 편집자

나는 옷쟁이다. 지금은 디자이너지만 19살 때 장사꾼으로 옷과 첫인사를 했다. 그때 난 잘하는 게 없었다. 공부나 손재주가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단 하나, 남들보다 옷을 잘 입었다. 옷장사를 하기로 결심한 건 당연한 순서였다. 물론 시작은 쉽지 않았다. 돈도 없었다. 어린 혈기 하나만 믿고 어디든 몸 붙일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다가 홍대 앞의 한 건물 앞에 빈터를 발견했다. 건물주인에게 부탁을 하고 벽을 빌려 노점을 시작하였다.

동대문의 새벽과 보낸 청춘
처음 시작할 때는 누구나 기대를 한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두달도 못 버티고 실패했다. 난 빈티지 스타일을 좋아했는데 아무도 내 스타일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지금은 빈티지가 하나의 스타일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버린 옷을 주워입는다는 오해가 많았다.

곧 두번째 장사를 시작했다. 부산까지 밀려내려갔다. 역시 노점상이었다. 그 곳에서는 어느 정도 감이 맞아 떨어졌는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 땐 옷을 파는 것 말고 다른 꿈이 없었다. 그저 돈을 모으는 것이 최선이었다. 돈이 모이자마자 가게를 얻었다. 처음에는 서울에는 입성하지 못하고 의정부에서 시작했다. 남대문이나 동대문에서 물건을 떼다가 파는 생활이었다. 그리고 스물 한살, 나는 장사를 시작한지 2년 만에 동대문 ‘디자이너스’ 클럽에서 가장 어린 장사치가 되어있었다.

이처럼 처음부터 디자이너를 꿈꾸었던 건 아니다. 장사에 감을 익히기 시작하면서 욕심이 생겼다. 내 느낌에 맞는 옷, 잘 팔릴 것 같은 옷을 만들어서 팔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는 이야기지만 처음에는 옷 만드는 방법을 전혀 몰랐다. 원단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었다. 무작정 들어가서 몸으로 부딪혔다. 1년 동안 고생을 제대로 했다. 동대문은 선수들의 바닥이었다. 앞, 옆 가게들이 신나게 물건을 팔고 있을 때 그저 지켜보기만 할 때의 수모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안타깝다. ‘누가 조금만 날 가르쳐 줬다면, 한마디라도 해줬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별수 없었다. 나는 혼자 뛸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년이 지나서야 옷 만드는 노하우를 익혔고 내가 만든 옷을 팔 수 있었다. 그렇게 동대문 입성 2년 차가 되면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리기 시작했고 3년 째 접어들면서 동대문 매장들 중에 매출 1위를 달렸다. 다른 상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매일 들어올 정도였다.


그렇게 새로 입점한 ‘에이피엠’상가에서 이른바 ‘대박’이라는게 터졌다. 옷은 마구 쏟아져 나가 전국의 가게에 걸렸다. 그 때 내 브랜드 이름은 ‘무’ 였다. 한자로 ‘없을 무(無)’. 아무 것도 없이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나의 20대 중반은 동대문의 하얀 새벽과 함께 지나갔다.

우연히 2003년 봄 파리 컬렉션을 보러 갔다. 거기서 컬렉션에 참가한 홍은주씨를 비롯해 여러 디자이너들을 만났다. 가슴에서 뜨겁고 씁쓸한 기운이 올라왔다. 나도 내가 원하는 옷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까지는 살기 위한 수단으로 옷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내 안에 있는 걸 옷이라는 도구로 끄집어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를 테스트 하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와 수소문 끝에 서울컬렉션에 참가할 수 있었다. 디자이너 집단에 드는 것도 수월하진 않았다. 동대문 출신이라 디자이너 단체 어느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첫 쇼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왔다고 해서 컬렉션에 참석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아직도 내가 유학파인 줄 안다. 지금 솔직하게 바로 잡고 싶다. 나는 대학도 안 나왔고 패션 디자인은 배운적 없다. 그러나 나는 내가 원하는 옷을 만들 줄은 안다.

첫 패션쇼에서 거짓말을 한 이유
그때가 내 인생에 딱 한번의 패션쇼라고 생각했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컬렉션을 한 것인데 운이 좋았는지 아직도 컬렉션을 한다. 올해 8번째 컬렉션을 기획 중이다. 컬렉션에 참가하면서 내 몸 전부를 던져 배우고 성장하는 중이다. 수난도 많이 겪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행복하다. 난 강산이 변하는 10년 동안 옷을 만들었고 내 인생의 반을 옷장사로 살았다. 아마 앞으로도 옷을 팔 것 같다. 사람들이 내가 만든 옷을 한벌 씩 가질 때 까지….

최범석/ 패션 디자이너·제너럴 아이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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