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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2 17:11 수정 : 2005.01.02 17:11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올 한 해 동안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 하면서 자신의 운세를 점치기도 한다. 그럴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이 <토정비결>이다. <토정비결>과 같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 주는 책을 흔히 ‘비결’(秘訣), 또는 ‘비기’(秘記)라고 한다. 세상에 쉽게 알려져서는 안 되는 비밀스러운 내용을 담았다는 의미다. <토정비결>은 호가 ‘토정’이었던 조선시대 학자 이지함이 만든 비결이다.

비결은 사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거나, 글자를 변형시켜 기록하기도 하고, 풍수와 관련지어 설명하기도 하는 등 보통 사람으로서는 읽어도 의미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뜻을 잘 헤아리면 앞으로 일어날 중요한 사실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라에 커다란 난리가 일어날 것임을 미리 알려 주기도 하고, 왕조의 흥망성쇠를 예견하기도 한다. 신라 말, 고려 초의 승려였던 도선이 쓴 비기에 왕건이 고려를 세워 후삼국을 통일할 것이라는 사실이 들어 있다거나, 조선 중기 남사고가 임진왜란을 예언했다는 것이 그러한 예다. 무학대사, 서산대사 등 우리 귀에 익숙한 승려들도 비결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비결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정감록>이다. <정감록>에는 조선 이후의 왕조 변화와 도읍지가 적혀 있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왔다. 이 때문에 비결은 당시 사회에서 금서로 취급되기도 했다.

사람들이 비결에 특히 많은 관심을 보이는 때는 세상이 어지럽고 살아가기 힘들 때였다. 조선 중기 이후 비결서가 특히 많이 나타난 것은 당시의 이런 사회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반란을 일으키거나 세상을 뒤바꾸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를 뒷받침하는 데 비결을 이용하고는 한다. 동학농민전쟁의 지도자였던 손화중은 선운사가 있는 도솔산 마애불의 배꼽에 있던 비결을 꺼냈다고 한다. 그 비결이 나오는 날 한양이 망한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화중이 비결을 꺼냈다는 말은 호남 일대로 순식간에 퍼졌다. 조선 왕조의 명이 다한 것으로 판단한 농민들은 자신감을 갖고 봉기에 가담했을 것이다.

오늘날 비결의 내용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끔 비결에 적힌 대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말들도 하지만, 실제로는 일어난 사건을 비결의 내용에 꿰맞춰 해석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비결은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토정비결>을 보면서 한 해에 대한 기대감을 갖기도 하고, 혹시 운세가 좋지 않게 나오면 생활이나 몸가짐을 조심하기도 한다. <정감록>에 도읍지로 예언돼 있는 계룡산이나 모악산 등에는 신흥 종교가 몰려들고, 후손의 복을 기원하면서 무덤을 쓰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비결은 민중의 고통을 덜어 주고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한다. 새해에는 단지 비결에서만 희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이 좀 더 나아지고 밝은 앞날을 기대할 수 있게 됐으면 한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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