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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2 18:24 수정 : 2005.01.12 18:24

독립운동가 후손…장애인 돕고 장기기증 서약도

“조금 있는 것 좋은 데다 쓰고 싶어 기부한 것 뿐인데 (언론에서 너무 큰 관심을 보여) 일이 너무 크게 벌어졌어, 이제 나 한테 신경쓰지 마.”

옥탑방 전세금인 1500만원을 자신의 사후에 이웃돕기 성금으로 쓰도록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한 김춘희(80·서울 양천구 신정동) 할머니는 그 사연을 묻는 기자에게 ‘별 것도 아닌 일로 성가시게 해 미안하다’는 뜻을 표현하면서 마냥 부끄러워 했다.

사랑과 봉사로 가득 찬 삶을 살아온 할머니에게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포기’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번 일 조차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한국전쟁중인 20대 중반 때 혈혈단신 피난온 할머니는 충남 홍성의 고아원에서 10년간 생활하면서 고아를 돌봤으며, 이후 서울 구로구 고척동 고척교회에서 살면서 교회 살림살이와 행상 등을 하면서 번 돈의 대부분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탁했다.

10여년 전부터 강원도에 있는 장애인시설에 월 20만원씩 기부하고 봉사활동을 해온 할머니는 최근 돌보아 준 장애아로부터 문안 전화가 온 것을 계기로 주위 사람들에게 부탁해 장애아들에게 귤 상자를 보내주기도 했다.

할머니의 현재 수입은 지난 2000년 말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받는 월 35만원 가량의 생계비가 전부이다. 장애인시설에 기부하는 20만원은 이 생계비에서 나온 것이다. 나머지 15만원은 최소한의 생활비와 교회 헌금 등으로 쓰고 있다.

할머니는 나라에서 생활비를 받고 있는데 이 돈을 아껴서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자신한테 주어진 마지막 일인 것 같다고 한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일제시대 때 러시아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할머니는 남북 분단에 의해 가족적으로 지독한 불행을 겪었다.

할머니는 19살인 1944년 간호사 면허를 따고 경성제대 의대에서 간호사 생활을 했으나 한국전쟁 때 피난오면서 간호사 면허증과 독립유공자 후손임을 입증하는 각종 서류를 잃어버렸다.

게다가 강원도 금화군 청도면 고향 땅에 남은 부모와 여동생, 남동생 등 가족은 재산가에다 기독교 신자라는 등의 이유로 인민군에 의해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고향의 이웃동네 오빠로부터 전해 들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할머니는 “(가족의 불행을) 잊을 수는 없지만 누굴 원망해봐야 나만 손해이기 때문에 그저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후 장기기증 서약까지 한 뒤 “죽으면 장기를 기증한 뒤 꼭 화장을 해서 강원도 고향과 가장 가까운 곳에 뿌려 달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눈가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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