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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3 17:06 수정 : 2005.01.03 17:06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평생 정신적ㆍ육체적 고통을 안고 살아온 김상희 할머니가 2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84세. (서울=연합뉴스)

광복 60주년인 을유년 새해 둘째 날 눈을 감은 일본군 위안부 출신의 고 김상희(84) 할머니는 과거 일본의 만행에 대해서는 불같이 화를 내는 `호랑이'였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일제의 만행에 분노를 나타내던 김 할머니도 고된 병마와싸움은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1922년 경북 밀양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935년 열 여섯 나이에 대구에서 형사들에게 강제로 연행돼 가족들과 떨어진 채 수송선을 타고 중국으로 향했다.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상하이에 도착한 김 할머니는 일본군을 따라 쑤저우와 난징, 싱가포르 등을 이동하며 10년 넘게 지옥같은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하다가 1946년 부산항을 통해 귀국했다.

가족과 연락이 완전히 끊긴 김 할머니는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식모살이를 하며 억척같이 생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위안부 생활의 후유증으로 심장병과 신장병, 고혈압 등의 지병이 찾아와평생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1992년 위안부 피해자 신고를 한 뒤에는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일에 적극 나섰다.

2000년 9월 미국 워싱턴 DC의 유대인학살(홀로코스트) 추모 박물관 지하 소강당에서 열린 위안부 심포지엄에 참석해 가슴 아픈 과거를 증언하기도 했다.


당시 "세례까지 받은 가톨릭 신자가 깨끗한 입 가지고 더러운 말을 하는 것이싫어 성당에서 위안부 문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다. 증언이 꺼려지기도 했으나 역사는 살아야겠기에 증언대에 섰다"고 말해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김 할머니는 이 증언 이후 이용수, 황금주 할머니 등과 함께 미 의회가 제공하는 `존엄과 명예의 여성을 위한 2000년 인권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이승연 위안부 누드 파문 때에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측에서 소식을 일찍 알려오지 않았다며 정대협 사무실에 직접 전화해 버럭 화를 내 정대협 관계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평소 자신을 도와오던 신부의 주선으로 천주교에 입문해 독실한 신자로 말년을보내던 김 할머니는 2000년께부터 지병이 악화돼 투병생활을 하다 결국 예순번째 광복절을 눈 앞에 두고 삶을 마감했다.

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이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128명만 남게됐다.

지난해에는 7명이 눈을 감았다.

정대협 강주혜 부장은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이 많으셨다. 화를 낼 때는 무서우셨지만 따뜻한 마음을 지니신 분이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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