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02 17:15
수정 : 2005.01.02 17:15
인류를 위해 큰 자비를 베풀었던 위대한 창조의 여신 여와와 더불어 고대 동양에서 널리 알려졌던 여신은 서왕모(西王母)다. 서왕모는 신들의 산인 곤륜산에 살았다는데 그 생김새가 기괴했다.
몹시 헝클어진 머리에 비녀를 꽂고 호랑이 이빨에 표범의 꼬리가 있었다고 하니 반은 짐승인 셈이었다. 게다가 휘파람 부는 것이 취미였다고 하니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아름다운 여신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여신인만큼 시중꾼이 있었다. 시중꾼은 사람이 아니고 세 마리의 파랑새였는데 이들이 서왕모의 음식을 조달했다고 한다. 맹수처럼 생긴 서왕모는 하는 일도 살벌했다. 그녀는 하늘에서 내리는 재앙이나 돌림병 같은 무시무시한 일들과 더불어 코를 베거나 손발을 자르는 등의 다섯 가지 잔인한 형벌에 관한 기운을 맡아 보았다고 한다.
서왕모가 이렇게 살벌한 일들을 담당하게 된 것은 고대 동양사상과 관련이 있다. 고대 동양에서는 해가 지는 서쪽을 죽음과 관련된 불길한 기운이 지배하는 곳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서쪽의 여신인 서왕모가 죽음의 여신으로 숭배됐던 것이다. 그러나 서왕모의 이러한 이미지는 한나라 때에 이르면 정반대로 바뀐다. 죽음을 맡은 여신은 영생도 가능하게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서 서왕모는 오히려 불사의 여신으로 숭배됐던 것이다.
고대인들은 서왕모가 사는 곤륜산에는 불로초가 자라고 그녀 자신도 불사약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이에 따라 짐승에 가까웠던 그녀의 모습도 젊고 아름다운 미녀로 바뀐다. 그리고 시중꾼이었던 세 마리 파랑새 역시 아름다운 시녀가 되어 서왕모를 모시게 된다. 당나라 때에 이르면 서왕모는 아예 사랑의 여신이 되어 시인들은 연애를 노래할 때 서왕모를 찬미했다.
서왕모보다 더 이름난 사랑의 여신으로는 무산신녀(巫山神女)가 있다. 무산신녀는 농업의 신인 염제(炎帝)의 딸이었는데 시집도 가기 전에 일찍 죽어 무산의 여신으로 다시 태어났다. 장강 중류에 있는 무산은 경치가 무척 아름다웠다. 어느날 초나라의 회왕(懷王)이라는 임금이 이 산에 놀러 왔다가 피곤해서 낮잠을 자게 됐다. 그런데 꿈속에서 한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자신을 무산신녀라고 하며 함께 놀기를 청했다. 한참을 재미있게 논 뒤 그녀가 떠나려고 하자 회왕은 아쉬워하며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는가를 물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자신이 아침에는 산 위의 구름이 되었다가 저녁이면 산기슭으로 비가 되어 내린다고 대답했다. 회왕이 놀라 깨어 보니 한바탕 꿈이었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과연 촉촉하게 비가 내리지 않는가? 회왕은 비를 보면서 무산신녀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서왕모와 무산신녀는 창조의 여신 여와와는 달리 좀 더 인간에게 친근한 느낌을 준다. 신들의 세계도 인간 세상과 마찬가지로 이처럼 초기의 엄숙하고 거룩한 창조신이 퇴장하면 인간의 삶에 밀착된,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신들이 등장하게 된다.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