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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17 15:30 수정 : 2007.05.18 16:33

매일유업의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 광고감독 리형윤 / 박미향 기자

Esc : 도대체 누구야?/광고감독 리형윤

‘백부장의 굴욕’으로 대박…UCC에 몰카 형식

하루에 세편 뚝딱…그것도 대부분 애드리브

M회사의 백부장은 상품 기획 한번 잘못했다가 본부장에게 된통 깨진다. “바나나가 원래 하얗다는 게 말이 됩니까?” “(쩔쩔매며) 원래 속 먹는 부분은 하얗거든요”“그래서 어쩌라고요, 안팔리는 걸 어쩌라구요!”

인터넷과 극장서 선봰 뒤 마침내 공중파까지 입성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몰래카메라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UCC형식의 이 동영상은 ‘백부장의 굴욕’ ‘백부장 몰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서 돌았던 매일유업의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의 광고다. 올해 초 인터넷과 극장을 통해 선보인 이 광고는 조회수 65만건을 기록하더니 3월에는 케이블 방송을 타고, 5월에는 마침내 공중파까지 입성했다. 작품 스타일과 제작비 규모, 유통 확산 경로와 소비자들 반응까지 광고계의 <블레어위치 프로젝트>라고 할 만하다. 사무실편 외에 딸이 다니는 학교에 백부장이 상담하러 가는 학교편, 백부장과 편의점 직원이 제품 전시 위치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편의점편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국광고에서는 거의 없는 자기희화화 통한 유머 제대로 먹혀


몰카식의 스타일도 스타일이지만 한국 광고에서는 없다시피한 자기희화화를 통한 유머와 역발상이 제대로 먹혔다. 이 광고를 만든 이는 삼성생명, 에스케이텔레콤, 지오다노 등의 CF를 만들었던 프로덕션 ‘알파빌44’의 리형윤(34) 감독이다. 그가 주로 해왔던 작업이 부드러우면서도 세련된 기업 이미지 광고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광고는 그의 표현대로 “비교체험 극과 극”인 셈이다.

세련된 기업 이미지 만들다 ‘비교체험 극과 극‘

백 부장은 누구인가
“이 제품의 성공은 사실 광고라기보다 이름에 있다고 봐요. 이름부터 이게 뭐가 되도 되겠다 싶어서 무조건 한번 해보자고 한 거죠.” ‘알아서 찍어봐라’는 말만 듣고 영화나 TV 드라마보다 훨씬 까다롭게 진행되는 프리프로덕션 미팅도 한번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 청계천 몰카 렌즈까지 구해왔고 세 편을 가정용 6mm 카메라로 하루에 다 찍었다.

“이름부터 이게 뭐가 되도 되겠다 싶어 무조건…”

조감독이 편의점 직원으로 출연하고, “그렇게 안 팔려요?” 라는 그의 목소리도 들어갔다. “찍는 과정도 다른 광고와는 많이 달랐죠. 광고만큼 꽉 짜여진 틀대로 움직이는 것도 없는데 상황만 던져주고, 대부분을 애드립으로 진행했으니까요.”

여기서 궁금한 거, 광고를 보면서 늘 궁금했던 거 한가지. 백부장의 정체다. 백부장은 진짜 백부장인가. 싱겁지만 그냥 연기자다. 그런데 사연이 좀 있다. 원래 찍었던 모델은 물론 실제 M기업 백부장은 아니었지만 “지금 주인공보다 훨씬 억울하게 생긴 아저씨”였다. 감독이 보여주는 원 광고를 보니 덩치도 왜소하고 머리도 벗겨진 그냥 옆집 아저씨다. 똑같이 쩔쩔매도 심금을 울리는 정도가 다르다. “광고주가 너무 불쌍해 보인다고 하더군요. 저는 세게 나가야 더 현실감이 있다고 밀어붙였지만 결국 수위 조절을 해서 다시 찍었죠.” 그래도 시리즈 마지막에 백부장이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이면서 “내가 한 일에 대해서는 사실 지금도 후회는 안해요”라고 깔리는 심경고백은 테스트 광고에 들어갔던 그 아저씨의 목소리를 삽입한 게 그나마 위안이 됐다.

같은 업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찍을 생각했어?”

반응은 생각보다 컸다. 무엇보다 같은 ‘업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찍을 생각을 했어?”라고 말할 때 가장 즐겁다. 사실 형식은 새롭지 않다. 그의 말대로 ucc나 몰카식의 광고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광고쟁이들이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등장인물로 하여금 “바나나 우유가 노란 색이어야지, 하얗게 만드니까 안팔리죠”라고 말하게 하는 유머감각때문이다. 이렇게 자기비하를 하는 듯 하면서 경쟁 제품의 색깔에 의문을 던지는 거다. 왜 노란 건데? 껍질은 어눌해 보이지만 속내는 지능적이다. “심의도 있고 국민정서라는 것도 있어서 광고 표현에 유달리 제약이 많죠.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떨어지는 타이나 브라질에 비해서도 광고 크리에이티브는 떨어진다고 할 정도니까요. 그런 완고한 틀을 조금 깬 거? 그런게 광고하는 재미기도 하구요.”

“완고한 틀을 조금 깬 거? 그런게 광고하는 재미”

‘철의 장벽’ 비틀즈를 쓰다
안정감을 중요시하는 대기업 광고를 주로 했지만 실은 그가 틀을 깬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5년 국내 광고 최초로 ‘철의 장벽’으로만 여겨졌던 비틀즈 노래를 사용했던 게 바로 그다. 늘 예쁜 음식 차림을 강조했던 라면 광고에서 대학생을 등장시켜 땀 뻘뻘 흘리며 후루룩 후루룩 먹게 하는 장면으로 회사 전체를 회생시킨 ‘삼양라면’ 광고도 그의 작품이다.

“안되니까 안하는 거라는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콜롬부스의 달걀

몰카 스타일의 촬영과 자기회화화 유머로 인기를 모은 리형윤 감독의 광고.
그가 말하는 새로움은 일종의 콜롬부스의 달걀이다. “하도 이런저런 제약이 많으니까 그냥 안될거야 지레 넘어가는 게 많거든요. 마이클 잭슨이 음악 한번 쓰는 데 무슨 섬을 달라고 했다더라 이런 풍문만 듣고 포기하는 식으로요. 비틀즈 음악도 특별한 수완이나 엄청난 돈으로 가져온게 아니예요. 다른 음악과 똑같은 절차로 사왔어요. 물론 비싸긴 하지만 광고 규모나 전파 횟수를 따지면 결과적으로 비싼 것도 아니었구요.” 안되니까 안하는 거라는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훨씬 더 재미있어질거라는 그의 말은 광고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일 게다.

영화판서 놀다 알바 삼아 광고판 들어왔다 이젠 핵심 범버

한양대 영화학과 출신으로 ‘말하기 쑥스러운 영화’에 연출부로도 일했던 그는 영화에서는 늘 기다려야 하는 시간에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거 같아서 1997년 ‘알바’ 삼아 광고판에 들어왔다. 이제는 대한민국 광고대상 대상을 수상(2005년) 한 ‘핵심 멤버’가 됐지만 언젠가는 그가 좋아하고 그의 많은 광고들이 은근히 닮아있는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같은 영화도 찍어보고 싶다고 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리형윤 감독의 ‘바나나우유’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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