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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인 5일 오후 지난해 말 강제 철거 작업으로 집을 잃은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복음자리마을 주민들이 임시로 마련한 5평 남짓한 판잣집에서 이불 등을 깔고 추위를 견디고 있다. 시흥/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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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 ‘복음자리 마을’주민, 세밑에 잇따라 내쫓겨
사우나·자치위등서 생활
이상렬(75) 할머니의 집이 무너진 것은 지난해 12월31일 오전 10시께다. 철거 용역 50여명이 포클레인 3대를 몰고 할머니가 누워 자고 있던 경기 시흥시 신천동 83 일대 ‘복음자리 마을’(2만1800㎡) 무허가 건물을 짓밟아 부쉈다. 무너져 내린 집에는 할머니가 낮잠을 자던 이부자리가 여전했고, 싱크대에는 씻지 않은 그릇과 수저가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과 떨어져 혼자 사는 이씨는 “겨울에 늙은이 혼자 어디를 가라는 말이냐”며 덩치 큰 철거용역 4명에게 항의하다가, 허리·목·무릎에 찰과상을 입고 새해 첫날을 시흥 대림병원에서 맞았다. 병원 쪽은 “정신적인 충격이 큰지 할머니가 설움을 이기지 못해 밤새워 엉엉 운다”고 말했다.
용산구 초등학생남매도 내쳐
빈민연대 “겨울철거 금지를”
복음자리 마을은 고 제정구 의원이 1977년 독일 미제레올 선교회에서 보내온 10만달러를 ‘종잣돈’으로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철거민 170가구와 함께 땅 5400평을 구입해 형성됐다. 허허벌판이었던 이곳에 주민들이 직접 시멘트를 바르고 벽돌을 얹어 8~15평짜리 집을 손수 지어 마을을 일궜다. 최근 건물이 강제 철거된 곳은 복음자리 마을과 길 하나를 두고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무허가 건물 촌으로, 이곳 사람들은 스스로를 ‘복음자리 마을 사람’이라 부르며, 제 의원이 만든 마을 사람들과 공동운명체처럼 살을 맞대고 살아 왔다. 철거를 집행한 청보에이치엔씨 쪽에서는 “명도 소송의 결과대로 집행했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주민들은 “이날 철거된 25가구 가운데는 소송이 진행 중인 곳도 많다”고 주장했다. 강아무개(42·지체장애3급)씨, 노아무개(45)씨, 최아무개(78)씨 등 주민 대부분은 “소송이 진행 중인지도 몰랐다”고 말했고, 주소지가 확인되지 않아 ‘공시 송달’(본인에게 직접 통보할 수 없어 법원 게시판 등에 게시하는 것)된 집도 많았다. 갈 곳 없는 주민들은 주변 ㅅ·ㄱ 사우나와 주민자치위원회 사무실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경기 침체로 고통받는 도시 빈민들을 겨울 칼바람 속으로 내모는 ‘겨울철 강제 철거’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겨울이면 요금을 못 내 전기·수도·가스가 끊긴 사람들에게 공급 중단을 유예해 주고, 노숙자와 쪽방 거주자 들을 보호하는 것을 뼈대로 한 ‘동절기 서민생활 안정대책’ 등을 매년 내놓고 있지만, 개발업자와 철거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강제 철거에 대해선 속수무책이다. 겨울철 강제 철거는 1990년 고건 당시 서울시장이 “적어도 겨울에 집을 부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못박은 뒤 한동안 관행처럼 자제돼 왔다. 그러나 2003년 말 서울 동작구 상도2동 철거민들이 철탑 망루를 세워 놓고 철거 용역들과 ‘전투’를 벌여 사회에 충격을 줬고, 비슷한 시기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 △서울 노원구 도봉2동 재개발지 등에서도 겨울철 강제 철거가 이뤄졌다. 지난해 12월29일에는 서울 용산구 용산5가 19번지 일대에 사는 초등학생 남매의 집이 강제 철거돼, 주민들은 용산구청 앞에 몰려가 일주일째 천막 농성을 벌이는 중이다. 가재웅 빈민해방철거민연대 지도위원은 “강제 철거는 유엔 인권위원회가 명백한 인권 침해로 규정한 것으로, 개인 사이의 이해 다툼으로 봐선 안 된다”며 “특히 겨울철 강제 철거만큼은 정부가 나서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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