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여 푸껫 교민들 헌신적 구호활동 31일 오후 타이 푸껫 북쪽에 있는 카오락 밤부비치에서는 실종자 가족들과 구조대원들의 구조작업이 한창이었다. 새해를 하루 앞뒀지만 실종자 가족들에겐 대참사로 인한 심리적 공황과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은 절망, 그리고 가족을 찾아야겠다는 간절한 소망만 있을 뿐 그들의 가슴 속 어디에도 새해가 자리잡을 공간은 없는 듯했다. “여기 시신이 하나 있어요!” 교민 한명이 흙으로 범벅이 된 잔해 속에서 무너진 굴뚝 사이에 끼어 있던 주검 1구를 발견했다. 주검이 발견된 곳은 한국의 신혼부부 2쌍 가운데 3명이 실종된 카오락 시뷰리조트 근처. 주변에 있던 한국의 119구조대원들과 실종자 가족들이 행여 ‘애타게 찾는 사람일까’ 쏜살같이 달려갔다. “유럽인인 것 같아요!”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열대의 날씨에 닷새나 지난 주검은 인종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부패돼 있었다. 자원봉사자 한명은 “이제 냄새만으로 주검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주검이 동양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자, 갓 결혼한 아들 조아무개(29)씨의 사진을 들고 땡볕에 서 있던 어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사흘 전 주검으로 발견된 조씨의 아내 이아무개(28)씨는 이미 한 줌 재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갔다. 지난 26일 아침 이곳을 덮친 해일은 해변을 처참하게 파괴했다. 자동차들은 종잇장처럼 구겨졌고, 대형 콘크리트 건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국인 신혼부부들이 머물던 해변 바로 옆에 있던 방갈로들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이곳은 조용한 휴가를 즐기려는 유럽인들에게 인기 있는 휴양지여서 이들의 피해가 컸다. 서양 어린이의 것으로 보이는 푸른 눈의 인형을 누군가 깨끗하게 씻은 뒤 알록달록한 꽃으로 장식해 놓은 모습도 보였다.
너른 해변 곳곳에는 한국뿐 아니라 독일·스웨덴·싱가포르 등에서 온 구조대와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식수를 건네거나 함께 식사를 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이곳 카오락 지역은 피해가 큰데도 불구하고 타이 다른 피해지역에 비해 식수 공급이나 위생상황이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이는 무엇보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구호대원들과 한국 등 교민들의 봉사활동에 힘입은 바가 크다. “마지막 한명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려고 합니다.” 교민 이아무개씨는 이렇게 말했다. 700여명의 푸껫 교민들은 조를 짜서 분향소와 사고현장, 그리고 병원에 무료로 차량과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윤지준 주 타이 한국대사는 “수많은 나라에서 일해 봤지만 이렇게 헌신적인 교민들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31일 새벽 2시께는 잠시 “잔해에서 살아 있는 동양인이 발견됐다”라는 소문이 돌아, 기다리는 이들을 흥분시켰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30일 자정께는 주 타이 한국대사관에 실종신고됐던 대학생 장빈목(22)씨 등 배낭여행객 3명이 타이 북부에서 안전하게 여행 중이라는 기쁜 소식이 들어오기도 했다. 현재 푸껫 지역에는 카오락 3명, 피피섬 5명 등 모두 8명의 한국인이 실종자 명단에 올라와 있다. 타이 지역에서 소재 불명으로 신고된 한국인 200여명 가운데 100여명의 행방은 아직 묘연한 상태이며, 이 중 상당수가 배낭여행객으로 추정된다. 한국인 관광객들의 피해가 가장 컸던 피피섬은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가운데, 발견된 주검들이 인근 육지로 하루에 100여구씩 실려나오고 있다. 30일 현장에 도착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김이석 의무사무관은 “시체가 많이 부패한 만큼 유전자 감식에 상당부분 의존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해일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독일인 에리히 슈마허(32)와 그의 부인은 30일 독일로 돌아가는 방콕 공항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이 순식간에 처참하게 변하다니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식사를 주고 도와주는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다. 다시 이곳에 올 것”이라고 했다. 푸껫/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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