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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3 22:20 수정 : 2020.01.14 10:14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2018년 9월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압수수색이 끝난 뒤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퇴직 때 재판연구관 보고서 유출
재판부 "공공기록물 아니다" 판단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2018년 9월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압수수색이 끝난 뒤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박근혜 전 대통령 최측근의 재판 관련 정보와 대법원 재판연구관 보고서를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선임 재판연구관(변호사)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진 지 2년10개월 만에 내려진 첫 선고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재판 개입 의혹과 사안이 달라 향후 재판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사법농단 의혹을 폭로한 이탄희 전 판사(변호사)는 “형사판결로 사법농단의 부정함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평가했다.

■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 유출도 무죄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재판장 박남천)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유해용 변호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유 변호사는 2016년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청와대 요청을 전달받고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하여금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 특허 사건 정보를 ‘사안 요약’ 문건으로 정리하도록 한 혐의(직권남용)를 받는다. 또 법원을 퇴직하면서 소송 당사자의 개인정보가 담긴 대법원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 수십건을 법원 밖으로 유출하고 대법원 근무 시절 취급했던 숙명학원 관련 사건을 수임한 혐의(공공기록물관리법·개인정보보호법·변호사법 위반)도 받았다.

재판부는 혐의 모두를 무죄로 판단했다. 검찰 수사로 확보한 증거 일부가 위법하거나 사실관계 입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특히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가 공공기록물관리법이 규정하는 공공기록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면서 법관이 “보직이나 사무실이 변경되면 개인 정보저장매체에 저장해둔 (업무 수행 중 취득한) 파일을 새로운 근무지 컴퓨터에 옮겨놓고 이를 업무에 계속 참고하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라며 검토보고서 파일이나 “개인정보를 무단 유출하겠다는 범의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유 변호사가 숙명학원 사건을 직무상 취급했다고 보기 어려워 변호사법 위반 혐의도 인정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재판부 판단이 검토보고서 유출 행위에 면죄부를 줬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법관이나 재판연구관들이 전관 변호사로 개업할 때 관행처럼 검토보고서를 들고나오고 이를 변호사 영업에 활용한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재판부 판단대로라면 보고서가 유출돼 전관예우에 활용돼도 문제 제기가 어렵다.

■ 검찰수사 위법 주장 “받아들이지 않아”

유 변호사는 검찰이 과잉수사, 별건수사, 표적수사를 했다며 검찰 수사가 총체적으로 위법해 공소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재판부는 검찰이 작성한 공소장이 “공판중심주의, 증거재판주의, 무죄추정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해 공정하게 재판받을 피고인의 권리를 침해할 위험이 매우 크다”고 짚으면서도, 전체적인 수사는 위법하지 않다고 봤다. 검찰이 유 변호사의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공개소환으로 인격권을 침해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기자들에게 알려준 내용이 있다고 해도 (피고인의) 증거인멸죄 등을 특정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지 않고, 포토라인도 자율적으로 설정된 것으로 수사기관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단이 향후 진행될 사법농단 재판에 미칠 영향이 크지는 않을 전망이다.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14명의 전·현직 판사는 현재 재판부 7곳에서 1심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유 변호사 사건은 ‘재판 개입’으로 대표되는 사법농단 의혹의 본류와는 거리가 있다. 게다가 이번 판결은 직권남용에 대한 법리 판단도 하지 않아, 이 재판부가 함께 맡은 양 전 대법원장 사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탄희 변호사는 이날 본인 페이스북에 “사법농단의 본질은 헌법 위반이고 법관의 직업윤리 위반이다. 형사사건이 이 사건의 본질이 아니”라며 “형사판결로 사법농단의 위헌성과 부정함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짚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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