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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05 05:00 수정 : 2019.06.05 09:52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장기요양시설 하인리히 슐라이히 하우스. 이곳은 입소자 수와 종사자 수가 90명으로 같다. 입소자와 종사자 비율이 2.5 대 1인 한국과 견주면 훨씬 더 충실한 돌봄이 가능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제공

[창간기획] 대한민국 요양 보고서 3부 대안 ②장기요양 정착한 나라들 보니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장기요양시설 하인리히 슐라이히 하우스. 이곳은 입소자 수와 종사자 수가 90명으로 같다. 입소자와 종사자 비율이 2.5 대 1인 한국과 견주면 훨씬 더 충실한 돌봄이 가능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제공
‘어떤 노년을 보낼 것인가?’

모두 언젠가는 스스로 던져야 할 질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수십년을 일하다 생업에서 물러난 뒤의 시간.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년’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치매를 앓으며 보낼 가능성도 점점 커진다. 지난해 중앙치매센터가 발표한 ‘2016년 전국 치매역학조사’를 보면 60살 이상 치매 발병률은 2018년 7.15%에서 2040년 10.51%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변화의 속도는 빠르다. 2008년 7월1일 도입된 장기요양보험제도에 따른 장기요양보험 수급자는 2008년 14만7천명에서 지난해 67만810명으로 4.6배 늘었다. 장기요양기관은 8318곳에서 올해 1월 기준 2만1395곳으로 2.6배 늘었다. 장기요양보험 급여 지출규모도 2008년(하반기) 5549억원에서 지난해 6조6758억원으로 증가했다. 2008년치를 1년으로 환산하면 6배 이상 뛴 셈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시간 돌봄이 필요하게 될 것이란 의미다.

<한겨레>는 한국보다 앞서 장기요양제도를 도입하고 실패와 성공을 거듭한 여러 국가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독일, 영국, 미국 등을 방문해 작성한 출장보고서 5건을 입수했다. 아울러 국내외 전문가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더 존엄한 노년’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외국 전문가 3명을 포함해 10명이 답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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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시민들, 노인요양 등에 월평균 60만원 부담

“건강 관련 재정 상당 부분이 노인에게 돌아가지만,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세대 간의 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장기요양보험을 관리하는 보건의료감독원(NZa) 고문 요한 판마넌이 보내온 설명이다. 네덜란드는 한국보다 40년 빠른 1968년 세계 최초로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했다. 그는 네덜란드 장기요양보험제도의 열쇳말로 ‘세대 간 연대’를 꼽았다. 인구 1700만명인 네덜란드의 납세자들은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을 위해 해마다 평균 5480유로(약 727만원)를 부담한단다. 월평균 60만원가량이다. 그는 “65살 이상 노인은 약 3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7%지만 전체 의료비 지출의 48%가 노인을 위해 쓰인다”고 했다.

재정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네덜란드는 장기요양보험금으로 시설과 방문요양 서비스를 모두 제공해왔다. 하지만 2015년부터 중앙정부는 시설만 관리하고, 방문요양 서비스는 지방자치단체가 분담하는 방식의 개혁이 이뤄졌다. 네덜란드는 임금에서 일정 비율을 떼어내 장기요양보험 재원을 마련하는데, 이 비율도 13%에서 2015년 이후 9.65%로 줄었다. 하지만 장기요양제도에 대한 만족도는 여전히 높다. 판마넌은 “요양보호사 등 장기요양 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월급은 최저임금보다 많고, 요양원에서의 서비스 질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노인들은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전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자기 부담이 원칙이다. 다만 정부 보조 방식으로 노인, 장애인, 저소득층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연방정부는 65살 이상 또는 특정 장애나 루게릭병, 말기 신부전 등의 질병을 가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메디케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메디케이드’는 주정부와 연방정부가 공동으로 책임진다. 지난해 메디케어 예산은 5820억달러(약 698조원), 메디케이드 예산은 4040억달러(약 481조원)였다.

미국도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돌봄 서비스에 막대한 재정이 들어가고 있다. 특히 메디케이드 혜택을 받기 위해 나이가 들면 일부러 재산을 숨기거나 처분하는 사례도 나타나 재정 문제가 녹록지 않다. ‘미국 건강관리 및 교육센터’ 존 러플랜트 선임정책 연구원은 “정부와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많은 공공 보건복지 프로그램이 있지만 모두 재정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노인요양보험을 제공하는 민간 업체들이 있지만 보험료가 비싸다”고 말했다. 김형용 동국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미국의 보건의료와 같은 시장 중심의 체계는 과도한 비용으로 직결된다. 또한 과잉진료와 과다청구와 같은 영리 행위 그리고 서비스 종사자의 낮은 처우로 귀결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 본에 있는 장기요양시설 마리엔하우스의 숙소.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노인들은 대부분 1인실이나 2인실에서 돌봄을 받는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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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기관 감시하는 강력한 단속 시스템

장기요양기관 가운데 민간 비율이 현저히 높은 한국은 미국 사례에서 배울 대목이 있다. 부정행위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처벌이다. 전미변호사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건보공단 관계자를 만나 이렇게 설명했다. “(헬스케어 서비스에서 부정행위가 발생했을 때) 처분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가장 약한 단계는 부당이득금 환수다. 두번째는 민사소송을 걸어 부당이득의 3배 배상금을 물린다. 마지막 단계는 환수와 더불어 형사소송으로 징역형을 살게 하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헬스케어사기법은 의도적으로 연방 헬스케어 프로그램의 돈을 부정으로 받을 경우 형사 범죄로 규정해 10년 이하의 징역과 25만달러(약 2억8천만원)까지 벌금을 부과하도록 한다. 고의로 거짓청구를 할 경우 정부가 입은 피해액의 3배까지 배상금을 물릴 수 있게 한 거짓청구법도 마련되어 있다. 장기요양기관 운영자가 수억원의 부당청구를 해도 대부분 사기죄가 적용돼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한국과는 전혀 딴판이다.

이런 부정수급 단속 의지는 현장에서도 느낀다. 지난해 건보공단 직원을 만난 미국 버지니아의 한 요양원 직원은 “감독 당국의 감사, 환수조처 등에 대해 기관이 저항하지 않느냐”고 묻자 웃으며 “그런 것을 거부하면 문 닫을 수도 있다. 또 장기요양서비스 제공기관의 의무 중 하나가 관리기관의 관리업무에 협조하는 것이다. 그쪽에서 돈을 주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돌봄 서비스를 시장에 맡겨 대형 프랜차이즈 형태의 장기요양기관이 주류를 이루는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돌봄서비스 제공기관을 감독하는 시큐시(CQC·Care Quality Commission)는 2년에 한번 요양원 등을 정기적으로 지도 감독하고 미흡한 점이 발견되면 불시에 해당 기관을 찾아가 조사한다. 또 2일 이상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으면 바로 감사에 나선다. 요양원 거주자들이나 가족 등도 시큐시에 장기요양기관 조사를 요청할 수 있다.

노인들이 인간다운 삶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하는 환경 역시 중요하다. 건보공단 직원이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카리타스 요양원의 한 지점 관계자는 “가정집처럼 운영하면서 노인 스스로 삶의 여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다양한 모임을 하고 목욕도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이곳은 1인실에 124명, 2인실에 136명이 머문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요양시설은 이곳처럼 대부분 1인실이나 2인실로 요양원을 만들어 노인의 사생활을 보장한다.

국외 사례를 살펴볼 때 장기요양제도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재원이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노인 돌봄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를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적 돌봄의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게 돌봄을 우리 사회의 중심적 정치 어젠다로 옮겨놓아야 해요. 특히 베이비붐 세대는 부모의 돌봄을 책임지고 본인들이 조만간 돌봄을 받게 될 당사자들이죠. 베이비붐 세대의 정치력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의 설명이다.

부당청구 단속을 비롯한 국가의 관리·감독 책임도 강하게 요구된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장기요양제도 운용에는 공공성 강화가 필요하다. 서비스를 민간이 공급하더라도 공공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대로 관리·감독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주빈 권지담 정환봉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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