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광복 60년 새해소망
고복남(88·인천 연수구 선학동)씨는 “질긴 목숨이 지금껏 살아 남아 또 한 해를 맞는다”고 말했다. 그는 1942년 평양 형무소에서 중국 하이난다오(해남도)로 끌려가 “개처럼 일만 하다 돌아왔다”고 눈물을 흘렸다. 그의 손목에는 7명이 조를 짜 탈출하려다 잡혀 100일 동안 나무에 매달리는 처벌을 받아 입은 상처가 아직 선명했다. 남병 보국대 개처럼 끌려가
일본은 지난 1939년 남방침략을 위해 중국 최남단인 하이난다오를 점령하고 1942년말부터 조선의 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죄수 2천여명을 ‘남방파견보국대’라는 이름으로 끌고가 비행장·항만·철도공사·철광 채굴 등에 동원했다. 고씨는 “뼈속 깊이 사무친 한을 가슴 속에 묻어둔 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살았다”며 “올해는 광복 60년이 되는 해인 만큼 정부가 나서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씨의 손을 잡고 있던 양순임(60)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장도 눈물을 훔쳤다. 양씨는 1943년 남양군도로 징용간 뒤, 돌아오지 못한 시아버지에 대한 보상 신청을 하면서 유족회 활동에 참가하게 됐다. 그는 “남의 나라 침략전쟁에 끌려가 죽은 국민의 명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정부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국가가 시아버지의 죽음에 보내온 처음이자 마지막 응답은 지난 1975년 지급한 보상금 30만원이 전부였다. 그로부터 30년 동안 한국과 일본을 무수히 오갔지만, 깨달은 것은 일본의 파렴치함과 조국의 비겁함 뿐이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아버님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시어머니(1987년 작고)의 묵은 한을 이제라도 풀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통한 죽음앞에 30만원
일본 후생성이 지난 1990년 발표한 ‘구 식민지 출신’ 군인·군속에 관한 자료를 보면, 우리 나라에서는 모두 24만2341명이 군인이나 군속으로 징용돼 2만2182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타난다. 학계에서는 군인·군속에 민간 징용자까지 합하면 그 수가 당시 우리 나라 인구의 3분의 1인 700만명까지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1965년 한일협정 때 일본으로부터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를 청구권으로 받았지만, 전쟁에 나가 목숨을 잃은 군인·군속의 직계 가족 8552명에게 돈 30만원을 건네주고 모든 배상을 끝냈다. 또 일본최고재판소는 지난해 11월29일 한일협정을 이유로 강제 동원된 한국인 피해자·유족 35명이 낸 청구보상 소송을 “원고의 청구 기각, 소송 비용은 원고 부담”이라는 짤막한 선고문으로 기각했다. 일제에 강제 동원됐던 생존자들과 유족들은 이제라도 우리 정부가 나서주길 바라고 있다. 이들의 올해 소망은 지난해 6월21일 장복심 열린우리당 의원 등 국회의원 117명이 발의한 ‘태평양전쟁희생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이 통과되는 것이다. 이 법안은 지난 15대와 16회 국회 때도 제출됐지만, 사회의 무관심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회기를 넘겨 2번이나 자동 폐기됐다. 생활안정지원법 통과부터
선태수 일본강제연행한국생존자협회장은 “우리가 받아야 할 보상금을 종잣돈 삼아 사회가 이만큼 발전했으니 이제 그만 우리를 배려해 줄 때도 되지 않았느냐”며 “생존자들이 하나씩 둘씩 죽고 없어지고 있어, 6~7년 지나면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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