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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0 18:41 수정 : 2005.01.10 18:41

1887년 이전에 찍힌 청계천 수표교(위 사진 앞쪽)·장통교(위 사진 뒤쪽)사진과 빌딩 숲에 가려 안산이 거의 보이지 않는 현재의 청계천 수표교·장통교 사진을 비교하면 ‘상전벽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위 사진 김영준씨 제공


‘진품명품’서 16일 공개…청계천 사진중 가장 오래된 듯

1887년 이전 청계천 수표교와 장통교를 찍은 사진이 발굴됐다. 이 사진은 수표교와 장통교의 가장 오래된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추정되며, 1880년대 서울 청계천가의 풍경을 담은 드문 사진 가운데 하나다.

최근 근·현대 사료수집가 김영준씨는 ‘한국 제물포에서 서울 사이의 길 위의 돌다리’라는 제목이 영어로 적힌 수표교와 장통교의 사진 한 장을 미국의 한 대학 한국학연구소에서 입수해 한국방송의 <티브이 쇼 진품명품>(1월16일 오전 11시 방송 예정)에서 공개했다.

이 사진은 수표교 하류 쪽에서 청계천 상류 쪽을 찍은 것으로, 앞쪽에는 난간이 없는 수표교의 다리기둥 네 줄과 수표석의 지붕이 보이며, 수표교 뒤쪽으로는 난간이 없고 다리기둥이 9줄인 장통교의 전체 모습이 나타나 있다. 또 그 뒤쪽으로는 삼각동과 안산 봉우리·줄기가 보이며, 수표교 옆으로는 초가 앞에 사람들이 모여 사진 찍는 쪽을 바라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사진을 1884년에서 1887년 사이에 찍은 것으로 추정했다. 청계천복원 추진본부 복원관리반 박현욱 학예사는 “<승정원일기>를 보면 수표교 난간은 고종 24년인 1887년 4월에서 10월 사이에 세워졌다”며 “사진에 난간이 없다면 1887년 이전에 찍힌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한국사진역사 전문가인 최인진씨는 “미국·영국과의 수교가 각각 1882년, 1883년에 이뤄졌고, 사진가 퍼시벌 로웰이 1884년 고종 사진 등을 찍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면 이 사진은 1884년 이후에 찍힌 것으로 판단된다”며 “그전에는 외국인이 도성을 출입하거나 제물포에서 서울까지 이동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 사진은 또 그동안 전통 양식인지 조선 후기나 일제 때 양식인지를 두고 논란이 돼온 장통교의 ‘멍엣돌 위 넓힌 난간’ 양식에도 열쇠를 제공하고 있다. 이 사진에 나타난 장통교는 다른 모든 사진과 달리 단순한 널다리 형식을 띠고 있다. 따라서 장통교의 이 양식은 최소한 1880년대 이후의 양식이며, 일제 때 도입됐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부위원장은 “난간이 없는 수표교와 장통교를 담은 이 사진은 이제껏 나온 청계천 사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이며, 120년 된 사진으로서는 상태가 최상급이어서 청계천 다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규원 유선희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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