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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16 22:31 수정 : 2019.08.18 10:16

[토요판] 인터뷰
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피해자와 합의하려는 일본기업을
정부가 막는 건 국제인권법 위반
청구권협정에 징용 포함됐다면
비엔나 협약 위반돼 원천무효”

“조국 후보자 사노맹 경력에 대한
황교안 대표 색깔론은 시대착오적
국가 아닌 독재정권 전복과
민주주의 회복이 사노맹 목표”

지난달 25일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대만민주재단에서 열린 아시아인권법원 모의법정(AHRCS) 기자회견에서 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모의법정은 26일부터 사흘 동안 진행됐다. 백 교수는 아시아인권법원 설립을 위해 노력하는 대표적 인사 중 한 명이다. 백태웅 교수 제공

▶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처를 하며 내세운 일본의 논리는 한국의 국제법 위반이다. 국제법(한일 청구권협정)을 어긴 나라와는 호혜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거다. 일본 논리가 맞는지 국제법과 인권 전문가인 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에게 물었다. 마침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사노맹 논란에 대해서도 들어봤다. 하와이에 있는 그와 지난 13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일본은 지금 새로운 인권침해를 범하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구제조처 의무를 국가가 가로막는 것은 과거의 잘못에 그치지 않고, 현재도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백태웅(56)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의 목소리는 이 대목에서 스타카토처럼 단어 하나하나에 힘이 실려 있었다. 일본의 행위는 국제법 관점에서 오히려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또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관련자들을 국가전복을 기도한 사람으로 공격하는 데 대해 “철 지난 색깔론”이라고 반박했다.

―방학인데 어떻게 지내나?

“유엔 관련 회의와 학회 발표, 아시아인권법원 모의법정 참석 등으로 바쁘다.”

―아시아인권법원은 아직 없지 않나?

“그렇다. 다른 대륙은 유럽인권재판소나 미주인권법원 등 인권법원이 다 있는데 아시아에는 아직까지 없다. 인권침해를 당한 개인이나 비정부기구가 해당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지역 차원의 인권법원을 아시아에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캠페인의 일환으로 아시아 각국 인사들이 지난해 대만에 모여 인권법원 모의법정을 설립하고 올해 첫 재판을 열었다.”

―모의법정에서 다루는 내용은 뭔가?

“모의재판이지만, 31년째 감옥에 갇혀 있는 대만의 사형수(추허순)에 관한 실제 사건이 대상이다. 사형이 확정되는 데만 무려 23년이 걸린 사건인데 그 과정에서의 고문과 법 절차 위반이 주요 쟁점이다. 아시아 7개국을 대표하는 인권 전문가 7명이 판사로 선임돼 재판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3개월 안에 선고를 한다.”

“일본의 공격적 행동 자체가 충격”

백태웅 교수는 미국 노터데임대학에서 법학 석사·박사학위를 받은 국제적인 인권 전문가이다. 석사 논문은 6·25 때 미군의 민간인 학살사건인 ‘노근리 사건’에 대해 썼으며, 박사 논문은 ‘새롭게 대두되는 아시아에서의 지역인권 시스템’이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BC) 법대 교수를 거쳐 2011년부터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5년부터는 유엔 인권이사회의 강제실종 실무그룹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국제인권법과 비교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배제로 한-일 관계가 악화하고 있다. 일본이 다른 핑계를 대고 있지만, 실제로는 일제시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우리 대법원의 지난해 판결을 문제삼고 있다.

“무엇보다 상대국과의 사전 협의나 분쟁 해결 절차도 없이 이렇게 바로 수출규제를 한 공격성이 굉장히 충격적이고 놀랍다. 경제적으로 이런 공격적 행동을 느닷없이 하는 것을 보면 혹시 나중에 일본이 평화헌법을 고쳐서 군국주의로 더 나아가면 군사적으로도 이런 공격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 아니냐, 그러한 두려움을 한국 사람들이 갖게 됐다. 배경이 뭔지를 떠나서 이러한 보복조처는 자유무역주의에 근간을 두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제징용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포함돼 있는데 법원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개인 배상을 명령한 것은 협정 위배라는 것이다. 국제법이나 인권의 관점에서 일본의 논리에 타당성이 있는가?

“일본의 주장은 두가지 점에서 문제다. 하나는, 한일 청구권협정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본은 국제법을 조약에 관한 비엔나(빈) 협약과 반대되는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국제법의 근간이 되는 비엔나 협약 53조에 따르면 어떤 조약이 국제법상의 강행규범(절대규범)과 충돌할 경우 그 조약 자체가 무효라고 봐야 한다. 즉, 노예제나 고문,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등의 근절은 국제사회가 따라야 하는 국제법상 최상위 규범으로서 이 규범에 어긋나는 조약은 기본적으로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만약 청구권협정에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가 포함됐다면 반인도적 범죄행위를 유야무야하자는 것이기에 조약 자체가 무효라고 봐야 한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에서 다수 의견은 이러한 국제법의 원칙에 근거해서 청구권협정에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소수 의견도 최소한 청구권협정이 개인청구권을 부인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 정부가 새로운 인권침해를 범하고 있는 점이다. 즉, 전범기업인 신일철주금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피해자들과 합의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 지금 일본 정부가 그 합의를 막고 나섬에 따라 피해자들이 압박받고 있다. 국제 인권법에서 보면 이는 전형적인 인권침해 행위다.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구제조처 의무를 국가가 가로막는 것은 과거의 잘못에 그치지 않고, 현재도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법과 국제 인권법의 최근 경향에 비춰보면 용납할 수 없는 잘못된 국가주의적 접근이다. 알량한 통치자 간의 밀실 합의로 본질적인 인권이나 인간다움, 인도주의를 억누르는 시대는 이미 지났는데 아베 총리는 어디에서 그런 낡은 국가주의적 생각을 끄집어내서 이런 식으로 대처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일본의 반인권적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국제사회에서 나올 법한데.

“그렇다. 지난해 11월 유엔 조약기구인 강제실종인권협약에 따른 조약위원회에서 일본국가보고서 심의를 할 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보상 부족, 실종자 현황 등 실상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 부족, 특히 실종되었을 수도 있는 군위안부에 관한 통계 부족, 위안부 여성 강제 낙태 문제 등을 제기하여 상당한 긴장을 불러일으켰었다. 특히 이번에 강제징용 배상이나 위안부 문제를 이유로 한국에 대한 경제적 보복조처를 취하는 것은 새로운 상황의 전개이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일정 정도 반응하리라고 본다. 그런 것을 떠나 일본에 대해 권하고 싶은 게 있다. 일본이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가치 측면에서도 세계적 리더가 되고 싶다면, 과거 인권 문제부터 치유하고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태평양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폭넓은 재조명 속에서 새로운 가치, 미래의 가치로 가는 인권규범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 독일처럼 말이다.”

지난달 26일부터 사흘 동안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아시아인권법원의 판사들. 한국 대표로 나간 백태웅 하와이대 교수(맨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수마이야 카이르 교수(방글라데시), 케빈 리 교수(싱가포르), 마웽카이 전 고등법원 판사(말레이시아), 장원전 교수(대만), 푸화링 홍콩대 교수(중국), 에지마 아키코 교수(일본). 백태웅 교수 제공

“황교안 대표, 냉전적 사고 젖어 있어”

백 교수는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대학(서울대 법대) 4학년 때인 1984년 서울대 총학생장(학도호국단 체제의 대표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율적 학생대표 기구였음)을 맡아 군사정권이 폐지했던 총학생회 부활을 주도했다. ‘학원 프락치 사건’(1984년)으로 1년간 수감생활을 마친 뒤에는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시인인 박노해(본명 박기평)를 만나 군사독재 타도와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위한 노동자 조직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19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만들었다. 사노맹은 분단 이후 남한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를 공개 천명한데다가 급진적인 사회변혁을 목표로 내걸었다. 사노맹은 중앙상임위원이던 박노해(1991년)와 백태웅(1992년) 등이 대거 검거됨으로써 와해됐다. 백 교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 2심에서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98년 특별가석방됐다. 그는 이듬해 김수환 추기경 등 사회 주요 인사들의 추천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국제 인권 전문가가 됐다. 은수미 성남시장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서울대 교수)도 사노맹과 관련해서 활동했다. 2008년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는 사노맹 관련 인사들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결정했다.

―조국 교수가 법무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뒤 사노맹이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국가전복을 꿈꿨던 사람이 어떻게 법무장관이 될 수 있느냐”고 비판하고 있다.

“삼십년 전의 일을 가지고 법무장관 후보를 공격하는 것도 우습지만, 철 지난 색깔론을 들이대는 게 한심스럽다. 안기부(국가정보원의 전신)에서 고문으로 조작했던 수사 내용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그대로 옮겨서 주장하고 있다. 국가를 전복하려고 했다는데 우리가 그때 전복하려고 했던 것은 군사쿠데타로 광주항쟁을 짓밟고 들어선 독재정권이었다. 즉,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자유와 평등을 확대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것을 국가전복 시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공안검사 출신인 황 대표의 세계관이 아직도 독재체제가 정상체제라고 보는 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정말 이분은 1970~80년대의 냉전적 사고에 젖어 있는 것 같다. 지난 미국 대선 때 돌풍을 일으켰던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하고 있다. 그가 한국에 가면 황 대표는 국가보안법을 들이밀어 감옥에 보내고 사형에 처하자고 주장할 것인가.”

―안기부에서 수사받을 때 고문으로 세번이나 실신하기도 했다고 들었다.

“그렇다. 요즘은 한국에서 고문이 일어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런 일들이 바로 엊그제 벌어졌다. 학생들과 노동자 등 모든 구성원들이 많은 고통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우리 사회 민주주의와 변화를 이뤄왔다. 민주주의와 자유와 평등, 나아가서 세계 속의 한국을 만드는 일에 저 자신이 함께해왔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황 대표의 발언은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지금도 벌어지는 고문과 인권탄압 같은 일이 미래에 또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는 어떻게 해야 민주주의를 지키고 확대할 수 있을지에 대해 국민들이 고민하도록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고 있는 것 같다.”

지난 3월15일 하와이대 한국학연구소에서 열린 삼일절 백주년 기념행사에 기조연사로 참석한 안병욱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오른쪽)과 백태웅 한국학연구소장(하와이대 로스쿨 교수)이 연구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백태웅 교수 제공
“사회주의는 이념이라기보다 코드”

백 교수는 사노맹 활동과 관련해 2011년 <한겨레>와의 인터뷰(8월1일치)에서 “당시의 사회주의는 이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코드였다. 냉전논리와 군사독재에 맞서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의 공통된 코드. … 사회주의라는 금기어에는 비타협적인 싸움을 결사적으로 하겠다는 자기 결의의 측면이 컸다”고 말했다. 토지 무상분배나 재벌기업 몰수 등의 강령과 관련해서는 “내용적으로는 미숙한 점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충격요법이 필요했지만, 우리의 준비 부족에 대한 반성과 회의도 많았다. 시대의 한계였고, 우리의 한계였다”고 밝힌 바 있다. ―조국 후보자와는 같은 부산 출신에 서울법대 1년 선배로서 같이 활동을 했는데 어떤 사람인가?

“추진력 있고, 자기가 말한 것은 지키는 사람이다. 과거에 많은 사람들을 표 안 나게 돕기도 했다.”

―선거 때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도 받은 적이 있다고 들었다. 본인이 한국의 현실 정치에 뛰어들 생각은 없나?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다. 한국을 자주 오가니까 정치권에 진입하든 않든 이미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함께 헤쳐 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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