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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6 19:54 수정 : 2020.01.07 02:35

연재ㅣ우리 아이 마음 키우기

몇 년 전 봄방학 하는 날, 한 남학생에게 물었다.

“영철, 봄방학 끝나면 이제 6학년이구나. 6학년 되면 꼭 하고 싶은 거 뭐 있니?”

영철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가까이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6학년 땐 여친(여자친구)이 있으면 좋겠어요.”

“여친? 누구? 지금 우리 반에 마음에 두는 애 있구나! 혹시… 영순이?”

“…네.”

“진작 말하지. 선생님이 걔랑 짝하게 해줬을 텐데.”

“어차피 안됐을 거예요.”

“왜, 고백하면 안 받아줄까 봐?”

“아니요. 엄마가 여친은 절대 안 된다 그랬어요. 공부 방해된다고….”

“그럼 6학년 때는 된대?”

“그래도 한 살 더 먹었는데, 공부 열심히 한다고 하면 허락해주지 않을까요?”

“영철아, 음… 네가 아직 잘 몰라서 그러는데… 여친은 엄마가 허락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야. 네가 그 여학생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 뒤, 그 여학생이 허락해야 교제할 수 있는 거야.”

대부분 어른에게 한 살 더 먹는 것은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다. 특히 20대에서 30대, 30대에서 40대, 40대에서 50대…. 이렇게 10년을 주기로 넘어가는 시기가 올 때마다 ‘나의 시기’가 사라져버림에 아쉬움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하지만 초등 아이들에게 ‘한 살 더’는 설레는 일이다. 그들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허용의 범위’가 더 넓어진다는 의미다.

영철의 새해 소원은 여친이 생기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새해에는 여친과의 교제가 허락되길 바랐다.

하지만 그해 6학년이 지나도록 영철에게 여친은 없었다. 영철이는 허락되지 않는 한, 마음에 두는 아이에게 고백도 할 수 없었다. 고백을 못 하니 당연히 새해 소원은 이뤄질 수 없었다.

아이들의 시간은 부모의 시간에 묶여 있다. 그리고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그 묶인 시간이 풀어지길 기대한다.

“엄마가… 5학년 되었으니 스마트폰 사줬으면….”

“아빠가… 6학년 되면 친구들끼리 영화 보고 와도 된다고 했으면….”

“6학년이니까… 베프(베스트 프렌드)랑 코인 노래방 가는 거 엄마가 허락했으면….”

새해가 되었다. 학부모들은 아이를 위해 나름대로 이런 다짐들을 많이 한다. “올해는 우리 딸, 칭찬 많이 해줘야지.” “올해는 우리 아들이랑 함께 노는 시간 많이 가져야지.”

아이들의 자존감은, 자신의 허용 범위에 따라 위치가 결정된다. 허용 범위는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부분까지다. 책임이란 기다릴 줄 알고, 선악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고,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가능하다.

아이들이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함께해주는 시간 못지않게, 혼자 결정하는 시간을 얼마나 허용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 적절한 허용이 주체적 아이를 만든다. 함께하는 시간은 더 어릴 적에, 더 많이 해야 했다.

2020년, 우리 아이가 한 살 더 먹었다. 한 발자국 더 멀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멀어진 만큼 성장한다.

김선호 ㅣ 서울 유석초등학교 교사, <초등 자존감의 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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