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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26 14:31 수정 : 2007.06.26 14:31

최근 '군가산점제'가 다시 부활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의 고흥종 의원이 군가산점 제도를 재도입하는 내용의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하였으며 해당 상임위를 통과한 것이다. 이미 8년 전인 1999년에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판결을 받은 ‘군가산점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여성부장관이 반대를 표명하는 등 파장이 커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

1999년 당시 헌법재판소가 내린 위헌 결정은 1점 미만의 아주 근소한 차이로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되는 현실에서 가산점을 받지 못하는 여성과 장애인, 군 면제자 등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점을 인정한 데 따른 것이었다. 기본적인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것은 판결의 골자라고 할 것이다.

고흥종 의원은 과거에 비해 가산점의 비중을 2%로 낮추고, 채용 선발 인원의 20%를 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가산점을 부여하는 것이므로 당시 위헌결정을 적용받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나는 군가산점 도입에 찬성한다. 나라를 막론하고 가장 힘들고 버거운 조직이 바로 군대다. 아무리 군대가 좋아졌다고 해도 우리의 군대는 아직도 폭력적이며 폐쇄성이 강하다. 고통스러운 군 생활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의문사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것을 보라, 그것을 일반화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만큼 군대 생활이 힘들고 어렵다는 반증으로 충분하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치고 한 번 쯤 자살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병들의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한참 잘 먹는 나이의 청년들이 짬밥으로 버티기는 어렵다. 게다가 병장이 되어 윗사람 노릇을 하려면 그 알량한 월급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형편이다. 자기 돈 써가면서 욕먹고 얻어맞으며 별별 고생을 다해야 하는 것이 우리 군대의 실상이다. 형용하기 어려운 고생을 2년이나 감내한 청년들에게 그만한 보답은 당연하다고 본다.

여성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군대에 있을 2년 동안 더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는가, 그리고 적용범위가 선발 인원이 20%를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니 그리 큰 어드벤테이지도 아니다. 그들이 나라를 지켜준 덕분에 시험을 준비할 수 있었다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가.

장애인들의 경우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래도 장애인들에게 일정 비율이 주어지며 따로 시험을 볼 수 있는 제도가 있으니 그것을 잘 활용하면 될 것으로 본다.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은 반드시 공무원 시험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예전부터 견고했다. 이번의 군가산점에 대입할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문제에 편입되어 다루어질 사안이다.

군 면제자들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원하던 바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군대에 가라고 하면 흔쾌히 응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어떤 이유로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사안이지 강변할 것이 되지 못한다.


의무는 말 그대로 의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의무를 이행하였다고 해서 특혜를 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인가 본데, 시장경제를 채용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군인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 일본 등의 잘사는 국가의 지원병은 차치하고 우리와 자주 비교되는 대만의 징집병은 물론, 필리핀처럼 못사는 나라들도 군인들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훨씬 높은 대우를 해주고 있다.

의무를 이행한 대가를 지불할 수 없다면 월드컵을 비롯한 각종 스포츠에서 높은 성적을 기록한 선수들은 무엇 때문에 포상을 받는 것인가, 국가대표로 선발된 선수들이 자신의 종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의무를 다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이행한 의무는 각종 포상과 연금혜택으로 보상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병역의 의무를 면제받기도 한다. 의무에 따른 대가를 지불할 수 없다면 국민의 세금을 받아 운동하고 다시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 포상을 챙기는데다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부터 도태되어야 할 것이다.

혹자는 사병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사병들의 월급을 현실화하면 굳이 가산점을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병들의 월급을 현실화하려면 지금 납부하는 세금으로는 어림도 없다. 사병 1인당 최저임금인 시간 당 3,480원을 적용한다고 가정하자. 취침시간과 식사 등의 휴식시간을 10시간으로 잡아 공제한 다음 한 달로 환산하면 140만원이 넘는다. 60만 대군에게 140만원씩을 지급하려면 세금이 엄청난 수준으로 인상되어야 할 것인데, 그때 가서는 또 뭐라고 할 것인가.

그리고 대선을 인식한 선심성 작품이라고 치부하는 데는 더욱 어이가 없다. 병역을 마친 사람의 표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표 가운데 어느 쪽이 많은가를 생각하면 금방 답이 나오는 일이다. 그것을 발의한 사람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스스로 자신의 발목을 잡을 리가 만무하다. 오히려 지금 시점에 발의한 것은 신선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따지고 보면 1999년의 위헌 판결도 사회의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IMF를 당해 취업문이 좁아지게 되자 정년이 보장되고 편하게 먹고살 수 있는 철밥통으로 몰리게 된다. 그 이전에는 교사 외에는 공무원이 그리 좋은 직장으로 대우 받기 어려웠다.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으로 몰리던 고학력자들이 대거 공무원으로 유턴하게 되자 필연적으로 군가산점이 도마에 오르게 되었을 따름이다.

객관적이지 못한 반박과 현실성 없는 주장은 백해무익할 뿐이다. 그들의 수고에 편승하여 안전하게 지냈으면 그만한 대가 정도는 지불해야 마땅하다. 차제에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한 청년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기를 촉구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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