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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3 18:22 수정 : 2020.01.14 02:36

연재ㅣ연탄샘의 십대들 마음 읽기

“선생님, 탤런트 닮았어요. (누구?) 누구더라…. 이름은 생각 안 나는데 남자 탤런트인데, 정말 많이 닮았어요.”

남자 탤런트라니 좋다 말았다. 아니, 그래도 처음으로 살갑게 장난을 치는 해정이(가명)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중3인 해정이는 가출과 결석을 반복해서 중학교 졸업을 할 수 있을지 선생님들이 걱정하는 아이였다. 나의 내담자는 아니었지만, 정해진 상담시간 외에 불쑥 찾아와서 담당 선생님을 만날 수 없을 때 나와도 몇 번 상담을 했다.

해정이는 첫인상부터 ‘쎈 아이’처럼 보였다. 정확하게는 ‘쎈 아이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화장을 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마스크를 눈 밑까지 올려 쓰고, 대화하는 것도 귀찮은 듯 행동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의 문을 조금 열었을까. 농담도 하고, 문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자신이 알고 있는 이상한 아저씨에 대해 떠들기도 하면서 호기심 많고 수다스러운 또래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해정이는 학교 근처에 있는 보호대상 아동을 위한 그룹홈에서 살았다. 이 학교에는 해정이 말고도 여러 명이 그룹홈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가 있어도 아이를 양육하기에 적합하지 않거나 양육할 능력이 없는 경우였다.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같은 그룹홈에서 생활하는 아이들끼리도 학교에서는 서로 알은척하지 않았다. 그룹홈에서 같이 지내는 친구들 사이에서 해정이는 ‘물들지 않도록 거리를 둬야 하는’ 아이였다. 그룹홈 안에서도 ‘튀는’ 해정이는 많이 외로웠을 것 같다.

그해 겨울이 다가올 즈음 해정이는 다시 가출했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만약 해정이에게 의지가 될 수 있는 ‘비빌 언덕’ 같은 존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해정이에게 도움을 준 손길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룹홈과 학교 선생님들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해주었다. 그럼에도 해정이가 자신을 이해해주는 진정한 ‘비빌 언덕’을 못 만났던 건 아닐까.

아이들이 처한 환경적 어려움이나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자원 중 하나는 누군가와의 ‘지지적 관계’다. 지지자의 부재는 비단 보호자가 없었던 해정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부모나 보호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를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따뜻하게 지지해 주는 존재가 아니라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아이들이 확실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지지자가 되어주고 있을까. 우리의 자녀가, 제자가, 이웃의 아이가 확실한 ‘내 편’을 필요로 할 때, 가려운 곳을 비빌 수 있고 기대고 일어설 수 있도록 ‘비빌 언덕’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나의 성찰이자 다짐이기도 하다.

이정희 청소년상담사·전문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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